강원도 인제 곰배령에서
야생화나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은 곰배령에 가보고 싶은 듯하다. 엄마도 여기를 콕 찍어 한 번쯤 가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산림청 홈페이지에서 직접 예약을 하거나 입산이 허가된 펜션(마을 대행 예약)에서 숙박을 하면 누구나 곰배령 길을 걸을 수 있다. 새벽 운전이 불안하기도 하고 자연을 여유롭게 즐기고 싶기도 해서 엄마와 나는 근처 펜션에서 하루를 자고, 아침 9시에 입장하는 티켓을 예매했다. 9시, 10시, 11시 중 그나마 빠른 시간을 예약했는데도 불구하고 점봉산 생태관리 센터는 등산객과 탐방객으로 입구부터 소란스러웠다. 인터넷 예약이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하더니, 이곳의 유명세를 나만 몰랐나 보다. 후끈거리는 사람들 목소리와 열기로 내 정신은 잠시 길을 잃었고 귀에서는 벌떼 소리가 났다.
곰배령은 ‘천상의 화원’이라는 별칭답게 800여 종의 야생화 군락지가 펼쳐진 곳이다. 야생화 보호 차원에서 1일 탐방 인원을 제한하고, 입산할 때는 예약자와 맞는지 확인하는 절차가 있기 때문에 신분증을 챙겨야 한다. 이 마을 저 마을 사람들이 모여 산나물을 뜯거나 이 고개 저 고개를 넘어 봇짐 지고 장 보러 다녔던 길이라고 생각하니까 흐르는 물도, 불어오는 바람도 모두 과거에 만들어진 듯하다.
그래도 바람은 지금처럼 불었겠지. 꽃향기는 지금처럼 향기롭겠지.
사람들의 발길에 짓눌리지 않고 오래도록 보존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익숙한 단어가 들렸다. 앞에서 걷던 엄마가 ‘둥굴레’라고 말했다. 우리 집에서는 보리차 대신 둥굴레차를 끓여먹었는데, 둥굴레 잎은 처음 봤다. ‘내가 먹던 둥굴레 잎이 저렇게 생겼구나. 둥굴레차가 참 구수한데...’ 애석하게도 내 상식은 여기까지다. 백합과 식물이라는 둥굴레나 금낭화, 홀아비꽃대, 큰앵초, 동의나물, 엘레지 등등 야생화들은 답답한 식물도감에서 튀어나와 실사로 살아 있는데도 내 눈에는 여전히 어색하다. 노란 복수초는 어느 드라마 이름 같기도 하고, 잎은 다섯 장인데 왜 세잎양지꽃인지...
물관과 체관을 통해 물과 양분이 이동하고, 관다발 조직은 뿌리, 줄기, 잎과 연결되어 있고, 명반응과 암반응 등 광합성 작용으로 식물은 필요한 에너지를 얻는다...라는 교과서 상식은 이곳에서 통하지 않는다. 대신 고개를 숙일수록, 허리를 굽힐수록, 다리를 바닥에 닿을수록 야생화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진 속 야생화를 찍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을 낮췄을까...
야생화 군락지는 처음인 듯 엄마는 연신 꽃 이름을 되뇌었다. 낮게 깔린 야생화를 하나하나 관찰하느라 예상보다 시간이 지체되었다. TV 속에서 봤던 곰배령 표지석까지 가기 위해 엄마는 인파 속을 빠르게 걸으셨다. 곰이 하늘로 배를 드러내고 누웠다는 그곳(곰배령)을 찍기 위해 사람들은 긴 줄을 섰다. 인증샷을 찍기 위한 줄 서기. 우리도 그 줄에 순서대로 섰다.
오늘 하루 잘 놀았다.
엄마는 내려오면서 말했다. 나보다 체력이 더 좋아지신 듯하다.
꽃향기를 맡고 어디선가 꼬마 자동차 붕붕이 나타났으면 좋겠다. 난 다리가 좀 아프다.
2018.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