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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계탕의 추억

by Shadow Tipster

하얀 김이 피어오르는 창가를 지날 때마다 나는 도망친다. 삼계탕 냄새가 골목을 적시는 복날이면, 사십년 전 여름이 국물처럼 끓어오른다. 내 안의 기억에 파문이 인다. 통계청은 한국인 한 사람이 일 년에 닭 스물여섯 마리를 먹는데 이십 년 전보다 두 배나 늘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나는 유독 삼계탕 앞에서 오래 망설인다.


봄날의 국민학교 정문 앞, 벚꽃 잎이 흩날리던 하교 시간이면 어김없이 좌판이 나타났다. 노란 솜뭉치 같은 병아리들이 까만 구슬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꽃잎같은 순간. 오십 원이었을까, 백 원이었을까. 생명은 동전 몇 개의 무게보다 가벼웠다. 나는 주머니를 털어 가장 귀여운 놈을 골랐다. 작은 심장이 내 손바닥 위에서 파닥거렸다.


엄마는 한숨을 쉬었다. 혼날 줄은 알았지만 견딜 수 없었다. 보드라운 털, 따스한 온기, 그리고 연약한 삐약소리. 전봇대가 뽑혀나가고 횡경막이 들썩거렸다. 병아리는 사흘도 채 못 버티고 잠든 듯 눈을 감았다. 나는 또다시 좌판을 기웃거렸다. 엄마의 한숨은 더 길어졌지만 죄책감보다 간지러운 것 같은 노란 그리움이 컸다.


아지랑이 사이로 닭장 실은 트럭이 아른거렸다. 8월 더위엔 아스팔트가 녹아 콘타르가 드러났다. 시장 입구의 닭집, 우리 엄마보다 팔뚝이 두 배 굵은 아주머니의 빨강 고무장갑이 부산스러웠다. 이내 파란 바케스에 끓는 물이 튀었다. 하얀 깃털은 잠시 허공에서 머물다 스러졌다. 잔물결 위로 한 숨의 떨림이 남았다.


바삭하게 부서지는 치킨 껍질은 괜찮다. 혀끝에서 녹아드는 닭강정의 달콤함도, 신선한 샐러드 속 닭가슴살의 담백함도. 그것들은 기억의 벽을 건드리지 않으니까. 하지만 삼계탕은 다르다. 뚝배기 속의 닭은 침묵한다. 하얀 살결이 국물 속에 잠긴 채. 그 옛날 시장 입구, 그날의 파란 바케스.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 빨간 고무장갑이 허공을 가른다. 마흔 번이 넘는 여름이 지났지만, 그 순간만은 늘 현재형, 구체적 실감으로 육박해온다.


복날의 골목에 하얀 김이 피어오른다. 삼계탕은 가게 식탁 위에서 여전히 따듯한 숨을 내쉰다. 나는 그 길을 조용히 지나친다. 봄날의 교문, 좌판의 노란 솜뭉치들을 보았던 그 날. 벌써 사십번의 여름이 흘렀다. 그러나 내 손에는 아직도 그때 그 온기가 남았다. 백원짜리 동전 한 개로 맞바꾼 작은 온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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