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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yworker Feb 19. 2024

음식의 추억

위는 추억으로 만들어졌다!

니시 가나코의 ‘밥이야기’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은적이 있다. 음식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어찌나 생생하게 묘사하는지 책을 읽고 나면 내 뱃속 어딘가에 꾹꾹 눌러 담아놨던 추억들이 한 트럭만큼 떠오른다. 그래서 나는 작가가 말한 '위는 추억으로 만들어졌다!'는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거창하거나 굴곡진 인생이 아니더라도 우리 인생의 기쁘고 슬펐던 날에는 항상 함께해 준 음식이 있지 않았던가?


#1 인생 순두부

1982년. 내가 초등학교 2학년 개나리가 피기 시작한 무렵이었을게다. 어느 날 아침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아파트 단지 뒤편에 있는 일자산에 올랐다. 말이 좋아 산이지 실은 나지막한 높이의 언덕에 가까웠지만 당시 어린 나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침도 먹지 않은 채 산을 한 바퀴 돌고 내려올 때쯤에는 뱃가죽이 허리에 닿을 지경이었다. 산입구에는 리어카에서 순두부를 팔고 있는 할머니가 계셨다. 커다란 양은 대야에 순두부를 한소끔 끓여 놓고 한 그릇씩 덜어 팔았다. 특별한 양념도 없이 그저 간장 한 스푼 얹어 먹던 그 순두부의 맛을 난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2 월급날과 돼지갈비

역시 초등학교 시절의 이야기다. 당시 아버지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조그마한 공장을 차려 사업을 시작했다. 직원수가 열명이 채 되지 않던 그곳에서는 지갑, 가방 등을 만들어 주로 해외로 수출하는 오퍼상에 물건을 공급했다. 매월 말 월급날이 되면 아버지는 인근 돼지갈비 집으로 직원들을 데리고 가 식사와 함께 월급봉투를 나누어 주셨다. 직원들은 아마 월급을 기다렸겠지만 나 또한 그들 못지않게 월급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좋아하는 돼지갈비를 실컷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간혹 소주 한잔에 기분 좋아진 아버지가 만 원짜리 한 장이라도 주시는 날에는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지금도 여전히 돼지갈비를 좋아하지만 요즘엔 온통 목살구이가 대부분이라 그 시절의 진짜 돼지갈빗집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3 입대 기념 햄버거

1995년 7월 의정부 306 보충대로 입소하던 날이었다. 연병장에서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작별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이제 지인들은 부대 밖으로 나가달라는 안내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때 저기 멀리서 친구 한 명이 헉헉 거리며 뛰어온다. "야! 이거 하나 먹고 들어가라" 녀석의 손에는 버거킹 더블치즈버거가 들려있었다. 평소 햄버거를 좋아하던 나를 위해 친구 녀석이 사다 줬던 더블치즈버거. 나는 배가 불렀지만 친구의 성의를 생각해 허겁지겁 햄버거를 먹기 시작했다. 아마 눈물도 찔끔 났던 것 같다. 


#4 이제는 더 이상 맛볼 수 없는...

외할머니는 음식을 참 잘하셨다. 토란국, 꿩만두는 외갓집을 가야만 맛볼 수 있던 특별한 음식이었다. 명절 때 흔히 먹을 수 있는 불고기와 녹두전도 외할머니가 만든 것은 정말이지 남달랐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10년이 넘었다. 이제는 다시 맛볼 수 없다는 음식과 함께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나를 더욱 애틋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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