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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yworker Feb 10. 2024

구정, 우리 집 풍경

명절 폐지론자의 구정 나기

30~40년 전 내 어린 시절 설 풍경은 이랬다.

푸짐한 음식으로 차려진 차례상. 다 함께 차례를 지내고 난 후 어른들께 세배를 드린다.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하하 호호 지난 일상에 대한 담소를 나눈다.

아이들에게는 일 년 중 가장 큰 수입을 거둬들일 수 있는 그야말로 대목 중의 대목이다.

아침 식사 후 성묘에 나선다. 선산은 시골 할머니댁에서 차로 10분 거리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할아버지 산소를 시작으로 증조할아버지, 고조할아버지 산소를 돌아 누군지 들어도 잘 기억나지 않는 집안 어르신 산소를 돌아가며 절을 올린다. 마지막으로 내 어린 시절 돌아가신 큰아버지 산소까지 돌고 나서야 성묘는 마무리된다. 그 시절에 어린 나는 먹고 노는데 정신이 팔려 정작 엄마(며느리)들의 고초는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의 설풍경은 많이 바뀌었다. 예전처럼 대가족이 모이는 일도 없고 2박 3일 함께 숙식을 하며 지낼 일은 더더욱 없다. 사람이 많이 모이질 않으니 당연히 예전처럼 많은 음식도 필요 없다. 차례도 예전에 비해 많이 간소화된 것도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의 명절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확히 말하면 지금의 명절 문화의 개선이 필요하다.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로 하는 명절은 결과적으로 모두 다 행복할 수 없다.

 

명절이 끝나면 각종 커뮤니티에는 시댁과 시어머니 그리고 얄미운 시누이와 동서를 성토하는 글이 넘쳐나며 때때로 많은 공감을 받는다. 아이러니한 점은 며느리의 역할로만 한평생을 살 수 없다는 데 있다. 며느리이지만 한편으로는 누군가의 시누이 또는 동서일 수 있고 시간이 흘러 언젠간 시어머니로의 역할을 맡게 될 수도 있다. 재미있다고 말하면 혼날 수도 있겠으나 정작 우리 주변에는 항상 피해자들만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며느리 그룹은 말할 것도 없고 요즘에는 시어머니 커뮤니티에서 역으로 며느리를 성토하는 경우도 많다. 어제는 며느리였다가 오늘은 못된 시누이로 변하는 그룹, 일은 나만 힘들게 하는데 혼자 칭찬을 독식하는 동서 그룹은 또 어떠한가? 각각의 사연을 들어보면 대부분 이해는 간다. 하지만 이렇게 복잡한 고차방정식을 풀어낼 수 있는 정답을 찾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이처럼 불편한 상황 속에선 남성들도 결코 편안할 수 없다. 명절을 앞두고 신경이 예민해지는 아내의 눈치와 어머니의 불만사이를 잘 조율해야 하며 본가와 처가 사이에 각각 머무르는 시간 배분에 실패하지 않도록 신경을 잔뜩 세우고 있어야 한다.


2036년 용의 해에는 이런 풍경이 바뀌어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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