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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yworker Feb 20. 2024

카페의 추억

그 시절 베네치아는 졸업식이나 해야 가볼 수 있는 곳이었다. 양식집 스타일의 약간 어두컴컴한 카페는 언제나 손님이 적었다. 창가에는 자리마다 키높이의 칸막이가 세워져 있었는데 옆자리 손님의 방해를 받지 않아서 좋았다.

테이블에는 크로아티아 축구 유니폼처럼 빨갛고 하얀색 격자무늬의 식탁보가 깔려 있었고 그 위는 유리로 덮여 있었다. 테이블 정중앙에는 여기저기 불에 그을린 검은색 재떨이가 놓여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카페보다 레스토랑에 더 가까운 가게였다. 


한쪽벽에 LP가 가득 했지만 이 고상한 카페는 음악선곡에 인색했다. 당시 우리가 좋아하던 01OB나 신해철은 절대 틀어주는 법이 없었고 주야장천 카펜터스의 노래만 흘러나왔다. Close to you, Top of the world, 그리고 그중 가장 좋아했던 Yesterday once more까지 수천번은 들었다. 가끔 운이 좋으면 마이클 볼튼의 When a man loves woman이나 글렌메데이로스의 Nothing’s gonna change my love for you 같은 노래를 들었다. 


손님이 별로 없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카페엔 웨이터가 딱 한 명 있었다. 그는 삐쩍 마른데다 옆머리에 무스를 발라 풀처럼 딱붙인 장발이었는데 항상 검정 '기지바지'에 알록달록 붉은색 무늬가 새겨진 조끼를 입었다. 우리는 그를 멸치형이라고 불렀다.


수업이 끝나고 야간자율학습이 시작되면 우리는 감독선생이 한눈을 파는 사이 몰래 자습실을 탈출해 베네치아로 왔다. 우리는 항상 창가 쪽 맨 구석자리에 앉아 감춰놨던 88한갑을 꺼내서 피워대며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았다. 공부는 진작에 포기했고 세상에 온통 불만투성이였던 우리는 그곳에 출근도장을 찍다시피 자주 들락거리며 멸치형과 자연스레 친해졌다. 


가난한 고등학생들이었던 우리가 시킬 수 있던 건 기껏 콜라, 사이다가 전부였다. 여유 좀 있던 날은 오렌지주스를 마실 때도 있었다. 가끔이지만 용돈이라도 받은 날은 자그마치 콜라 세 잔값인 파르페를 시켜 먹기도 했다. 그런 날이면 멸치형은 선심 쓰듯 땅콩과자 한 접시를 서비스로 내어 주기도 했다.


졸업하면 뭐해먹고 살래?라고 물으면 “몰라, 암튼 대학은 안 가! 졸업하고 노가다나 뛰며 살다가 때 되면 군대나 가겠지 뭐!”

나를 포함해 사람 구실이나 제대로 하며 살까 의문이었던 이 놈들은 지금 현재 모 국립대학 교수, 모 공공기관 인사부장, 모 금융회사의 노조위원장으로 나름 한구실하며 잘 살고 있다. 시간이라는 바퀴의 회전은 내일은 오지 않을 것처럼 살던 우리들을 오늘로 운반했으니, 우리는 인생에서 가장 젊었던 그날들을 이상한 눈으로 회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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