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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yworker Mar 14. 2024

첫 문장을 쓰는 괴로움에 대하여

열망은 크지만 막상 시작하려면 힘든 것이 있다. 

손꼽아 보자면 한둘이 아니겠으나 나에겐 러닝과 글쓰기가 특히 더 그렇다. 

복장을 갖추고 현관 밖으로 한 발짝 내딛는 것. 

달리기의 첫 번째 난제이다. 

이 문턱만 넘는다면 일단 러닝의 8할은 성공이다.


글쓰기의 시작은 훨씬 곤란하다. 

책상 앞에 앉아 모니터를 켠다. 

Depapepe의 현란한 기타 연주처럼 키보드 위를 자유롭게 뛰어다니며 수려한 문장을 써나가는 나를 상상한다. 하지만 현실의 내 모습은 방학 마지막날 밀린 일기장을 펼쳐놓은 채 끙끙대는 초등학생과 같다.  

텅 빈 화면, 커서의 깜박임에 따라 머릿속이 하얘질 때쯤 별의별 SNS 알람이 사이렌처럼 손짓한다. 유혹을 이겨내지 못한 난 이내 인터넷 서칭의 블랙홀에 빠져 한참을 허우적거린다. 정신을 차릴 때쯤, 시간은 나를 지나쳐 훌쩍 가버리고 공허함과 죄책감이 또 한 번 나를 짓누른다. 


순간 떠오른 영감은 잠깐 방심해도 연기처럼 사라져 허망하게 한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처럼 말이지. ‘너무 유치한가? 재미없다고 비웃으면 어쩌지? 이 글을 보면 기분 나빠하는 거 아니야?’ 일단 시작하는 것이 중요한데 불필요한 상념이 들끓는다. 마치 재미있는 책 한 권 읽겠다고 이 책, 저책 서문만 살펴보다 결국 한 줄도 못 읽고 잠드는 것처럼…




글쓰기는 왜 괴로울까? 돈벌이를 위해 하는 일은 대체로 힘들고 하기 싫다. 

다시 생각해 보자. 글쓰기는 생계와 특별한 연관이 없다. 나는 글쓰기의 프로도 아니고 전업작가도 아니다. 

못한다고 딱히 비난할 사람도 없다. 그저 나 재밌자고 하는 일인데 뭐 하러 스트레스를 받는건데? 

어깨 힘만 빼고 쓰면 그뿐이다.


넷플릭스에서 ‘Abstract’라는 다큐를 인상 깊게 봤다. “영감은 아마추어를 위한 것이다. 프로는 그저 아침이 되면 출근할 뿐이다. 즉 영감이 떠오를 때까지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저 출근해서 일을 시작한다. 놀라운 일이 생길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기회를 열어두는 것이다.”

언젠가 하루키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다.


나의 바람을 충족시켜 줄 힌트는 여기 있는 것 같다. 매일 신발끈을 묶고 현관밖으로 뛰어나가는 것처럼 그저 꾸준히 쓰다 보면 나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것이다. 운이 좋다면 영감을 기다리지 않는 날도 오겠지. 

달리다보면 속도와 거리가 조금씩 늘어가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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