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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yworker Mar 26. 2024

봄이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연아 아빠 이번 주말에 뭐 해요? 
별일 없으면 우리 함께 캠핑 갑시다.
내가 기가 막힌 곳을 찾아놨어... 하하"


그를 처음 만난 건 10년 전, 눈이 무릎까지 쌓인 강원도 홍천의 어느 캠핑장이었다.

밖에서 한참 눈썰매를 타던 딸내미가 동갑내기 친구가 생겼다며 텐트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군밤을 까먹으며 한참 수다를 떨던 아이들은 헤어짐이 못내 아쉬웠는지 엄마들을 통해 서로 연락처를 교환했다.



벚꽃 필 무렵 그에게 함께 캠핑을 가지 않겠냐는 문자가 왔다. 아이들은 쉽게 친해졌지만 우린 멀찍이서 목례 한번 한 게 다였다. 낯선 이들과 2박 3일을 잘 지낼 수 있을까? 어색할 수밖에 없을 텐데. 마음이 미리 불편했다. 고민했지만 아이들 성화에 못 이겨 그러겠다고 답을 보냈다. 

우려와 달리 우리의 첫 캠핑은 꽤 근사했다. 진분홍 철쭉이 활짝 핀 봄날의 캠핑장은 아름다웠고, 아이들은 싸우지 않고 잘 어울렸다. 등갈비, 어묵탕, 더치오븐으로 만든 무수분 요리 등 마치 잔칫날처럼 며칠 전부터 준비한 음식을 나누며 두 가족은 서로에 대해 알아갔다.



그날 이후  우리는 수십 번의 캠핑을 함께했다. 그는 캠핑에 정말 진심이었는데 늘 예상도 못한 기발한 음식과 신기한 장비로 우리를 즐겁게 해 주었다. 그의 신형장비를 구경하다 내린 지름신 덕분에 한동안 중증 장비병 환자가 되어 아내에게 타박받기도 했지만 아무튼 돌아보면 아름다운 추억뿐이다.


우리는 따뜻한 봄날, 벚꽃 잎 흩뿌려진 테이블을 예쁘게 세팅해 놓고 음식을 즐겼다. 한여름엔 시원한 계곡을 찾아 아이들과 신나게 물장난을 쳤다. 비밀의 숲, 붉게 물든 단풍 사이로 그윽하게 퍼졌던 커피 향은 회고 속에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눈 덮인 캠핑장 화목난로에 둘러앉아 쥐포를 구우며 히히덕거렸던 우리들... 그 모든 장면이 뺏길 수 없는 순간을 만들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점점 커가고 주말이 자유롭지 못한 시기가 되면서 캠핑 횟수는 줄어들었고 우리 관계도 소원해졌다. 그래도 가끔은 안부를 주고받았고 또 가끔은 만나 함께 식사도 했다.



그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봤던 건 재작년 가을이었다. 그는 몹쓸 병에 걸렸다고 웃으며 말했다. 나는 치료 과정에 힘듦이야 있겠지만 아직 한창 젊고 의료기술이 얼마나 좋아졌는데,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실제로도 나는 그가 곧 나아 예전처럼 좋아하는 캠핑과 자전거를 실컷 즐길 거라 생각했다.


치료는 잘 받고 있겠지? 큰 애들 시험이 끝나면 가족끼리 함께 만나 회포를 풀어야겠다고 생각을 하던 지난 연말. 그에게서 오랜만에 문자가 한 통 왔다. 내용 없이 온라인 링크만 한 줄 적혀있었다.

스팸인가 싶었지만, 평소 이런 식의 문자를 보내는 사람이 아니란 걸 알기에 순간 마음이 덜컥했다.


그에게 마지막 인사를 드리던 날. 영정사진을 보는데 코끝이 시렸다.

아직 한참 크고 있는 두 아이와 아내를 두고 먼저 떠나야 하는 마음은 어떠했을까?

나는 먹먹한 가슴을 두드렸다. 부질없는 후회가 뒤따랐다. 

형! 정말 미안하고 고마웠어요.

좋은 사람이었다는 거 늘 잊지 않고 기억할게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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