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커머스에서 콘텐츠의 가치
무신사에 입사한지 4년차가 지난다. 첫 해에는 기존의 무신사 콘텐츠와 관련 조직을 고도화하는 일을 했고, 이후 새로운 콘텐츠 포맷들을 시도했다. 그 중 에너지를 가장 많이 쏟았던 것 네 가지를 꼽는다면 <무신사 라이브>, <숏TV>, <무신사 크루>, <넥스트패션>이다. 이번 글에서는 <숏TV>와 <무신사 크루>부터 써본다.
숏폼 콘텐츠 혹은 숏폼 비디오(이하 숏폼)는 ‘틱톡’이 세계적인 유행이 되면서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됐다. 여기서 숏폼은 대략 ‘세로 화면 비율에 60초를 넘지 않는 동영상’을 말한다. 이 역시 학문적/사전적 정의가 아직 없다. 숏폼의 정의가 무엇이냐 정색하고 파고들면 답이 없다. 이 정도로 선을 긋자.
이에 대응해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은 ‘릴스’, 유튜브는 ‘쇼츠’를 내세우면서, 숏폼은 모바일 콘텐츠와 소셜미디어 시장에서 주류가 되었다. 모바일, 콘텐츠, 소셜미디어로 고객을 접하려면 이제 숏폼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의 모바일커머스 업계도 마찬가지다.
이렇듯 대세이긴 하나, 기왕 하는 것 왜 해야 하는지 한번쯤은 끝까지 고민해 보았다. 내 신념(?)으로는, 소매유통업에서 콘텐츠는, 자원을 들여 가치와 정체성을 만들고, 표현하고, 유통시켜야 할 대상이다. 그렇기에 내게는 ‘대세이니까’ 하나만으로는 이유로 부족했다. 남들 다 하는 대세인데 굳이 나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오로지 내 입장에서 해야 할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특히 내가 숏폼을 기획할 때는 2019년, 29CM에 재직할 때였다. 당시 29CM은 무엇을 하더라도 29CM만의 가치와 정체성을 구하는 회사였다. 나는 같은 신념 혹은 기획의도를 가지고 29CM에서는 <29TV>를, 무신사에서는 <숏TV>를 만들었다. 모바일 커머스에서는 숏폼이 어떤 의미와 가치가 있는지 고민하며 기획했던 과정을 돌아보려 한다.
이토록 짧은 길이의 미디어가 대세가 된 것은 모바일이라는 하드웨어의 특성에 기인한다. 스마트폰은 미디어 기기이자 통신 기기이며, 수많은 어플리케이션이 작동하는 하나의 작은 컴퓨터이고 내 육체(손가락)를 수시로 대놓고 있는 물체다. 미디어 기기이긴 하지만, 콘텐츠 제공자 입장에서는 장애물이 많아 험난한 환경이다. 사용자에게 여기저기서 소통의 시도가 끼어든다. 앱 푸시 알림이 뜨고, 친구에게 메시지가 오고, 전화가 걸려온다. 여러가지 재미난 어플리케이션이 들어 있는 작은 컴퓨터 위에 내가 손가락을 대고 계속 만지작거리고 있으니 콘텐츠를 보다가도 딴짓하기 딱 좋다. 그런 사용자를 콘텐츠가 ‘동작 그만’ 시킨 채로 오랫동안 잡아두기 어렵다. 사용자가 작정하고 보는 영화나 드라마 같은 영상과 달리 일방적으로 맥락 없이 들이대야 한다면 긴 러닝 타임은 독이다. 이런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반드시 짧아야 한다.
얼마나 짧아야 할까? 사람이 정신 차리기 빠듯할 만큼 짧아야 한다. 이 콘텐츠가 무엇이고 그래서 더 볼 필요가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는 과정보다 길면 안 된다. 이게 무엇인지 파악해 호기심을 느끼게 하고 그것이 다 증발해 버리기 전에 영상은 끝나야 한다. 상황 파악과 호기심 자극에 필요한 시간 1초~3초, 계속 시청할까 말까 판단하는 시간 3초~8초, 전달하려는 상업적 메시지에 필요한 시간 8초~15초 정도다. 이에 꼭 맞는 과학적 근거나 연구자들의 실험 결과는 찾을 수 없었다. 현장에서 얻은 한정된 체험이다. 굳이 근거를 찾아보면 이런 내용들은 있었다.
<최강소비권력 Z세대가 온다>의 저자이자 퓨처캐스트 대표인 제프 프롬은<동아비즈니스리뷰>와 인터뷰하며 Z세대의 미디어 시청에 관한 실험 결과를 이렇게 전했다. “Z세대는 5개의 화면을 동시에 다루면서 8초 정도의 집중력을 가진다.” 2022년 3월 19일자 <동아일보>에서는 틱톡 팔로워 4,060만 명을 보유한 서원정 씨의 이야기가 소개됐다. “영상을 만들 때 가장 짧은 단위인 15초를 안 넘기려고 한다. 더 길어지면 (사용자들이) 영상을 보다가 넘겨버리는 경향이 있다”. 일본 홋카이도 대학의 가와하라 준이치로 교수의 연구도 있다.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고 단지 옆에만 두어도 주의력이 떨어진다는 그의 실험 결과는 일본심리학회 온라인 국제학술지에 발표되었다. 실험 과정에서 참가자들이 T자 모양의 도형을 찾아내는 데 걸리는 시간을 측정했는데 옆에 스마트폰을 놓아둔 이들은 평균 3.66초, 메모장을 놓아둔 이들은 평균 3.05초 만에 찾아냈다. 뭐가 됐든 상황 파악에 걸리는 시간은 3초 내외라는 소리다. 이렇듯 스마트폰 속에서 갖가지 방해요소와 싸우며 사용자의 몰입을 온전히 받으려면 시간이 짧을수록 유리하다. 사용자 스스로 의지를 발현해 선택한 영상이 아니라면 말이다.
한편, 패션 분야의 콘텐츠들은 이런 미디어 환경에 맞게 얼마나 변화해 왔는지 살펴보았다.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을 다루는 모바일커머스에서는 여전히 매거진 시대의 전통적인 비주얼 콘텐츠 형태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과거의 종이 잡지 시대와 지금의 모바일 시대 사이의 엄청난 격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것을 전달하는 매개체가 종이냐 디지털이냐의 차이일 뿐 모델, 정적인 포즈, 고정된 사진 이미지, 텍스트로 전달하는 메시지까지, 긴 세월이 무색하게 비슷한 모습이었다.
패션 잡지의 기원을 따질 때 16세기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까지 올라가기도 하지만, 여러 이견을 뒤로 하려면 지금도 발행되는 대표적인 패션 매거진 <보그(Vogue)>나 <하퍼스 바자(Harper's BAZAAR)>를 보면 되겠다. <하퍼스 바자>가 처음 발행된 게 1867년, <보그>가 1892년이라 하니 대략 150년이 넘는다. 이 세월 동안 콘텐츠를 실어 나르는 미디어 기술은 크게 변했지만 패션 콘텐츠의 포맷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특히 종이와 디지털, 잡지와 모바일의 차이를 상기하면 더욱 그렇다. 인쇄되는 유료 잡지 시대에는 에디터가 두 달 전에 기획한 콘텐츠를, 한 달 전에 제작해, 이번 달 들어서야 비로소 볼 수 있었다. 그것도 서점까지 가서 돈을 주고 보아야 했다. 실시간의 모바일 시대에는 이와 다른 방식이 필요했음에도 말이다. 지금 이 순간의 패션을, 모델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동적인 포즈와 살아있는 움직임으로, 자유롭고 다양한 컨셉으로, 텍스트를 넘어서 시각과 청각에 동시에 전달하는 메시지의 시대가 되었다. 패션 콘텐츠에 있어서 과거 종이 잡지의 영향력은 그래서 지금 인스타그램이 대체했다.
그렇게 패션 콘텐츠 역시 빠르고 짧은 콘텐츠가 주류인 시대가 되었다. 지난 150년 동안의 화보가 오랜 시간 많은 리소스를 들여서 한참 기다려야 하는 콘텐츠 포맷이었다면, 이제는 콘텐츠 포맷의 스펙트럼이 넓어져야 하는 환경이 된 것이다. 빠르고, 가볍고, 움직이는 화보가 필요해졌다. 나는 그래서 짧고 가볍고 빠르고 친근한, 모바일에서 볼 수 있는 움직이는 화보가 필요했다. 그것이 내가 29CM과 무신사에서 숏폼을 만든 이유였다. 단지 틱톡이 가져온 이유가 전부는 아니었다.
틱톡, 릴스, 쇼츠의 숏폼들을 보면 채널마다 결의 차이가 있다. 반응이 좋은 숏폼의 형태가 미묘하게 다르다. 이 글의 주제는 소셜미디어가 아니니 그 차이가 무엇인지는 넘어가자. 대신 소셜미디어의 숏폼과 모바일커머스의 숏폼은 서로 어떤 차이가 있어야 하는지 다룬다.
무신사는 숏폼 전문 서비스, <숏TV>를 앱 메뉴로 배치했다. 론칭 초기에는 틱톡이나 릴스를 참고했다. 그러다 보니 나도 실무자들도 ‘트랜지션(transition)’에 집착했다. 여기서 ‘트랜지션’은 우리 내부에서 쓰던 용어인데, 대략 ‘시선을 강탈할 화면 편집 효과’ 정도의 의미로 쓴다. 우리의 서비스는 틱톡이나 릴스의 흔한 숏폼들처럼, 눈길 끄는 외모, 저작권료 내야 하는 음원, 댄스 일변도의 챌린지 등을 구사하기에는 적절치 않았다. 그렇게 하면 변별력도 없고, 상품보다 출연자나 퍼포먼스로 시선이 분산될 수 있으며, 인기 있는 음원은 비용도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흔한 패션 화보 B컷을 동영상으로 전환한 게 전부인 숏폼이라면 사용자에게 볼 만한 가치(재미)를 주지 못했다. <숏TV>만의 특별한 시선강탈 요소가 필요했다. 그래서 여러가지 기발한 편집 기법으로 트랜지션을 많이 시도했다. 예를 들어 엘리베이터에 탄 사람이 문이 열릴 때마다 옷이 바뀐다거나, 공중에서 여러 모자들이 떨어지는데 머리로 받아내면 그 모자를 착장한 코디로 바뀐다거나 등의 효과다. 당연히 이런 모션을 사전에 기획해, 현장에서 여러 번 촬영하고, PD들이 ‘프리미어 프로’나 ‘파이널컷’ 같은 영상 제작 소프트웨어로 후보정하며 소스를 붙이는 방식으로 제작한다.
그러나 이런 재기발랄하고 기발한 타입은 점차 창의력이 고갈되고 시청자의 피로감이 누적됐다. 이 역시 틱톡 대비 차별적 가치도 낮아지고, 패션 유통업자로서 기대하는 효과도 적어질까 염려했다. 결국 모바일커머스의 숏폼은 전통적인 종이 잡지와 ‘틱톡스러움’의 중간에서 균형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무신사 <숏TV>는 콘텐츠 구성의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했다. 트랜지션 외에도 브이로그의 숏폼 버전인 숏로그(short-log), 코디와 스타일링을 제안하는 큐레이션 영상, 룩북 타입의 영상 화보,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에 유용한 팁, 상품 디테일 소개, 리뷰, 상황극, 퍼포먼스(댄스나 노래 등), 아티스트 콜라보 등으로 다양하게 펼쳤다. 그 중에서 조회수나 반응이 좋은 건 대체로, 자연스러운 날것의 느낌이 잘 표현된 숏로그와 유용한 패션 팁이었다. 예를 들어 운동화 끈 예쁘게 매는 4가지 방법, 목도리 예쁘게 매는 법 등의 숏폼은 인기가 좋다. 아티스트 콜라보는, 숏폼을 시도하는 다른 이커머스에서 아직은 하지 않는 <숏TV>만의 차별화된 타입이었다. 소니뮤직을 시작으로 엔터테인먼트 기획사의 뮤지션들과 콜라보로 만드는 숏폼이다. 무신사에 입점된 상품을 해당 뮤지션들에게 스타일링 해주고, 그들은 자신의 곡을 숏폼의 BGM으로 활용한다. 음악과 아티스트와 패션이 결합한 영상 화보인 셈이다. 당연히 해당 기획사와 뮤지션, 무신사는 윈-윈 관계가 된다. 해당 숏폼이 많이 퍼질수록 아티스트의 음원과 무신사의 상품이 서로 마케팅 해주는 구조다.
그러나 모바일커머스의 숏폼과 소셜미디어의 숏폼 사이에 필요한 변별력은 이러한 콘텐츠의 ‘내용’만으로는 부족하다. 사실 내용보다는 그 콘텐츠의 폼 팩터(form factor)가 변별력으로서 더 결정적이다. 모바일커머스 플랫폼은 유통업으로 보자면 ‘매장’이다. 사람을 불러오고 그들에게 상품을 팔아야 하는 접점이다. 따라서 숏폼 영상이 유통됨으로써 사람들에게 인상(impression)만을 남기는 게 종착역이 아니다. 영상을 접한 사람들을 상품으로 끌어오는 물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사람들 사이에 유통되는 이 숏폼이 하나의 디지털 애셋(asset)으로서, 돌아다니는 작은 매대 역할을 해줘야 한다. 따라서 영상에서 상품 및 관련 정보(가격, 브랜드명 등)가 보여야 하고, 그것들을 터치하면 매장으로 오거나 결제가 되거나 사용자의 보관함에 담겨야 한다. 해당 숏폼이 인스타그램 릴스에서야 이런 폼팩터로서 작동할 수 없더라도, 매장(플랫폼) 안에서 전시될 때는 이런 기능들이 탑재되어야 한다. 매장에서만큼은 영상을 보다가 언제든 상품에 닿을 수 있어야 하고 구매할 수 있어야 하며, 이를 온라인 상에서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제공해야 한다. 그래야 콘텐츠가 매대가 된다.
그에 더해 내가 방점을 둔 것은 ‘프로세스’ 였다. 언젠가는 사용자 참여형으로 숏TV를 열어야겠지만, 첫 단계에서는 무신사 내부 제작 숏폼만 게시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처음부터 완전히 개방된 사용자 참여형으로 구성하면 어떤 콘텐츠가 어떻게 올라올지 예상이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전량을 내부 제작 콘텐츠로 운영하려면 역시 채산성의 문제가 대두된다. 제작 인력의 인건비보다도 당장 숏폼 제작 비용이 문제였다. 물량도 많고 길이도 수십 초인 짧은 영상에 모두 전문 패션 모델을 출연시키면 비용이 커질뿐더러, 사용 범위에 따라 초상권 추가 비용도 가늠이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문 모델로 촬영하면 제작 기간과 일정 운영도 어려웠다. 섭외 조율하고, 촬영 일정 잡고, 현장에서 헤어와 메이크업을 세팅하는 등 전통적인 일반 화보 찍는 과정과 비용을 똑같이, 혹은 그보다 더 치러야 했다. 또한 영상의 결이나 뉘앙스도 내가 원하는 대로 잘 뽑히질 않았다.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전문인의 느낌 말고, 날 것의 느낌에 자연스럽고 친근한 느낌을 나는 원했다.
그래서 기획한 것이 <무신사 크루(Crew)>였다. 전문 모델이 아닌 일반인을 섭외했다. 취미로 하든, 모델이 되기 위한 경험이 필요해서 하든, 그냥 ‘관종’이든,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이 일에 임할 사람들을 찾아 모으고 함께 발전시켜 나갔다. 이 크루들은 스스로 발전해, 상품만 전달받으면 본인이 스마트폰으로 직접 촬영해 소스를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경험이 쌓인 무신사 크루들은 ‘무신사 라이브’와 화보에 출연하기도 한다. 크루의 역할과 활용이 확장하는 모형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회사는 프로 모델에 비해 비용 면에서 유리했고, 크루 입장에서도 아쉽지 않는 출연료여서 서로 ‘윈-윈’이었다. 이 구조를 아티스트까지 확장한 것이 위에서 말한 아티스트 콜라보 숏TV였다.
이 <무신사 크루>를 활용한 뉴미디어 콘텐츠 모형의 실험으로서 최근 론칭한 것이 무신사의 새로운 콘텐츠 <다세대 멘션> 이다. (링크)
<무신사 크루> 중에서 흥미로운 개성과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이들을 따로 발굴해 인큐베이팅하며 유튜브 채널과 인스타그램 계정 <다세대 멘션>을 제작 중이다. 유튜브 채널에서 하나의 프로그램 재생 목록이 가상의 콘텐츠 공간 다세대 멘션의 ‘호’인 것이다. 101호에 화랑, 201호에 지민, 301호에 찬우… 이런 식으로 ‘입주’ 시키는 콘텐츠 IP이자 세계관이다. 이들은 이 채널에서 각자의 콘텐츠를 세미-프로 형식의 브이로그로 채워나간다. 각 영상은 유튜브에 맞게 10분 내외일텐데, 여기서 하이라이트를 뽑아 30초 내외로 재편집해 릴스, 틱톡, 그리고 무신사 숏TV에도 유통할 예정이다. 당연히 모든 콘텐츠에 자연스럽게 무신사의 입점 상품들이 녹아들어 있다. 패션은 물론 뷰티, 가전, 라이프스타일 등이 포함될 것이다.
정리하자면, 결국 숏폼 콘텐츠라 하면 그냥 ‘영상을 짧게 만들자’가 아니라, 이것을 왜 해야 하고 어떻게 변별적 가치를 갖도록 만들며, 채산성과 가치 제고의 프로세스를 어떻게 만들지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