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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호훈 Sep 25. 2024

“Reading is so sexy”

: Z세대의 도파민-독서와 글쓰기

[인문학적 빅데이터 해석]

글 정호훈 소셜리스닝랩 대표/대림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


세계적인 모델 신디 크로포드의 딸이자 인기 모델 카이아 거버. 그녀는 ‘라이브러리 사이언스’라는 이름의 북클럽 운영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최근 많은 유명인이 자신만의 북클럽을 운영하고 있으며, Z세대를 중심으로 북클럽 문화가 부활하고 있다. 그들에게 독서는 더 이상 지루하고 고리타분한 것이 아니다. “독서는 정말 섹시하다(Reading is so sexy)”라는 카이아 거버의 말처럼 스타일리시하고 패셔너블하게 디지털 시대에 스며들고 있다.


(출처: www.theguardian.com)



물리적(physical) 취미를 추구하는 디지털 네이티브


과거, 디지털 시대와 함께 반갑지 않은 손님이 왔었다. ‘출판업의 몰락’이다. 스마트폰이 보급된 2013년 이후 우리나라 국민 독서율(1년에 1권 이상 독서한 사람의 비율)은 2021년까지 지속적으로 떨어졌다. 성인 종이책 독서율은 2013년 71.4%에서 2021년 40.7%로 30.7%P나 줄었다. (문화체육관광부, <2022.여가백서>) 사실 이 상황은 1990년대 초 인터넷 등장과 함께 예견되었다.


정말 출판업은 사라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최근 기이한 현상이 있다. 디지털 네이티브라고 불리는 Z세대를 중심으로 독서가 유행이다. 스마트폰에 중독된 좀비를 의미하는 스몸비(smombie)에 이어, 모바일 기기 터치 입력방식에 너무 익숙한 나머지 타이핑도 못 하는 ‘이상한’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를 경험하고 있는 Z세대가 종이책으로 독서라니!


일찍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전 감독 알렉스 퍼거슨이 “SNS는 인생의 낭비다”라고 한 바와 같이 우리는 SNS에 쉽게 중독된다. 알고리즘을 통해 끊임없이 노출되는 맞춤형 콘텐츠가 주는 정보와 즐거움과 함께, 타인의 화려해 보이는 삶과 비교하며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불안심리-FOMO(Fear of Missing Out)-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특히, 팬데믹을 거치며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외로움과 고립감, 그리고 불안감을 SNS를 통해 해소하며 SNS 중독성은 더 커졌다.


SNS의 짧고, 강한 자극은 쾌감, 보상, 학습 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도파민 분비를 촉진하여 중독에서 벗어나기 힘들게 한다. 결국 자존감은 낮아지고, 충동적인 행동까지 낳게 된다. 대다수는 이런 부작용에 따른 피로감을 극복해야 한다는 자각으로 자연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취미 활동을 하는 등 ‘디지털 디톡스’를 하기도 한다. 그 와중에 독서 모임은 가장 경제적이고 생산적인 활동으로 선택을 받은 것이다.



독서가 섹시한 이유는 내 감정에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도파민은 인간의 생존과 행복에 필수적인 물질이다. 도파민으로 인한 쾌감과 보상은 우리 삶을 즐겁게 만들어주고, 학습과 기억, 그리고 운동 기능에도 영향을 미친다. 반대로 도파민이 부족하면, 우울증, 무기력증, 의욕 저하가 유발되기도 한다. SNS를 통해서도 도파민을 얻을 수는 있지만, SNS의 끊임없는 자극과 즉각적인 보상은 단기적인 쾌락에 집중하게 하고 장기적으로 만족감을 주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반면, 독서는 스트레스 호르몬을 감소시켜 심리적인 안정감을 제공하며, 엔도르핀 분비로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생리적으로 긍정적 경험을 준다. 책을 읽으며 새로운 지식을 얻거나 문제를 해결할 때 느끼는 성취감은 뇌에 장기적인 보상을 제공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독서를 통한 자기 성장은 자기효능감을 높여 자존감을 향상하고, 삶에 대한 만족도를 높이기까지 한다.


Z세대의 독서를 SNS에서 본 유명인의 ‘멋진’ 독서 모습을 따라하며 SNS에 과시하는 ‘보여주기식’ 독서라고 폄하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독서를 시작하면 독서의 긍정적인 부분을 경험하게 된다. 독서를 멋있고 개성 있는 행위로 인식하는 ‘텍스트힙(text hip)’이나, 다양한 공간에서 독서하는 즐기는 ‘독파민(독서+도파민)’이라는 신조어를 분석해 보면 지금의 독서 행위는 단순히 독서 흉내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1년(23.8~24.8) 인스타그램, 블로그, 온라인 카페 등에서 ‘텍스트힙’ 연관어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독서스타그램’의 (소셜)언급량을 보면, 독서가 짧게 유행했다가 사라지는 패드(FAD, for a day)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텍스트힙’ 연관어는 꾸준히 언급되다가 ‘텍스트힙’의 (네이버)검색량과 언급량이 시작되는 2~3월을 기점으로 언급량이 크게 늘어났다. 이는 ‘텍스트힙’ 트렌드를 인지하고 검색하고 경험한 후, 경험을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텍스트힙’은 위 연관어 외에도 다양한 키워드와 연관되어 있다. 연관어가 함께 사용되거나 유사한 맥락을 가지는 키워드별로 나눠보면,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텍스트힙’의 주요 연관어들에서 공통으로 ‘공감’과 ‘좋은습관’이라는 감성어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책에 ‘공감’하고 (모임에서) 서로의 의견에 ‘공감’하고, 독서가 ‘좋은습관’이라는 것이다.


특이한 것은, ‘텍스트힙’ 연관어에서 ‘독서’, ‘모임’, ‘문화’는 유사한 맥락을 가지고 있는데, ‘독서’하면 연상되는 일반적인 감정 대신 ‘힙하다’, ‘섹시하다’, ‘개성있다’, ‘멋지다’, ‘세련되다’, ‘쿨하다’ 등의 감정 표현이 다수 이야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독서 혹은 독서모임을 ‘힙’하고 ‘섹시’하다고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SNS에서 독서하는 사람은 지적이고 매력적인 존재로 인식되는데, 자신의 독서 취향이나 좋아하는 문구를 공유함으로써 자신의 개성을 멋지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과 비슷한 관심사나 관점을 가진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소속감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것도 큰 이유다. 독서 과정에서 느끼는 자기 계발과 성장의 도파민은 다른 경험에서는 얻기 어려운 쾌감이기도 하다.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독서스타그램’은 다양한 감성어와 연결되어 있는데, 인스타그램 ‘릴스’, 유뷰트 ‘쇼츠’, ‘틱톡’ 등 짧고 반복적인 자극으로 즉각적인 도파민을 제공하는 숏폼(short-form) 콘텐츠의 감성어는 ‘좋다’, ‘귀엽다’, ‘예쁘다’ 등 상대적으로 매우 단조롭게 나타났다.




주목할 만한 점은 감성어의 다양성뿐만이 아니다. 감성어를 내용 분석해보니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독서스타그램’의 감성어는 자신에 대한 자신의 감정 상태를 표현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반면, 숏폼(short-form) 콘텐츠의 감성어는 상대방에 대한 나의 느낌에 가깝다. 즉, 보는 것은 같으나 책을 볼 때의 감정은 자아(自我)에 대한 것이며, 숏폼을 볼 때의 감정은 타아(他我)에 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독서가 주는 도파민 또는 힙함과 섹시함을 넘어


모 트렌드 연구소에서는 게이머가 ‘파밍(farming)’하며 아이템을 모으듯 자극을 추구하며 재미를 모으는 현상을 ‘도파밍(도파민+파밍)’ 트렌드라 한다. 하지만 도파민은 인간에게 필수적이며, 자극을 추구하며 재미를 모은 것은 과거에도 같다. 독서나 음악감상, 여행 등을 통한 만족감, 대면 관계를 통한 따뜻함과 안정감, 자연과의 교감을 통한 평온함 같은 식으로 말이다.


세상이 변했으니,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다. 좋지 않은 것에는 피로감을 느끼고, 좋은 것은 잊혔다가도 다시 찾게 마련이다. 지금 독서가 중요한 트렌드가 된 것이 그런 이유다. 디지털 디톡스를 위해 시골(村)에서 바캉스(vacance)를 보내는 ‘촌캉스’가 유행인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자존감을 높이고 사람들과 연결되는 과정에서 삶의 질을 향상하고자 하는 욕구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N포 세대’니 ‘니트족(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운운하며 희망을 포기하고 세대갈등과 성별갈등 등 불통이 넘치는 시대에 이러한 욕구의 해결책으로서 Z세대가 독서를 선택한 것은 매우 희망적이다. 책을 읽는 모습과 경험도 섹시하고 힙하지만 단순히 책을 읽는 것 이상의 의미, 즉 독서를 통해 교감과 소통을 희망할 수 있는 것이 정말로 힙하고 섹시한 것이리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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