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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호훈 Nov 26. 2020

캘리그래퍼와 술을 마셨다.

"캘리, 너무 예쁘고 아름다울 필요는 없잖아요!"

모임이 있었다.

몇 번 보지 못했지만, 친근한, 그리고 살짝 유니크하기도 한 그를, 또 만났다...


공식적인 모임은 끝났다.

코로나니, 뭐니 해도, 술 한잔 안 먹고 헤어지기엔 왠지 아쉬웠다.


“음...뭐...간만에 모임이라 맥주라도 한잔 할 줄 알았어요”


다행히, 그를 포함한 몇 분께서 동조해 주셨다.

아무 데나 갔다. 분위기나 안주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맥주를 들이켜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시나브로 그의 손은 가방으로 가 뒤적이며, 능숙하게 펜과 종이를 꺼냈다. 술자리지만, 늘 그랬다는 듯이...엠보가 들어간 프랑스산 미색 수입지와 일본산 쿠레타게 붓펜 한 묶음이었다.


‘요즘 캘리그래피 학원에라도 다니나?’라고 생각하는 와중에, 그는 이미 글을 써 내려갔다.


아주 신중하고 느린듯했지만, 금세 글자에서 그림으로 이어지더니 색이 칠해졌다. 낙관으로 마무리된 한 장의 종이는 정말 아름다웠고, 따뜻함 그 자체였다.


하지만, 눈에 익은 아름다움이었다. 시각적으로 느껴지는 비주얼도, 마음으로 느껴지는 메시지도.


하지만, 그의 실력이면 체본을 충실하게 따라 쓰는 듯한 글씨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글씨에 좀 더 담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은 사실…


“왜 캘리그래피는 아름답고 예쁜 말을 해야 해요?”


라는 살짝 삐딱한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아 씨바 나 취했나봐" 이렇게 넣어봐요" <나는 날 것을 좋아한다.>


그는 내게 말했다.

“형식이 있어요. 나름대로 방식도 있고. 신영복 선생님 알아요? 선생님이 쓴 <처음처럼> 캘리그래피가 1억을 받았다는…”


나는 중간에 그의 말을 짤랐다.

“캘리는 잘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캘리그래퍼 마다의 캐릭터가 담겨야 해요. 그다음은 메시지구요. 예쁘게 쓰려 하지 말고, 꼴린대로 써보세요”


이내 사람들은 “맞어, 꼴린대로 써보세요”라며 맞장구를 쳤다.


그는 못 이긴 척 써 내려갔다.




마뜩찮은 눈치로 “캘리 작가 앞에서, 이 사람들이 훈수를 두냐”고 투덜거리며 써 내려 가는 그에게 나는 다시 말했다. 내 글은 투박하지만, 공유수가 더 많다며.


“예쁘고 아름다운 글씨가 캘리가 아니라…캘리의 본질은…” 어쩌구저쩌구… 하여튼, 즐거운 시간을 뒤로하고 우리는 막차에 올라탔다.


취기가 돌았지만, 오는 길에 생각해 보니, 그의 말도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김에 그의 펜을 뺏어 휘갈긴 적이 있는데, 우리는 그때, 서로의 글씨에서 서로를 보았다. 나는 그의 글에서 그의 고집을 봤고, 그는 나의 글에서 급한 마음을 봤다.


 취기가 돌았지만, 지하철에 앉아, 그가 마지막으로 써 준 캘리를 꺼내 보았다.


‘캘리그래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라는 같잖은 질문을 캘리 작가에게 던졌었는데,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술김에 그의 펜을 뺏어 휘갈긴 적이 있는데, 우리는 그때, 서로의 글씨에서 서로를 보았었다. 나는 그의 글에서 그의 고집을 봤고, 그는 나의 글에서 나의 급한 성격을 보았지만,...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말에 공감했었다.

캘리는…눈을 만족시켜주는 비주얼과 마음을 만족시켜주는 메시지가 버무려져 뭔가 가슴에 퐉! 꽂아주는 수준 높은 컨텐츠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위의 캘리그래피는 캘리그래퍼 청산님께서 술김에 쓰신 겁니다. 청산님의 캘리그래피가 필요하신 분은 저에게 연락주세요^


*술자리는 코로나 #covid19 가 안정 단계일 때 있었습니다.

#캘리그래피 #캘리그래퍼 #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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