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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긍정 Oct 14. 2016

대학입시에 '추첨제' 도입이 합리적인 이유

feat. 네덜란드 대입제도

혹시 글의 제목을 보자마자 "터무니 없는 일이다.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냐, 이제 하다 하다 추첨제까지 도입하자고?" 등의 반응을 보이신 분이라면 더더욱 이 글을 꼭 읽어보시길 부탁드립니다. 

우리 교육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굳이 제가 강조하지 않아도 누구나 동의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교육의 문제는 비단 교육의 영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직업 간 과도한 임금격차 해소, 파벌 학벌 문제, 정규직·비정규직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사회 개혁, 대학 서열화로 인해 발생하는 각종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대학 및 입시 개혁, 입시에 종속되어 모든 것이 왜곡되고 있는 초중등교육 개혁이 요구되는 등 수많은 사회적 요인들이 엮인 문제입니다.

양질의 일자리가 많이 생기고, 각종 사회적 차별이 사라지며, 어떠한 직업과 삶도 존중받으며, 사회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안전망이 갖춰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해결책이겠지만, 이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기가 너무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학습된 무기력함'에 빠져 모든 것을 손 놓고 놔버리는 근본주의적인 사고에만 빠져있을 수만은 없겠죠.

그런데, 곱씹어 보면 볼수록 만약 우리나라 대입제도에 '추첨제'가 도입된다면 완전한 문제 해결은 어렵겠지만, 지금과 같은 각종 왜곡 현상들을 현저히 완화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완전한 추첨제를 도입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당연히 우리 교육의 실정에 맞게 어느 정도 조정된 추첨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얘기이며, 실제로 몇몇 교육전문가들은 이를 심도 있게 검토하여 '범위형 대입제도', '네덜란드식 추첨제' 도입 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하단 링크 참고)

<대입 문제 완화를 위한 제안:범위형 대입제도, 박남기 광주교육대 교수·前총장>

<교육 30년지대계(3) - 대입전형(수능) 미래방향 4가지, 사회적 합의로 정하자! 이찬승 교육을바꾸는사람들 대표>


그렇다면 과연 '추첨제'를 도대체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요? 이전 글에서도 여러 번 언급했던 '수능 자격시험화 + 가중치형 추첨제 + 직접 선발 제도'가 제가 주장하는 큰 틀입니다. 이는 '네덜란드형 추첨제' 모델과 '범위형 대입제도' 등과 유사한 형태입니다. 

우선 
수능을 자격시험화하여 대학에서 학업을 이어갈만한 역량이 있는지를 기존 객관식 형태가 아닌 논술 등의 '주관식' 형태로 등급을 매기는 '절대평가'로 전환합니다. (이 역시 추첨제를 통해 변별력 집착 문제를 완화했기에 가능한 제도인데, 자세한 사항은 하단에서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후 일정 등급 이상이 되면, 즉, 최소 자격만 갖춘다면 원하는 대학의 원하는 학과에 지원할 수 있도록 합니다. 다만, 완전한 추첨제를 도입할 경우, 당연히 상위권 대학과 특정 학과에 인원 쏠림 현상이 생길 것이고 학생의 역량을 완전히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기에 '가중치형 추첨제'와 '직접 선발'을 도입하면 좋을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가중치형 추첨제'란, 네덜란드에서 시행하고 있는 입시제도로, 고교 졸업 시험 성적에 따라 추첨될 확률에 조금씩 차등을 두어 선발하는 제도입니다. 즉, 성적이 좀 더 좋은 학생들이 추첨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죠. 

그런데, 추첨제를 통해 학생을 선발한다면 가장 크게 피해를 볼 수 있는 학생이 바로 상위권 학생들일 것입니다. 
어차피 지금의 '성적'이라는 점수가 그 학생의 역량을 제대로 평가해주는 지표가 아니지만, 그럼에도 성실히 공부한 학생들이 다른 모든 학생들과 비교해 아무런 이점을 갖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강력한 '사회적 거부감'이 발생할 것입니다. (궁극적으로는 대학 평등화가 잘 이루어져서 일정 자격만 갖추면 모든 학생이 성적에 관계없이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과에 가는 것이고, 이 '성적' 역시 지금과 같은 시험 잘 보기 역량이 아닌 교사별 평가를 통해 절대평가화된 학생의 다양한 역량이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성적이 우수한 학생은 그 성적에 따라 추첨 확률이 좀 더 올라가긴 하지만 위와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기에 네덜란드에서도 '직접 선발'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직접 선발은 내신성적이 매우 우수한 몇몇 학생들을 추첨제와 상관없이 대학이 우선적으로 선발하는 제도입니다. 물론 이 몇몇 자리를 위해 또 다른 경쟁이 시작될 수도 있겠지만, 각 대학의 선발 인원 중 일정 비율 정도는 직접 선발을 허용함으로써 어느 정도 사회적 거부감을 완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추첨제'가 우리 교육에 가져올 변화는 무엇일까요?  


점수가 높든 낮든 학생 누구에게나 
자신이 하고 싶은 분야의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 '추첨제' 도입이 가져올 연쇄 효과


1. '선발 효과'에 의존하다시피 한 대학들을 '교육 경쟁'으로 유도할 수 있다. 


지금의 대학 서열화는 과연 대학들의 우수한 교육 및 연구 역량이 바탕이 되어 이루어진 것일까요. 아니면 입학생의 성적과 지역적 우위 등의 선발 효과에 의존하여 이루어진 것일까요지금의 고착화된 서열에 의존하여 어쩌면 대학들은 '교육 경쟁'이 아닌 '선발 경쟁'에 안이하게 매달리며 진정한 대학 혁신을 게을리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의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추첨제'를 도입한다면 기존의 입시제도와는 달리 성적이 다양한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올 여지가 생기기 때문에 소위 상위권 대학이 가지고 있던 선발 효과가 약해질 수 있습니다. 결국 대학들은 자신들의 평판과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소위 비교적 뒤에 있다고 하는 대학들은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선발 경쟁'이 아닌 '교육 경쟁'을 해야 할 것입니다. 즉, 대학 경쟁의 패러다임이 '선발 경쟁'이 아닌 '교육 경쟁'으로 전환될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선진국과는 달리, 입학이 어렵고 졸업이 비교적 쉽습니다. 소위 교육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은 입학은 쉬운 대신 졸업이 매우 어려운 데 말이죠. 우리 대학도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선발 효과를 과감히 포기하고 어떠한 학생이 들어오든 질 높은 교육을 통해 우수한 학생들로 졸업시킬 수 있는 대학이 진정한 '명문대'가 아닐까 합니다.  


2. 대학 역시 이점이 생긴다. 


대학 입장에서도 좋아지는 측면이 있습니다. 대학이 우수한 학생들을 어떻게든 최대한 선발하려고 얼마나 많은 애를 쓰고 있습니까. 그런데, 학생부종합전형 같은 입시제도는 정성평가이기에 필연적으로 '주관적'인 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대학에 지원하는 학생들의 역량을 몇 가지 서류와 지표만으로 판단하기도 매우 어렵고, 비슷한 학생들끼리의 역량을 비교하여 누구는 선발하고 누구는 떨어뜨리기가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이로 인한 행정적, 자원적 낭비가 얼마나 심하겠습니까. 

그런데, 어느 정도 일정 자격을 갖춘 학생들에 대해서 추첨제를 적용하면 애초에 정확한 비교가 불가능한 학생들을 일일이 비교하거나 비슷한 학생들의 역량을 애써가며 비교할 필요도 없어집니다. 몇 가지 서류들을 통해 주관적 판단을 통해 학생들을 선발하는 것이나, 그냥 추첨제로 선발하는 것이나 큰 차이는 없을 것입니다. 

또한 추첨제를 통해 단순히 성적만 좋은 학생만 선발되지 않고, 성적은 조금 낮을지 몰라도 더 우수한 역량을 가진, 다양한 잠재력을 가진 학생들이 들어올 수 있기 때문에 대학 입장에서도 결코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닐 것입니다. 



3. 개개인의 진정한 역량은 애초에 '측정할 수' 없다. 


생각해볼까요. 지금의 수능 성적이, 학생부종합전형이, 내신 성적이 학생 개개인의 진정한 역량을 담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당연히 불가능합니다. 삶에서 진짜 필요한 역량은 '측정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과 같이 '측정 가능한 역량'은 그 학생의 정말 극히 일부의 역량일 뿐이죠. 시간의 압박을 견딜 수 있는 역량, 유형 별 풀이 스킬 역량, 암기 역량 등은 평가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요.


이런 역량을 대학이 정말 요구하는 것이라면 뭐 할 말은 없습니다. 물론, 이런 역량을 갖춘 학생들도 마땅히 필요하지만, 이런 역량'만' 갖춘 학생들을 원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다양한 역량을 존중하기 위해선 역설적으로 그 어떠한 역량도 측정하려고 해선 안 될지도 모릅니다. 애초에 측정이 불가능하니까요. 그러니 추첨제가 오히려 더 효율적이고 합리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4. '변별력'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곧, '선발적' 교육관에서 '성장적' 교육관으로 전환할 계기가 마련된다.

 

지금 초중등학교의 역할이 무엇일까요?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역량을 키우고 사회적 인간으로서 성장하는 과정일까요, 아니면 상위 학교 진학을 위한 수단일까요? 지금의 교육은 서열화된 대학 구조로 인해 모든 것이 대학 입시에 종속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어떠한 교육 정책을 제시해도 대학 입시로 인해 모든 것이 왜곡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이 모든 것은 결국 '선발적' 교육관으로 인해 생기는 문제입니다. 소위 서열화된 좋은 대학이라고 하는 자리는 제한되어 있고, 이 제한된 학벌 지위를 얻기 위해선 어떻게든 단 1점이라도 좋은 성적을 받아야만 합니다. 그러니, 고작 1~2점에 목숨을 걸고 공부하며 실수 하나에도 엄청난 두려움과 자괴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죠. 실수에 대한 두려움을 내면화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껏 '변별력'을 확보한다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시험들이 '교육적 타당성'을 무시한 채 왜곡되어 왔을까요. 오로지 '객관성'과 '공정성'에만 집착하며 어떻게든 줄을 세우려, 어떻게든 시험 문제로 인한 각종 시비를 피하고, 채점의 편의성을 확보하고자 객관식 상대평가를 고집해왔을까요. 

그런데 추첨제가 도입된다면 위와 같이 점수 1~2점에 고통받고 있는 아이들을 구출해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일정 자격을 갖출 정도로만 점수를 얻으면 되고, 그 이후로는 점수에 상관없이 추첨제로 선발이 이루어지니 자연스럽게 1~2점 점수 차에 집착할 이유가 없어집니다. 

어느 정도의 자격만 평가하면 되기에 그동안 변별력에 집착한 수능이 객관식 상대평가의 모습을 벗어나 서술형 형태의 주관식 절대평가의 모습으로 탈바꿈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5. 잉여시간, 자기성장시간이 생긴다. 불필요한 사교육에 갈 이유가 없다.


결국 1~2점 점수 차이에 집착하지 않아도 되니 자연스럽게 하루 온종일 시험 준비에만 집착했던 많은 시간들이 불필요하게 됩니다. 어느 정도로만 공부하면 되니까요. 따라서 이로 인한 '잉여시간'과 '자기성장시간'이라는 간접적인 효과도 나타납니다. 쉼, 놀이, 여유가 생기는 것이죠. 불필요한 사교육에 갈 이유도 없습니다.

이러한 잉여시간 속에서 학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의 꿈은 무엇인지, 자신의 미래는 어떻게 계획할 것인지를 '생각해 볼' 시간이 자연스럽게 생길 수 있는 것입니다. 정말 '필요한 시간' 말이죠. 


6. 진정한 '대학 선택의 자유'가 가능하다. 


이게 무슨 소리냐고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지금도 학생들이 원하는 대학에 지원해서 가고 있지 않느냐고 말이죠. 정말 그럴까요? 정말 학생들이 자신이 원하는 학과와 대학에 지원하여 진학할까요, 아니면 '자신의 점수'에 맞는 학과와 대학에 지원할까요. 굳이 답을 말씀드리지 않아도 아실 겁니다. 

그런데 추첨제 제도 안에서는 일정 자격만 갖추면 자신이 원하는 대학과 학과에 충분히 지원해볼 수 있는 기회가 실질적으로 생기기 때문에 자신의 점수보다 '자신의 마음에 맞는' 학과와 대학을 선택할 진정한 자유가 생길 수 있습니다. 

대학 차원에서도 각 학과에 정말 흥미가 있고 우수한 학생들을 오게 하기 위해 '수능 커트라인'이 아닌 '학과 입학을 위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공하여 사전에 학생들이 필요한 역량들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 것입니다.  


7. 진정한 의미의 '교사별 평가', '주관식 평가', '절대 평가'가 가능해진다. 


그동안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평가는 '살벌한' 경쟁 구조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점수 하나하나가 대학입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에, 반드시 학생들을 줄 세워야 하기에 함부로 점수를 매길 수도, 그러니 시험 역시 답이 명확한 객관식 문제들로만 구성되었죠. 심지어 같은 과목을 서로 다른 교사가 가르친 수업임에도 교사별 평가가 아닌 과목별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객관성과 공정성이라는 명목으로 각종 평가와 수업이 하향 평준화될 수밖에 없던 것입니다. 새로운 평가와 수업을 적용해보고 싶어도 과목 내에서는 모두 동일하게 맞춰야 하니까요. 그런데 높은 수준으로 맞추기보다 낮은 수준으로 맞추는 게 더 쉽겠죠. 

그런데 추첨제가 도입되면 '변별력을 확보하기 위한 살벌한 경쟁'이 완화되기 때문에 굳이 수업과 평가를 동일하게 맞출 필요가 없어집니다. 따라서 교사별로 다양한 수업과 평가가 이루어질 여지가 생기는 것입니다. (물론, 교육부가 이를 승인해준다면) 점수 1~2점에 집착하며 학생들을 줄 세울 필요도 없어지기에 주관식 평가, 절대 평가가 가능해질 여지도 생깁니다. 일정한 자격만 갖추면 되니까요.

추첨제를 통해 학생들은 시험 점수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내고, 교사들은 자신의 교육적 역량을 마음껏 발휘될 수 있으니 진정 행복한 학교와 행복한 교육으로 거듭날 발판이 마련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8. 예상되는 문제점 및 현실적인 대응책


Q. 
추첨제를 통해 학생들을 선발하면 자칫 역량이 부족한 학생이 학과에 입학하게 되는데 과연 제대로 대학 교육을 수행할 수 있을까?


: 앞선 글에서 언급했듯이, 애초에 '시험 성적'이라는 것 자체가 학생들의 역량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따라서 시험 성적과 몇 가지 서류를 통해 선발이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의 제도가 오히려 비정상적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추첨제가 실제로 잘 적용되고 있는 사례가 존재합니다. '네덜란드'입니다. 

네덜란드의 경우 입학을 희망하는 지원자가 학과 정원보다 많은 경우 추첨제가 적용되는데 경영대나 의대 등에서 추첨제가 많이 적용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험 성적이 상대적으로 낮은 학생들이 입학하기도 하고 반대로 성적이 더 좋았던 학생들이 떨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우려와 달리 의대에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잘 돌아갑니다. 네덜란드 대학이 우리나라 대학보다 경쟁력이 높은 것은 두말할 나위 없고요.

만약 떨어졌다 하더라도 진심으로 의대에 들어가고 싶은 학생은 다른 대학을 다니다 다시 졸업시험 성적으로 재지원이 가능하기에 여러 번 시도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대부분 정말 들어가고 싶은 학생이 들어가게 되는 구조인 것 같습니다. 

더 자세한 사항은 <EBS 다큐프라임, 행복의 조건 복지국가를 가다 5부 - 교육>을 보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Q. 추첨제를 통해 상대적으로 공부를 잘 못 했던 학생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고, 공부를 잘 했던 학생이 오히려 그 대학에 못 들어가게 되는 문제가 생기게 되는데, 이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이 굉장히 클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 이러한 사회적 거부감과 반발이 굉장히 클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완전한 추첨제 적용보다는 우리 교육 실정에 맞게 일부 조정된 추첨제가 필요합니다. 네덜란드와 같이 가중치를 둔 추첨제를 통해 성적이 좋은 친구들이 선발될 확률을 높인다든지, 아니면 일정 비율은 직접 선발을 통해 정말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추첨제와 상관없이 선발될 수 있게 함으로써 사회적 거부감을 완화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혹은 '범위형 대입제도'와 같이 각 대학 별로 일정 기준을 사전에 제시하고 그 기준에 부합하는 지원자들을 1차적으로 선발한 후, 시험 성적으로 걸러내지 못한 인성, 학과 관련 역량 등을 평가하여 부적격자만 제외한 후, 마지막 단계에 추첨제를 적용하여 학생들을 선발하는 방식이 현시점에서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의 대입도 마찬가지 문제가 생기지 않나요? 수능 당일 컨디션이 갑자기 안 좋아지거나 긴장을 너무 많이 해서 자칫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공부 잘 했던 학생이 원하는 대학 못 가는 일이 생기지 않나요? 그래서 재수, 삼수를 하게 되고요. 그런데 추첨제는 그나마 미친 듯이 재수 준비하지 않아도 재지원이 가능하니 오히려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수능 당일 비행기 이착륙 등의 각종 교통수단이 통제되는 국가적인 난리(?)도 없을 것입니다.  

Q. 취지가 좋다 하더라도 대학이 거의 평등한 네덜란드와 달리 우리나라와 같이 서열화된 대학 체제에서 추첨제를 무작정 도입하면 당연히 상위권 대학과 특정 학과에 학생들이 몰리게 되지 않을까요?


: 그렇습니다. 그래서 무작정 추첨제를 적용할 수 없고 위에서 언급한 '범위형 대입제도' 같이 현실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방안들을 고민해봐야 합니다. 각 대학 별 최소 자격이나 기준을 어느 정도로 설정할 것인지, 가중치를 둔 추첨제 방식을 적용할 때도 점수대별로 확률을 어느 정도 부여할 것인지, 추가적인 학과 별 역량 평가를 도입할 것인지 등의 여부를 전문가의 의견과 사회적인 토의를 거쳐 우리만의 방식으로 잘 적용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한 줄 세우기 방식의 지나친 경쟁을 완화하기 위한 추첨제의 본질이 결코 손상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Q. 기존 상위권 대학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텐데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스스로 교육 경쟁력이 없음을 시인하는 셈이겠죠. 이제 더 이상 상위권 대학들의 '선발 효과'를 좌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몇몇 상위권 대학들이 '선발 효과'를 기반으로 서열화 혜택을 계속해서 누려간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에 안주하여 대학들의 교육 발전을 위한 자구적 노력이 흐지부지될 것입니다.

각 대학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서라도 지금과 같은 '선발 경쟁'이 아닌 '교육 경쟁'으로, 입학은 상대적으로 쉽되, 졸업은 매우 어려운 교육 시스템으로 전환해야만 대학 전체의 경쟁력도 커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앞서 언급했듯이 추첨제를 통한 대학 나름의 이점도 존재합니다. 

이러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선발 효과에 가려져왔던 다른 대학들이 교육 경쟁을 통해 그 대학만의 역량을 보여준다면 진정한 의미의 좋은 대학이 많이 나타나는 등 지금과 같은 대학 서열체제에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 '선발적' 교육관에서 '성장적' 교육관으로


여전히 '추첨제' 도입이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신가요. 부디 이 글을 통해 '추첨제'가 가지는 의미와 취지를 조금이라도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더 이상 몇몇 좋은 대학의 졸업장을 위해, 아무리 모두가 다 같이 노력한다고 해도 어차피 들어갈 수 있는 자리는 제한되어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1~2점에 목숨을 걸며, 조그마한 실수에도 두려워하는 이런 '살벌한 경쟁'에서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강자 동일시'의 논리로 불과 5~10%에 들어가려는 욕망보다는 나머지 90~95%의 사람들이 함께 이 경쟁 구도 자체를 타파해야 나가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더 이상 한 줄 세우기를 위한 살벌한 경쟁 속에서, '교육적 타당성'보다 '변별력'이 우선시되는 지금과 같은 시험 제도 속에서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를 오직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한 시험공부로 채우는, 모든 교육적 노력이 '왜곡되는' 사회가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추첨제' 도입을 통해 조금이나마 살벌한 점수 경쟁에서 벗어나 새롭게 확보된 여유와 시간을 통해 모든 학생이 진정한 의미의 자아 성장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교육 본연의 역할일 것입니다. '변별력', '객관성', '공정성'에 집착하여 '측정 가능한' 지표들로만 학생들을 재단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애초에 '측정 불가능한' 학생들의 잠재력과 역량을 무리하게 측정하려고 하지 말고, 최소한의 자격 수준만 주관식 형태의 절대평가로 확인함으로써 초중등교육에서도 학생과 교사의 다양한 역량이 꽃 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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