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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호준 Jun 06. 2020

어딘가에서 무엇을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를 듣고



 요 몇주간은 슬기로운의사생활을 보느라 정말 행복했다. 숨막히는 긴장이나 치열한 암투는 없었지만, 우리네 삶도 그런 경우는 적지 않은가. 물론 약간의 조미료는 들어갔겠지만,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 그대로는 보여주는 방식이 맘에 들었다. 특히, 좋은 사람들이어서 더 드라마를 보며 맘이 편안해졌던 것 같다. 

 

  아무튼, 이 글의 본론은 슬의가 아니다. 슬의에 나온 여러 노래들을 모두 좋아하긴 하지만, 어제 오늘 나의 재생목록의 최상단에 위치한 곡은 시청앞 지하철역에서이다. 동물원의 원곡도 좋고, 원곡의 느낌을 잘 살려 최대한 담백하고 약간은 허탈하게 불러준 곽진언 버젼도 좋다. 그 전에도 이 노래를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이 노래가 내 마음에 어제부터 더욱 와닿기 시작했던 이유는 가사에 있다. 


 이 노래는 사랑했던 과거의 연인을 다시 만나는 내용이지만, 그에 대해 집중하지 않는다. 도입부에 신문을 보다가 만났다는 내용이 뜬금없이 등장하고, 그녀를 만나러 가다가 발을 밟았다는 정보까지 제공된다. 그 동안은 아무 생각없이 들었는데, 이것이 평상시 사람의 사고의 흐름이라는 생각이 어제 문득 들었다. 소위 말하는 의식의 흐름이라고나 할까. 인생은, 살아가는 것은 일반적인 사랑 노래들처럼 사랑에 메몰되어 있지만은 않은 경우가 많다. 우리는 사랑을 하면서도, 누군가를 그리워하면서도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존재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문을 보고, 발을 밟는 내용이 사족처럼 들리지만 지극히 현실을 반영한 가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정작 가장 내 마음을 뒤흔들었던 가사는 후렴구에 있었다. 


나의 생활을 물었을 때, 나는 허탈한 어깨짓으로
어딘가있을 무언가를 찾고 있다 했지   


  이 가사를 듣고 처음 든 생각은, '어 난데?' 였다. 나는 그동안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을 찾기 위하여 끊임없이 생각하고, 실천에도 옮겨봤다. 그런데, 찾으면 찾을수록 그것이 무언지는 점점 더 모호해져만 간다. 나는 계속 찾다보면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에 대한 답을 하게 될 날이 올 줄 알았는데, 지금은 그것이 영영 오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허탈한 감정이 든다. 애초에 이 질문을 던지지 않고, 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더 현명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던 와중에, 이 노래의 주인공이 어딘가있을 무언가를 찾는다고 했을 때, 공감이 되어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내 삶의 빛나는 열매는 무엇일까?


 이 노래의 화자는 옛 연인과 헤어지며, 다음에 만날 때는 빛나는열매를 보여주겠다고 한다. 그것은 현실적인 성취를 의미하는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모호한 단어 사용으로 인생의 공허함을 던져주는 것인가. 이 가사를 들으며 나에게 '빛나는 열매' 란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것은 국제기구 취업일까, 사랑하는 사람과의 깊은 관계일가, 내가 가끔 꿈꾸는 자연친화적인 삶일까. 삶은 정말 수수께끼와 같아서 정답을 찾았다 싶으면 또 다른 질문을 던지는 듯 하다. 결국 식상한 이야기지만,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 자체를 즐겨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혹은, 찾고 있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것 같지는 않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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