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어틴 Oct 23. 2022

알프스 산맥 아래, 반짝이는 호수에서 수영을 하다

이탈리아 북부, 그해 여름 손님이 되다_7

이탈리아 북부, 그해 여름 손님이 되다



이탈리아라는 나라를 생각하면 어떤 색감이 떠오르는가. 나는 예전부터 이탈리아라고 하면 따뜻한 느낌의 색들이 생각이 났다. 채도 낮은 노란색과 주황색의 톤. 아마도 이탈리아라는 나라를 첨 인식하게 된 것이 영화 <토스카나의 태양>이었고 그 영화에서 보여준 토스카나의 풍경들에서 떠올라진 것이 아닐까 싶다. 또, 여러 이탈리아 음식들을 생각하면 또 따뜻한 느낌의 색감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래서 어쩌면 이탈리아 여행이 늦어진 걸 수도 있다. 이런저런 나라를 여행하면서 일반적인 관광 위주보다는 자연과 어울려서 다닐 수 있는 여행을 더 선호하게 된 이후부터는 이탈리아는 고려해본 적이 없었다. 이런 내게 스크린 너머 눈이 시도록 옥색의 푸른빛을 내는 가르다 호수가 이탈리아라는 걸 알았을 때 충격은 말할 수 없으며 그 잔상은 꽤 오래 남았다. 그래서 여행의 시작이 되었던 가르다 호수로 향하는 건 전날부터 설렜다. 3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에 기차를 2번 갈아타야 하고 1박할 시간은 없어 원데이 투어를 해야 하는 복잡한 일정이었지만 불편한 교통이어도 내겐 꼭 가야 하는 곳이 이었으니까. 마음의 거리가 가까우면 물리적 거리는 가깝게 느껴진다.


여름이면 수영을 많이 한다고 하니 수영복도 챙겨 왔으니 수영하다 쉬다 맛있는 거 먹고 또 수영하고... 한낮의 시간 동안 노닐 노닐 하려면 오전 일찍 시르미오네로 도착을 해야 했기에, 크레마 역의 첫차를 타고 출발할 예정이었다. 그렇게 아침도 대충 먹고 혹여 늦을까 걸어서 10여분 거리를 20분 전에 출발하며 열차 도착 15분 전에 트랜이탈리아 홈페이지에서 완행열차의 첫차 표를 샀다. 오전 10시 전후로 시르미오네 도착이 목표라 부지런히 움직였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역시 날 가만두지 않았다. 15분 전에 표를 산 열차는 기다려도 오지 않았고 전광판에도 어떠한 표시도 없이 오지도 않았다. 그렇게 20분이 흐르니 취소가 됐다는 메시지가 떴다. 완행열차라 다음 열차인 6시 50분 차를 타도 금액적인 손해는 없었지만, 덕분에 환승해야 하는 열차도 하나씩 미뤄지는 비극이..


6시의 크레마 역. 이쯤 돼서는 이탈리아 열차의 달인이 되어 표를 상황에 봐서 출발 15분이 되기 전에 샀다. 완행열차인 경우 같은 구간의 표 아무거나 사면되었다.
베로나 역은 캐리어 보관소 때문에 가게 되었다. 이탈리아는 교통거점이 될만한 큰 도시의 역에만 가방 보관소가 있었다.
베로나 역은 정말 많은 열차가 오가는 큰 역이었다. 그만큼 간단한 끼니 채울 곳도 곳곳에 보이고 푸드코트도 있었다. 이건 영상 캡처인데, 영상 찍어온 건 언제 편집하지..
나는 파니니 샌드위치 하나..! 플랫폼에 서서 이거 먹고 있는데 입안으로 벌레 들어와서 내 입술 깨물고 가서 하루 종일 입술이 부어있었다. (벌레.. 무슨 의미?)


가르다 호수 근처에는 페스치에라 델 가르다(Peschiera del Garda) 역과 로나토 델 가르다 역 (Lonato del Garda) 역, 두 개의 기차역이 있다. 로나토 델 가르다 역은 유람선을 타고 시르미오네로 향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동쪽의 페스치에라 델 가르다 역을 이용했다. 관광지라 그런지 경찰들이 많이 있었고 영어도 다들 잘하셨다. 역 앞에서 택시를 잡을 수 없어(콜택시인 것 같으나 어디에도 전화번호가 적혀있진 않았다) 경찰에게 시르미오네 가는 버스를 묻고 역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1시간 정도 더 가서 시르미오네에 도착할 수 있었다. 버스 타고 가는 중에도 재밌는 일이 있었는데, 버스를 12시 전에 탔었는데 시르미오네 본토로 들어서자마자 버스기사가 점심시간 교대가 있다며 중간에 내리라고 해서 승객 모두가 내리는 일이 있었다. 그렇게 또 10분 정도를 기다렸다가 다른 버스를 갈아타고 다시 출발했다.(하 힘들어..)


도착하니 12시 반. 햇빛은 뜨겁고 날은 더운데 교통까지 말썽이라 예상시간보다 3시간 정도 늦어진 시르미오네였지만, 버스에서 내리고 눈만 돌려도 보이는 가르다 호수의 푸른빛은 내 모든 분노를 잠재울 수 있었다. 세상에, 정말 이런 곳도 있구나! 3월에 코로나 걸려서 격리하다 본 영화에서 나온 그 푸른 호수, 날 이탈리아로 가게 한 그 호수에 마침내, 도착했다! 내리자마자 푸른 호수에 쏟아지는 강렬한 햇빛에 눈이 부셨다. 알프스 영향을 받아 생긴 호수일 텐데 그래서 푸른색이지만 강바닥에 돌들이 많아서 군데군데 옥빛도 띄고 하는, 색감 자체가 신기한 가르다 호수. 저 멀리는 알프스 산악지대로 보이는 산들이 보였다


알프스 산맥 아래 반짝이는 가르다 호수


생각해보니 명절 연휴에 걸쳐 여행을 가느라, 대부분 추석 시즌에 가서 이렇게 봄, 여름 날씨에 유럽에 온 게 처음이었다. 내 눈은 호강할 정도로 가르다 호수를 즐기기 좋은 상황이었지만, 이어지는 대중교통 수난에 스트레스는 물론, 몸은 더 폭염을 견디기 힘들어했다. 이탈리아 여행 다니며 큰 얼음이 들어있는 음료들을 만나기 힘들었는데 시르미오네 들어가는 입구에서 큰 얼음이 든 레모네이드를 팔고 있어서 한 잔 사들고 걸어 들어갔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오전 중에 도착해서 시르미오네를 걸으며 구경하다 수영하고, 그러다 배고프면 밥을 먹고 하는 여유로운 일정이었지만 기차 연착으로 꼬여버린 일정에 수영할 시간은 넉넉잡고 한 시간 반 정도였다. 그래서 급하게 걸어갔으나 그러기엔 각종 기념품 가게와 (여행 전리품 얻는 걸 좋아하는 스타일) 성벽 사이사이 틈으로 보이는 멋진 풍경이 자꾸 발걸음을 세웠다.


시원한 레모네이드와 눈이 시원해지는 꽃가득한 건물. 여행자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것들


이 여행의 시작이 영화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이었으므로, 영화 촬영지였던 시르미오네 유적지(Archaeological site of Grotte di Catullo)와 자메이카 해변을 가고 싶었으나, 유적지는 내가 방문한 날 휴무였고(월요일 휴무) 자메이카 해변까지 들렀다 오기엔 시간이 촉박하여 Spiaggia Lido delle Bionde라는 (해변이라기엔 호수니 호수변이 맞을 거 같지만) 해변에서 수영을 하기로 했다.


JTBC <비긴 어게인 3>에도 나온 곳이라 한다. 호수라 염분이 없어 바다처럼 몸이 뜨진 않지만, 바닥에 큰 돌들이 있어 돌 사이로 건너 다니며 물놀이 즐기기 제격
Spiaggia Lido delle Biond
이 해변 옆에는 레스토랑이 있는데 이곳에서 파라솔과 썬베드를 빌릴 수 있다. 반나절 가격도 있고 샤워실도 이용 가능하다.
반짝이는 호수에서 수영을 하다


입수 가능한 날씨에 해외여행 온 게 처음인지라, 이렇게 몸을 담그고 수영하고 있으니, 매년 여름 이탈리아 북부에 와서 지내다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이 더우니 이탈리안들도 입수 가능한 곳이면 해수욕을 즐기고 일광욕으로 태닝 하는 게 여름의 일상인 것 같았는데, 로컬들의 일상에 함께한다는 사실에 특별한 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다. 호기심이 생기면 구글이라도 뒤져서 어떻게든 찾아 여행을 떠나는 내가 스스로 기특했다.


이번 여행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 유럽의 여름을 잘 담은 것 같아서!
동행자가 없어서 짐 걱정이 컸는데 파라솔에 짐 걸고 , 중요한 건 방수팩에 넣고 입수했다. 나중에 로마에서도 수영했는데 소매치기는 안 당했다. 운이 좋은 걸 수도.


수영하다가 맛있는 것도 시켜서 먹고 낮잠도 좀 자고 놀다가 가고 싶었는데, K-직장인이라 한정된 휴가일수에(왜 1년을 일하는데 1달도 아니고 1주일 출근 못 하는 것에 대역죄인 모드로 휴가 전후로 살아야 하는 것인가 여행 와서 이렇게 시간에 쫓겨다녀야는데) 온 김에 항공권 아깝지 않게 빠듯하게 다니려다 보니, 시르미오네를 당일치기로 잡을 수밖에 없었다. 다음 여름에 꼭! 다시 오리라..!


시간이 촉박했지만, 시르미오네 성 내의 골목골목도 돌아다니고 시원한 과일아이스바도 먹었다. 자몽+오렌지맛은 굿초이스!
잘 있어 시르미오네! 또 올게!


그렇게 아쉬움을 뒤로하고 돌로미티로 넘어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베로나 역으로 향했다. 오전에 대중교통으로 다니다가 시간을 허비한 것도 있고, 기차 시간을 지켜야 해서 택시를 탔다. 마침 관광안내소 옆에 택시 정류장이 있었고 그곳에 택시 회사 전화번호가 있어서 전화로 예약하여 택시를 탈 수 있었다. 시르미오네에서 베로나 역까지는 1시간 남짓 걸리며 차 안에 미터기가 있었는데 비용은 87유로 정도 나왔다. 12만 원 돈이니 비싸긴 했지만, 당시 오토차량 하루 렌트비가 40만 원이 넘었고 기름값도 리터당 2.5유로 전후였다. 무엇보다 시간도 잘 지켜서 오지도 않고 두 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대중교통보다 시간을 많이 단축시켜줘서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는 혼자라 택시비가 부담스러웠지만, 2명만 돼도 충분히 이용할만한 가격이라고 생각이 들긴 한다. 베로나 역에는 택시정류장에 택시들이 많으니 참고!
시간이 넉넉하게 돼서 베로나 역에 있는 카페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이탈리아의 여름은 어딜 가도 컵과일이 있어서 좋았다. 피자류는 아무데서 사 먹어도 맛이 있었다.


 아마 영화를 보지 않았더라면 시르미오네라는 곳을 평생 알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 <콜미 바이 유어 네임> 속 이탈리아 여행은 시르미오네가 마지막 장소였다. 이 영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준 그 찬란했던 울림처럼 오래 기억남을 마지막 영화 여행지였다. 좋아하는 작품을 쫓아 같은 계절에 같은 장소에 있었던 것만으로도 영화팬으로선 하나하나 감격스러운 발걸음이었다.


크레마에서 자전거를 타고 엘리오의 집을 가던 아침, 폭염을 피하겠다고 이른 아침부터 나와 자전거로 이탈리아의 이름 모를 논밭길을 달릴 때 문득 내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 건가 싶어졌다. 나는 내가 감명을 받은 무언가가 있으면 마음속에만 담아두는 게 아니라 몸을 움직여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나에게 여행은 가장 활동적인 사색의 시간이다.


여행하는 방법에는 정석이 없다고 본다. 모두 떠나는 이유와 목적이 다르고 그 방식도 다르다. 다만 하나 같은 것이 있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나’를 위해서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 여러 이유들로 여행을 떠나기 주저하는 마음이 들 때는 생각의 주파수를 이렇게 맞춰보는 건 어떨까. 지금보다 더 나아지기 위해 어떤 핑계를 대고서라도 일상을 떠나 내가 나에게 활동적인 사색의 시간을 쥐어주는 거라고.


돌로미티의 볼차노로 향하는 기차에서의 눈앞의 풍경은 저 멀리엔 높은 산이, 그 앞으로는 포도나무와 올리브 나무 밭이 끝없이 펼쳐졌지만 머릿속엔 온통 푸른 옥색 빛의 가르다 호수로 가득했다.





앞으로 써 내려갈 이야기는 그동안 여기저기서 조금씩 들었던 이탈리아를 찾아다닌 여행이다. 스위스 여행 후 알프스에 관심을 갖다가 듣게 된 돌로미티, 토스카나 여행이 주가 되겠고 교통 거점으로 뒀던 피렌체와 로마도 하루씩 둘러보고 돌아왔다. 여행기의 반은 써내려 온 것 같다. 완주하기를 바란다, 나 자신아.....






2022년 6월 16일 밀라노로 향해 26일 로마에서 돌아온 이탈리아 여행기입니다.

현재 7편을 보셨습니다.


북부/ 밀라노, 크레마, 베르가모(스쳤음), 시르미오네(대중교통)

돌로미티/ 오르티세이, 볼차노(대중교통)

토스카나/ 피렌체, 산지미냐뇨, 시에나, 몬테풀차노, 안세도니아(렌트)

로마/ 산타 세베라, 반나절 속성 관광(영업비밀)

이전 06화 크레마의 '그해 여름 손님'이 되어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