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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jinsung Jan 31. 2023

월요일, 별안간 출근하지 않은 이유

‘내가 뭘 했다고 번아웃일까요’ 책이 나에게 준 경고장

오늘 아침 여느 때와 같이 출근 준비를 위해 자동 머신처럼 기상을 하고 양치를 하는데, 평소 고질병이던 만성 위염으로 위가 콕콕 쑤시기 시작하면서 동시에 손발 저림이 이어지는 듯했다. 평소에도 있던 질환들이라 그럴 때마다 위염약이나 혈액 순환 보조제를 먹고 말았는데, 아침부터 별안간 무기력까지 밀려와 하필 오늘 주간 회의가 있는 월요일인데 6년 만에 처음으로 불참을 선언했다.


‘나 오늘 회사 못 갈 것 같아’

남편에게 조용히 외마디만 던진 채 양치만 하고 이불속으로 다시 몸을 덮어 버렸다. 남편은 작게 놀라고는 그렇게 조용히 출근길을 떠났고, 나는 두근거리는 심장과 위를 부여잡고 1시간 동안 더 잠에 빠졌다. 회의에 빠진 죄책감 때문일까 직원 중 한 명이 이혼하고, 힘들어하는 이상한 꿈만 꾼 채… 그 이상 잠에 더 들지도 못하고 일어나 온갖 약들을 입에 삼키고 재택근무로 일을 하려고 서재 책상에 앉았다.


그러나 무엇 때문인지 도무지 일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회의에 빠진 것, 1시간 늦게 일어난 것, 심지어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까지 겹겹이 죄책감이 쌓이는 것을 느끼면서 지금 스스로 에너지 컨트롤이 잘 되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사소한 일상 계획에서도 우선순위가 뒤엉켜 토스트를 해두고 이메일을 쓴다거나, 갑자기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디자인 작업을 한다거나.. 평소라면 착착착 처리할 일들을 어느 하나에 집중하지 못해 마치 입력 오류가 된 로봇 같았다.


가끔 중요한 업무나 긴 호흡의 작업을 할 때면 재택근무를 하거나 사무실에 나와 혼자 카페에서 일하고는 한다. 그렇게 스스로 허용할 수 있던 이유는 나의 집중과 몰입을 믿었기 때문인데, 이번엔 용납되지 않았다. 이메일 하나 보내는데 내용도 머리에 잘 입력(이해)이 안되고, 커피를 서너 잔 마신 듯한 손발 저림이 키보드를 누르는데 방해만 되는 듯했다. 입시생처럼 책상에 좌절하며 엎드렸다.


아무래도 주말에 본 책 때문인 것 같다.


‘내가 뭘 했다고 번아웃일까요’ 성균관대 정신건강의학과 안주연 교수님이 쓰신 책으로 나도 모르게 눈에 밟혀 이러한 심리학 책을 산건 처음이었다. 책의 내용 중 나는 이미 많은 항목이 해당되는 사람이었고, 어쩌면 스타트업 또는 회사를 경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겪는 공통사항일 것이라 생각하기에 책을 쓱 보면서도 ‘뭐 어쩌겠어, 내가 선택한 것인데…’ 하며 감정적 공감으로 그나마 위로받았다 생각하며 웃어넘긴 것이 발단이 된 것 같다.


‘너 지금 번아웃 무시하니? 한번 제대로 느껴봐!’ 하면서 말이다. 나는 이미 번아웃류의 증상들이 오래 침착되어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 인정하고 잘 컨트롤하면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진짜 속마음으로는 컨트롤 또한 용납을 못하고 있던 것 같았다. 책의 내용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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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래도 열심히 하고 있어”하는 생각으로 쉬지 않고 달리다 보면 당연히 지치겠죠? 그러면 에너지를 줄여야 하는 시기가 찾아오고 이때는 푹 쉬어야 하는데, 그걸 우울하다고 느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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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높은 수준의 감정적 레벨, 에너지 레벨을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으면 에너지가 떨어지는 게 용납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기분이 나빠지는 걸 느낄 거예요. 에너지가 떨어지면 충전하면 되는데, 충전해야 하는 시기에 계속 자책하게 되잖아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라고 생각하면서요.”


주로 일로서 에너지를 느끼는 사람은 에너지 수준이 기분을 쉽게 좌지우지한다는 말씀이 있었는데,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에너지 수준이 높은 시기에만 기분이 괜찮은 거라며 그 말은 즉, 휴식을 필요로 할 때 몸의 신호가 오는 것인데 그것을 부정하거나 우울한 감정으로 판단해 버린다는 것이다. 감정 신호에 스스로 부정처리를 해온 나의 오만함을 일깨워 준 말이었다.


책 제목 그대로 ‘내가 뭐라고, 내가 뭘 했다고 번아웃일까’ 하는 이 말 하나로 치열했던 입시 시절을, 대학 시절을, 경쟁 사회를 나는 이겨 냈는지 모른다. 그리고 동시에 이 말 하나로 정작 번아웃이 왔을 때 잘 치유하지 못한 것도 맞다. 책 한 권 봤다고 쉽사리 해결되지 않겠지만, 일단 직면해보고자 한다. 감정 돌봄도 사치라 생각했던 스스로에게 긴 반성의 시간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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