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단순한 균형의 문제> 장 자끄 상페의 그림책을 보며
어느 기업의 사내 강연 요청을 받아서 자료 준비를 하는데, 일주일 전쯤 저희 브랜드 사례를 통해 어떤 인사이트를 원하시는지, 어떤 고민을 안고 계시는지 역으로 몇 가지 질문을 드렸다. 그중 가장 큰 고민은 이미 오랜 기간 브랜드가 성장해 왔고, 아이덴티티 정립도 탄탄한 상황이지만 주요 의사 결정의 상황들이 왔을 때 어떻게 하면 흔들리지 않고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며 확장할 수 있을지, 또는 그 의사결정 과정에 어떤 기준점으로 선택과 집중을 판단할 지에 대한 고민이 있다 하신다.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내가 이 답변을 할 수 있었다면 우리 회사는 이미 이 기업처럼 커져있지 않았을까‘ 싶었지만… 작은 구멍가게가 굴지의 기업보다 얼마나 더 똑똑한 기준이 있을까 싶어 그분들의 고민에 답을 찾기보다 우리의 이야기, 우리만의 철학을 그저 잘 정리해서 공유드리고 와야겠다 다짐했다.
그렇게 약 일주일 간 밥 먹으면서, 팀 멤버들과 커피 마시며, 자기 전에, 샤워하면서 등등 우리는 어떤 기준을 가지고 브랜드 에셋을 유지하고 있는가 스스로의 질문에 시시때때로 답을 정의 내리고자 했다. 그리고 우리는 왜 가이드 하나 없이 형성되고 있었는지까지 그렇다면 우리의 한계는 어떻게 생겨날지 질문에 질문을 파고들었다.
두 번째 답 먼저 생각했다. ‘우리는 왜 멋드러진 가이드 없이 브랜드 정체가 형성될 수 있었는가?’ 심지어 나의 커리어 배경은 브랜드 디자인 컨설턴트였다. 지금도 지인분들 도움드릴 때나 세미나를 할 때면 브랜드 설계 과정의 포맷을 엄청 중시하는 편이지만, 정작 우리 브랜드는 가이드라고 할 게 색상, 폰트, 저작권 표기 사용 기준 정도의 디자인 에셋밖에 없다. 아마도 내가 그간 실무를 직접 관리하고 있기도 하였고, 스몰 브랜드의 규모에서는 소수의 범위에서 브랜드 이해도를 빠르게 이해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다면 그다음은? 넥스트 단계가 첫 번째 질문에 직면하는 점일 것 같다.
‘어떤 기준을 가지고 브랜드 정체성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것인가?’ 어쩌면 지금까지는 이해도가 충분한 소수의 인원과 이해 관계도가 복잡해질 상황이 많지 않았다. 있어도 외부 협업 단계에서 충분한 미팅과 조율 과정에서 컨트롤을 내부에서 직접 해왔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당연히 다양한 팀 파트와 내외부 관계들이 생겨난다면 기준점들을 더욱 꼿꼿하게 만들어 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스몰 브랜드는 우리도 그렇지만, 대개가 창업자의 개인 역량 또는 가치 기준에 의존한다. 아무렴 큰 기업이라고 제외는 아닌 것 같기도 하지만… (최근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 파랑새를 엑스로 바꾼 사례만 봐도 말 다했다) 몸집이 크지 않은 단계에서는 빠른 판단과 실행 능력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창업자의 직관에 의존하는 것 또한 맞다고 생각한다. 작은 돛단배를 만들어서 바다에 배를 띄었는데 물이 새어 들어온다면 ‘왜 구멍이 났지?’ 곰곰이 원인을 분석하고 따지며 회고할 것이 아니라 구멍을 가판으로 빨리 막든, 배를 버리고 바다에 몸을 던지든 해야 한다. 창업자가 곧 돛단배고, 돛단배가 곧 창업자인 초기에는 뭐 하나 거창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제 돛단배에 여러 함장들과 수많은 선원들이 탔다면, 모두가 확인할 수 있는 나침반을 들고 지도를 그려 나가야 한다. 그렇지만 유연하게. 우리의 기준은 이러하나 언제든 파도가 닥치면 우회할 수 있고, 멈출 수도 있으니 변화를 두려워 말자 말한다. 그리고 그 기준의 목표 지점은 하나이다. 부끄럼 없는 건강한 문화를 만들자고. 나는 고민의 갈래들이 복잡해질수록 단조로운 질문과 정리를 곧잘 하는 편인데 이에 뻔하지만 가장 정통법(?)인 질문의 잣대가 되는 육하원칙(6W)에 우리의 브랜드를 정리해 보았다.
브랜드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수준으로…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과 판단이겠지만 귀에 무심히 걸고 귀걸이라 이야기할 때 모두가 이에 수긍하려면 직관과 공감이 동시에 수반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질문에 대해서도 지속성이 있어야 하고, 답변에 일관성이 있어야 하는데 슈퍼말차는 브랜드명에 다섯 가지 브랜드 에셋을 박아 두어 간판을 보다가도, 브로셔 보다가도 누구나 쉽게 답변할 수 있을 정도로 간결하고 명확하다. 그리고 이에 해당하는 가치 불변의 기준은 육하원칙 중 Why(브랜드 가치의 범주), Who(소비자의 범주), What(핵심 문화의 범주)이다.
그렇다면 파도와 같은 변화에는 어떤 기준으로 대응할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변화의 기준에는 브랜드가 정립할 수 없는 시대나 트렌드, 소비자의 수요, 전략 방식 등에는 유연하게 받아 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육하원칙 중 How(브랜드 가치의 방식), Where(소비자의 행동), When(핵심 문화의 형태)에 해당한다.
브랜드 가치, 소비자, 핵심 문화의 범주는 변하지 않아야 하고, 브랜드 가치를 전하는 방식과 행동, 형태는 시시때때로 변해야 한다. 어느 때에는 변하고, 어느 것에는 변하지 않아야 한다니. 결론을 내리고도 참 어려운 일이다. 돛단배와 같이 내가 좋아하는 프랑스 작가인 장 자끄 상페도 인생을 자전거에 비유해 출간한 그림책이 있다.
<인생은 단순한 균형의 문제>라는 장 자끄 상페의 그림책을 소장하고 있는데, 그 책에는 각기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자전거를 타는 풍경의 그림들이 담겨 있다. 어느 한 연인이 함께 타고 있거나, 아이와 때로는 강아지와, 누구는 손을 놓고 묘기를 부리며 타는 모습들까지 다양하다. 방식과 행동과 형태는 각기 다를 수 있어도 변하지 않는 것은 행복한 인생을 위해 자전거를 탄다는 본질의 가치와 대상과 문화의 범주라는 것이다.
브랜드에 있어서도 범주를 동일하게 인지하며 항해에 함께 오른 구성원들과 기우뚱 거리며 그때그때 버릴 것과, 짊어지고 갈 것의 균형을 찾아가며 두 바퀴의 중심을 유지하는 마음으로 이어 나가고자 한다. 육하원칙과 자전거. 단순하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은 질문과 기준으로 문제를 잘 해결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