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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jinsung Feb 20. 2024

누구를 맞이하고 싶은 공간인가?

슈퍼말차 스타필드수원이 뮤지엄으로 탄생한 비하인드

6년 전 런던에 위치한 테이트모던 뮤지엄에 갔을 때 오래 자리 잡혀 있던 편견이 깨지는 경험을 했었다. 그 원인은 다름 아닌 크고 웅장한 건축물 전경에서 퍼져 울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미술관 입구에 들어서기 전 매우 드넓은 중앙 광장이 있었는데 한쪽에는 아이들이 쉼 없이 뛰어다니며 웃음소리가 만개해 있었고, 또 한쪽 야외 벤치에서는 하얀 백발의 노부부가 샌드위치를 먹으며 책을 보는 풍경이 동시간대에 뒤섞이며 일어나고 있었다.


과거 나의 미술관 경험만 빗대어 봐도 아이들의 시끌벅적함이나 무엇을 먹는 풍경보다는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나 엄숙한 무게가 느껴지는 검은색 정장을 입은 세련된 어른의 존재로 기억에 가득했다. 돈이 없는 학창 시절에 미술은 사랑했지만 미술관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은 내가 이곳을 즐길만한 금전적 여유나 급(?)이 안된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 생각이 강렬했는지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히 국내 미술관 다니는 것을 어려워한다. 조기 습관의 힘이 이렇게 무서운 것일까…)


그간 못 다니던 전시의 한을 푸는 것인지, 가벼운 관광객 모드가 허용이 되서인지 등등의 이유로 해외 여행지 속 미술관을 향하는 길은 확연히 공기의 무게 차이가 있었다. 테이트모던뿐만 아니라 다녔던 대부분의 박물관은 웬만해선 입장권도 무료였고, 실제로 집 앞 산책길처럼 드나들 듯 편한 반바지 차림에 유모차를 끌고 나오는 가족들의 풍경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미술관에 오는 다양한 세대의 어우러짐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나서야 내가 오랜 편견을 지니고 있었다는 걸 깨닫기도 하였다.


거리감이 느껴지는 웅장한 뮤지엄이 아닌 아이들도, 어른들도 모두가 쉽게 들어설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랬던 뮤지엄 공간의 탄생.


차 문화도 동일하다. 일부 상류층이 화려한 부와 시간적 여유를 자랑하듯 누렸던 과거 티타임의 역사는 현대에 들어서도 완벽한 T.P.O 까지는 아니지만 입구에 들어서기 전부터 왠지 비장한 마음가짐을 요하기도 한다. 또는 노키즈존, 노펫존으로 마치 격식 있는 어른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인 것처럼 문화적 차별이 뚜렷한 분야 중 하나로 손에 꼽힌다.


”커피만큼 차도 가볍게 즐기게 하자“라는 우리의 철학은 이번 스타필드 수원점 공간 기획을 할 때부터 여실하게 드러냈다. 오랜 역사를 지닌 이야기와 가치는 보존하고 알리되, 누구에게나 드나듦이 편안한 공간으로 설계해서 입장의 문턱을 낮추는 것이 주요 목표였다. 테이트모던 뮤지엄에서 개인적으로 느꼈던 위안의 감정을 이곳에 담고 싶었다.


‘말차 뮤지엄’, ‘아늑하고 편안한 공간’, ‘다양한 가족 규모를 포용할 수 있는’


주요 키워드와 공간 기획안을 공유드리고, 실제 공간의 서사를 어떻게 풀어낼지 프레젠테이션 해주신 기획 자료의 일부. 이 단계에서 슈퍼말차 뮤지엄은 이미 완성되었다.


이렇게 주요 키워드와 모티프를 중심으로 시공 디자인사인 포스트스탠다즈와 함께 뮤지엄 이야기의 전개를 뻗어 나갔다. 허윤 디자이너님과 김민수 대표님께서도 브랜드가 지향하는 가치와 콘셉트의 목적을 잘 헤아려 주셨고, 결과적으로 문과 바깥벽이 없는 오픈형 구조로 전체적인 공간의 틀을 잡고, 공간 구획을 필요로 하는 시팅존들을 허리춤 이하로 오는 낮은 담장들로 설계해 전체적인 동선의 개방감과 시야의 차단이 없도록 해 콘셉트의 의도를 잘 풀어 주셨다. 또한 이번 수원 매장의 핵심 컬러가 되기도 한 적벽돌의 자재 선정은 포스트스탠다즈에서 적극적으로 제안 주신 핵심 요소인데, 빨간색 적벽돌을 켜켜이 쌓아 올려 전체적으로 오랜 역사의 시간과 이야기를 단단하게 품고 있는 뮤지엄의 해석을 잘 담을 수 있다고 판단되어서 전적으로 믿고 진행 할 수 있었다.


버전1 디자인 자료. 큰 오픈형 구조의 개방감과 낮은 담장의 형태는  크게 변하지 않고 기획이 유지되었고, 예산의 한계로 아쉽게도 반원형 돔 천장이 사각 돔으로 최종 변경되었다.


특히 두 번째 중요한 요소로 생각한 아늑하고 편안한 공간을 완성시키는 의자는 여러 사람들의 엄격한 엉덩이 테스트(?)를 거쳐서 커스텀 디자인으로 제작하게 되었다. 벽돌 파티션과의 전체적인 그리드 형태는 무너지지 않되, 오래 착석했을 때 에도 편안한 쿠션감이 느껴지는 것도 중요했는데 특히 평균 한 명 당 자리하는 면적도 넉넉하게 설계해 주셔서 실제 매장 오픈 후, 많은 고객분들이 신발을 벗고 양반 다리하며 휴식을 취하시는 모습들도 목격할 수 있었다. 이는 우리의 의도가 정말 고스란히 잘 반영된 결과이기도 해 뿌듯하기도 하다.


모든 집기와 가구가 커스텀으로 제작된 디자인 설계의 일부 자료. 저 디테일한 치수 도면 자료는 정말 볼 때마다 경이롭다… 포스트 식구들 변태 인정.


기존의 매장들을 포함해 우리는 주로 복합쇼핑몰과 백화점 안에 입점해 있다. 방문하시는 고객분들 중에는 갈증 해소를 하기 위해 음료를 찾는 간단한 목적도 있으시지만, 많은 인파들과 오랜 걸음을 할 수밖에 없는 몰 특성상 잠시의 피로함과 휴식을 취하기 위해 카페를 찾는 목적이 크기도 하다.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찻집보다는 광장에 놓인 벤치에 앉아 잠시 숨 돌리며 시간을 잠시 만끽할 수 있는 공간으로 구현했다. 특히 아이와 함께 오는 고객들은 유모차를 끌고 오시거나, 반려견과 함께 오시는 고객들은 낮은 시선에 앉아 케어해야 하기 때문에 바닥에는 단차가 없어야 할 것이며, 동선 간격은 큰 사이즈의 유모차를 끌고 그대로 들어올 수 있도록 여유 있게 설계했다.


입구에 들어서고 잠시 머물며 있다가 출구로 나가기까지 동선의 간격과 담의 높이가 일정한 비례감으로 이어져 유유한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기도 한다.


다양한 가족 규모를 포용할 수 있어야 할 것. 이 또한 메뉴 기획 개발 과정에서도 주요 철칙이 되었다. 말차를 좋아하지 않거나 드시지 못하는 동반객들을 고려했을 때 선택의 대안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해 비건 코코아 빙수, 코코아 쿠키 등 카페인이 들어있는 말차 맛이 아닌 가족들이 함께 나눠 먹을 수 있는 추가적인 신메뉴들도 오래 공들이게 되었다.


매장 밖으로 함박눈이 내리던 날에도 메뉴 테스트 하느라 이름처럼 스노우 빙수를 정말 많이 먹었다. 내 인생 이렇게 빙수를 많이 먹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장장 5개월 간, 포스트스탠다즈와의 끊임없는 디테일한 수정 작업과 시각 그래픽 작업들을 켜켜이 얹히며 비로소 슈퍼말차가 새롭게 재해석하는 현대적인 뮤지엄을 담아낼 수 있었다. 과정에는 여느 다른 매장 오픈 때도 그랬지만 고정된 전체 몰 오픈 일정 기간 내에 시간을 촘촘히 나누어 공간을 완성시키는 일은 정말 쉽지가 않았다. 특히 이번에는 바닥 공사 이슈도 크게 터져서 작업의 속도를 빠르게 내야 할 가장 중요한 주간에 공사 진행이 중단되기도 했다. (이후 시공팀에서는 24시간 불철주야로 공사 진행을 했고, 전기 승인도 오픈 직전 날에 가까스로 승인이 나서 몰 그랜드 오픈일에 오픈하지 못하는 불상사는 다행히 피할 수 있었다. 신세계 담당 바이어님과는 오픈 못할 것도 대비해 가벽을 세울 마음의 준비도 하고 있었는데, 정말 많은 분들의 땀과 절박함으로 점철되어 고객분들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었다. 오픈 한 이후에도 몇 주간 완성도를 올리고자 영업이 끝난 후 야간작업으로 일부 조적을 다시 쌓고, 보이지 않는 곳들도 다시 허물고 메꾸기를 반복하며 비로소 완전한 말차 뮤지엄의 공간이 탄생했다.


공사가 중단되었던 기간부터 오픈 이후에도 야간마다 보수 공사는 계속 되었다. 디테일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의 과정들.


예전에 읽었던 어느 책에 이런 말이 있었다.


”기획의 진수는 손님이 기뻐할 만한 것을 만드는 것(기획하는 것)이며, 매장의 매출은 재능이 아닌 노력으로 창조하는 것이다.“


오시는 고객분들의 머묾이 부디 부담되지 않기를, 잠시 숨을 돌리며 힐링되기를 바라는 마음 담아 숱한 고민과 치열함을 벽돌과 함께 고이 쌓아왔다. 매장에 들러 바닥에 흘려진 쓰레기를 주우며, 테이블을 닦아 가며 고객분들의 표정을 몰래 쓱 살펴본다. 아이와 함께 가족들이 도란도란 앉아 빙수를 나눠 먹을 때, 할머니 할아버지 분들도 스푼으로 아이스크림을 소중히 나눠 드시는 모습들을 보며 바라왔던 미술관 앞 광장의 풍경이 순간 오버랩 되는데 그 순간 어떤 말로도 표현되지 않는 기획의 희열을 비로소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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