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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jinsung Apr 21. 2024

브랜드는 리브랜딩이 꼭 필요할까? (1탄)

1년여간의 기나긴 리브랜딩을 준비하며

작년 5월 리브랜딩의 출발은 해외 상표 출원을 위한 단순히 기능적인 이유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리뉴얼의 목적을 부합하기 위해서는 한마디로 디자인적 출원이 가능한 심미적 형태만 더해지면 쉽게 해결될 작은 사안으로 보였다. 7년 전 얼레벌레 만들어진 브랜드 비주얼 에셋과 시스템으로도 현재 운영하는 데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기에 ’심볼‘의 형태만 추가하는 것으로 쉽게 바라보고 단기 프로젝트로 계획과 목표를 설정하고 도입에 나섰다.


내부에서 리브랜딩을 준비하기 위해 내러티브 워크샵, 파트너 fgi 등 다양한 작업이 있던 나날들


오래전부터 함께 작업을 해보고 싶었던 디자인 파트너사와 함께 ’슈퍼말차스러운‘ 심볼 만들기 여정에 나서기 시작했고, 화려한 시안들 속에서 우리는 이상하리만큼 속수무책으로 결정장애가 오기 시작했다. 미학적인 요소인만큼 브랜드를 이끌고 있는 내가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있고, 목적에 벗어나지 않는 기준에 맞게 심플하게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 자부했는데 도저히 선택의 이유가 보이지 않았다. 기능적 이유의 출원을 위한 것이라면 점을 찍었어도 손쉽게 해결이 될 일이었고, ’슈퍼말차스러운‘ 개성의 표현이었다면 파트너사에서 제안해 준 모든 시안이 그 기준에 해당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나는 왜 선택을 주저하게 되었을까?


만족의 기준이었을까 싶어 스스로도 틈틈이 시안 작업을 함께 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직접 작업을 하면서 더 절실하게 느껴진 회의감이 하나 있었다. ‘리뉴얼이 정말 필요할까?’


낮에는 급한 업무 보고, 밤에는 시안 작업하며 보내던 날들. 시안이 어느 정도 모아졌을 때 멤버들에게 컨펌(눈치) 받던 때


상표 출원의 이유로 시작한 것은 맞지만, 어떤 디자인이든 선택을 하려면 소비자 입장의 공감과 메시지가 기반이 되어야 하는데 ‘슈퍼말차스러운’ 미학적 이야기는 만들기 나름이었고, 어떤 이유에서인지 확신에 들지 않았다. 나 또한 A일수도 있고, B일수도 있는 심볼이 정말 필요한 거긴 할까? 몇 개월 간 쏟아부었던 작업 과정에 스스로 물음표를 다는 일은 흡사 자기 채찍질을 하는 기분이었다. 시간과 비용과 정성을 다한 일에 브레이크를 거는 것은 회사 입장에서도 리소스 손해이기도 하였기에 심리적 부담도 상당했던 기간이었다.


멈추고 돌아볼 것인가, 그대로 진행할 것인가? 평일에는 수많은 업무와 일정들로 치이며 신중한 결단을 내리기에 어려움이 많아 차일피일 결정을 미루기도 하였다. 함께 믿고 진행하고 있는 파트너사와 팀원들에게도 몇 개월 간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는 내 자신이 못나고 부끄럽기도 해 마음속으로는 쿨하게 결정하며 진행하고 싶기도 했지만… 편한 방식보다는 원인 모를 이유를 다시 바라보는 가시밭길을 선택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무기한 미룰 수는 없는 일. 더 이상의 시간적 자원은 여유 있지 않았고, 해외 출원의 목표인 가맹 사업 진출 일정은 점점 더 가속도가 붙고 있었다. 스스로의 질문에 다시 직면하기로 마음먹은 대신 나의 개인적 시간을 더 쪼개어 할애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마침 올해 2월에 있었던 설 연휴 기간이 다가오고 있었고, 결혼을 한 몸으로써(?) 양가 시가와 친정에 정중히 양해를 구하고 나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다시 사업을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다이어리와 펜을 품 속에 안고 다니며 브랜드 가치 정립 이전에 기업의 존재 이유를 다시 적어 내려갔다. 수많은 선택지들이 생겨났을 때 우리가 가장 전하고 싶은 본질은 무엇일까? 리브랜딩이란 새로운 가치를 더하는 작업이 아닌 본질에 더 가까워지게 덜어내는 정제의 목적이었음을 설 연휴 간 스스로의 채찍질 같은 질문에 답을 채워가며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덜어내고 또 덜어내어 남는 것들의 가치와 서비스의 재정의. 노트와 아이패드에 쌓여진 기록들


단 하나의 핵심. 우리는 세상에 무엇을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 메모지에 한껏 적고 하나씩 지워가며, 다시 채우고 비우기를 반복하니 유일하게 남는 단어는 MATCHA 가 아닌 SUPER가 계속해서 잔재해 있었다. 우리는 말차라는 제품을(Product) 팔고 있던 것이 아닌, 슈퍼한 가치를(Value) 전하고 있었던 것. 말차는 가치를 전달하는 방식이자 도구로서 오히려 변화할 수 있는 속성이라면, 변화하지 않는 근간의 핵심 가치이자 전 세계로 지독히 알리고 싶었던 것은 ’슈퍼‘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건강한 차 문화였다.


준비 기간 동안 많은 도움이 되었던 책의 한 구절. 포기하지 않는 ‘강한 집념’이 기획을 형태로 한다.

짙푸른 안개처럼 뿌옇게 덮여있던 머릿속이 정제 과정을 거치니 답이 보이기 시작했다. 새벽이 되어서도 눈은 점점 총명해졌고, 까만 밤에 수 놓인 별이 나를 향해 더욱 빛을 밝혀 주는 것만 같았다. 5일 간 스스로와의 독백과 자문자답을 통해 기업의 재정의를 다시 정리하였고, ‘우리는 누구인가?’로 시작하는 40페이지에 걸친 2024 기업 비전 키노트를 뚝딱 만들었다.


비록 심볼 디자인은 뚝딱 나오지 않았지만… 5년, 10년 후에도 지치지 않을 수 있는 강한 집념이 될 기획을 다시 잡을 수 있었고, 형태를 만드는 일은 그 이후였다.


리뉴얼 이야기는 다음번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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