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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선 Nov 09. 2020

누구나 마음 속에 금쪽이 하나쯤은 있잖아요.

다 자라 독립한 줄로만 알았던 금쪽이가 요새 자꾸 말을 걸어온다.

ⓒ소선


하루종일 일을 하고 돌아왔음에도 또 다시 일터로 향하기 위해 잠을 청해야 한다는 것이 왠지 억울하게 느껴지던 어느날 밤, 별 생각 없이 유튜브를 돌아다니다가 ‘금쪽같은 내새끼(예전에 방영했던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st의 방송)’라는 프로그램의 영상 클립을 보게 되었다.


영상 속 남자아이는 어느 순간부터 엄마의 배꼽에 집착하며 자꾸만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는데 부모는 그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어떤 이유로 그러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 방송출연을 결심했다고 했다. 그리고 문제의 원인을 찾기 위해 제작진은 가족의 일상을 관찰하고 그것을 영상에 담았다.


도통 영문을 모르겠다던 부모의 난감함이 무색하게 영상 속에는 아이를 향한 부모의 무심한 냉대와 실수를 다그치는 감정적인 피드백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엄마가 화를 내지 않는 유일한 순간이며, 배꼽을 만질 때에만 비로소 엄마와 닿아있다는 생각에 해당 문제행동을 보이는 것이라는 분석도 이어졌다. 객관적 시선에서 상황을 바라볼 기회가 없었던 부모는 연신 눈물을 훔쳤고, 아동심리전문가 오은영 박사는 차분한 목소리로 문제 행동을 교정하기 위한 처방을 내렸다. VCR을 지켜보던 패널들도 이따금씩 눈물을 흘렸는데, 동떨어진 공간에서 영상을 시청하던 나 역시 별안간 눈물을 흘리고 있어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 나는 기회가 될 때마다 해당 방송의 클립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홀린듯이 열 개 남짓한 클립을 몰아서 시청하던 어느 날, 내 안의 금쪽이가 말을 걸어오는 듯한 생경하면서도 그리 낯설지 않은 감정이 솟구쳐올랐다. '꼬마야 너도 그래? 나도 요즘 그러는데?'


한동안 글을 쓰지 않던 요 몇 달간 나는 전에 없던 불안증 때문에 꽤 혼란한 시간을 보냈다. 불안을 느끼는 요소는 주로 업무와 인간관계에 관련한 것들이었는데 그동안 잘만 해왔던 일들이 왜 이렇게 갑자기 어렵고 두려운지, 불안할 이유가 없는 관계인데 왜 자꾸만 정체모를 불안을 느끼는지 알아내기 위해 한참을 골몰했다. 영상 속 아이들은 그런 나의 내면을 돌이켜보기에 아주 좋은 레퍼런스이자 동료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상 속 금쪽이들처럼 힘들고 속상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것은 어떤 순간일 수도 있고, 말 그대로 한 ‘시절’에 관한 기억일 수도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의 아픔들이 더러 있었지만 가족들과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거나 학창시절 친구들을 통해 막대한 공감을 얻음으로써 많은 시간을 위로받아 왔기에 큰 문제없이 금쪽이를 떠나보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미처 돌보지 못한 금쪽이는 입장이 조금 달랐던 모양이다.


처음 영상을 시청하던 때에는 내 불안의 원인이 어린 시절의 가족들 혹은 사회에서 관계를 맺게 된 다양한 사람들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 뒤늦게 서럽고 분노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다소간 불안정했던 유년시절과 누구에게나 어려운 사회생활을 마주하며 맞이한 부정적 영향들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쪽같은 내새끼의 화룡점점은 다양한 원인을 대상으로한 폭탄 돌리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원래 그런 아이는 세상에 없고, 동시에 타고나기를 그렇게 타고난 아이들이 있다는 따뜻한 이해와 위로가 바로 그것이다.


나는 실제 현상과 상관없이 안전에 대한 욕구가 강한 기질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다양한 외부 변수로부터 나름의 균형을 찾기 위해 단련해온 나만의 안전핀 같은 것이라는 점, 그리고 타고나기를 타인의 감정에 예민하고 공감능력이 높은 성향을 가지고 있어 외부 변화에 유독 민감한 것이라는 점. 이것이 근래 들어 온전히 받아들이게 된 나에 대한 정보였다.


그러자 어쩌다보니 유독 변화사항이 많고 임기응변이 중요한 업무적 상황을 마주함에 따라 본래의 기질과 성향이 극대화된 것일뿐 무언가 대단히 잘못되어 일어난 문제가 아니라는 자각이 선명해졌고, 이 또한 과정이라는 생각에까지 미치자 내내 불안하던 마음 속 파도가 점차 잔잔해짐을 느꼈다.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맞이한 또 하나의 고무적인 변화가 있다면, 바로 금쪽이만 있는 줄 알았던 마음 속에 지난 수십년간 나에 대한 학습을 거듭해온 '맞춤형 오은영 박사' 또한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또 다시 불안해졌니? 근데 너 n년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는데 그땐 그 성향 덕분에 잘 헤쳐나갔잖아. 틀린 게 아니야. 걱정마, 넌 안전해’라고 말해 줄 나만의 처방전.


세상엔 수 많은 금쪽이가 있겠지만 그중 누구도 틀리지 않았다. 그러니 조금 더 안심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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