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후 나의 사람들을 위한 오지랖 넓은 감사 전화
감사(感謝) : 고마움을 나타내는 인사
- OO는 결혼하더니 연락이 없네. 이제 거진 한 달 넘었는데
- 너도 연락 못 받았구나. 난 또 나한테만 연락 안 한 줄 알았더니
- 아니야. 애들 중에 걔한테 연락받은 사람이 없어. 그래도 우리가 친한 친구인데 너무 연락 없는 거 아니니?
- 그러게. 문자 한 통이 없네
-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보통 신혼여행 다녀오면 친한 친구들한테는 초콜릿이라도 사다 주잖아.
- 그런가? 하긴 AA는 지난번에 집들이하면서 신혼여행 선물 준 것 같다.
- 선물을 받겠다는 게 아니라 그냥 좀 괘씸해. 우리가 그렇게 안 친했나 싶고
남편에게 물어보니 남자들에게 이런 대화는 몹시 생소하다고 한다. 여자들 중에도 이런 대화를 한 번도 나눠보지 못한 분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런 식의 대화를 여러 번 들은 적이 있다. 내 주변에는 사소한 것도 크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감사합니다.
청첩장을 주면서, 결혼식 준비를 하면서, 결혼식 당일 내내 우리가 가장 많이 입에 올리는 말 중 하나인 '감사합니다'. 결혼식에 와주면 감사하겠습니다, 결혼식 사회 봐주시기로 해서 정말 감사합니다, 바쁠 텐데 와줘서 고마워 등등. 우리는 그렇게 많은 감사의 말을 전하고도 혹은 듣고도 왜 서운한 마음에 휩싸이게 되는 걸까
혹시 나와 비슷한 이런 경험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없었는지 사뭇 궁금하다. 나 나름대로는 꽤 각별하다고 생각한 지인의 결혼식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나 혼자 그렇게 생각했나 하는 생각이 드는 때가 있다. 청첩장도 잘 받았고, 결혼식 직전에 같이 사진도 찍고, 식사 중에 나타난 신혼부부에게 마지막 인사까지 잘 받았는데 대체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거지 내가 예민한 건가 뭐 그런 기분들 말이다.
중요한 건 난 서운한 기분을 꽤 자주 느꼈던 것 같다. 냉정히 계산해보자면 결혼하는 친구에게 내가 줬던 축하의 마음만큼을 상대로부터 받지 못해서였다. 결혼식이라는 행복한 자리에서까지 결국 Give & Take인가 싶어 씁쓸하지만 그런 마음이 들었다는 것을 딱히 부인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결론적으로 나는 내 결혼식에서만큼은 설명할 수 없는 서운한 마음으로 집에 가는 사람이 없게 하고 싶다고 진작부터 생각했다. 그래서 나와 신랑은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까지 결혼식의 마지막 절차인 '감사의 인사'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청첩장에 이어 나의 유난스러움이 극대화되는 순간이었다.
처음에는 얼굴을 보지 못한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간이 없어서 축의금만 보냈거나 식에 참석했는데도 내가 인사를 놓친 사람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다음에는 어르신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의 경우에는 서울에 사시는 친척분들이 와주셨는데 부모님께 전화번호를 물어가며 일일이 전화를 드렸다. 특히나 레스토랑 결혼식이 생소하고 불편했을 어른들에게 마음이 더 쓰였기에 나의 죄송한 마음을 덜어내고 싶었던 아주 이기적인 처사이기도 했다.
친척 어른들께 전화를 드리고 나니 그다음 어려운 직장 사람들이 신경이 쓰였고, 그들에게까지 전화를 돌리고 나니 주요 하객이었던 나의 절친들이 생각났다. 짧게라도 대다수와 전화통화를 했고 전화를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문자를 보냈다. 나는 어떻게 해야지 라고 난감해하던 남편마저 부추겨 남편의 전화기도 바쁘게 만들었다.
- 야, 무슨 신부가 결혼식을 하자마자 전화질이야. 나 이렇게 오지랖 넓은 신부는 진짜 처음이다.
- 스테이크도 좋았는데 이 나이 들으면 뜨끈한 갈비탕이 최고지. 동생은 꼭 갈비탕 먹는 데서 하라고 해라.
- 우리는 집에 잘 들어왔어. 우리가 널 위해 하루를 다 보냈다는 거 아니니
- 아까 너랑 얘기하고 싶었는데 너무 바빠 보여서 말을 못 건넸는데 전화 반갑구랴
- 결혼식 못 가서 아쉬웠는데 나중에 사진 나오면 좀 보내줘. 페북에 신행 사진도 올리고
나 진짜 유난스러워서 어쩌나, 불필요해 보이는 예식 후 전화를 걸면서 일말의 걱정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막상 연락을 돌리다 보니 그게 아니었다. 오지랖이라고 혼내면서도 모두들 기쁘게 전화를 받았다. 우리끼리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미처 식장에서 하지 못했는데 전화로 '우리'를 다시 확인하고 있었다. 의외로 꼭 필요한 절차구나 하는 생각에 확신이 더해졌다.
합정역에서 공항버스를 기다리며 시작한 전화는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까지도 계속되었다. 잠깐 전화를 놓쳐 다시 전화를 걸어온 대학 동기와 식장에 왔던 사람들 얘기를 시시콜콜 떠들고 나니 탑승시간이 되었다. 오랫동안 준비했던 결혼식도 끝났고 오랜 시간을 나눴던 사람들에게 마지막 감사의 전화까지 다 끝내고 나니 마음이 가벼웠다. 이제 원 없이 신혼여행의 단꿈만 즐기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많은 결혼식에 다녔는데 결혼식 후에 이런 일로 전화 걸어주는 경우는 처음이다.
감사의 인사는 다 끝냈다 생각했는데 신혼여행 후에 나는 한 통의 전화를 더 하게 되었다. 결혼식에 왔던 선배가 앉을자리가 애매해서 식사를 하지 않고 집에 갔다는 얘기를 친구에게 들어서였다. 비좁은 레스토랑 결혼식 때문에 밥도 못 먹고 간 선배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득 안고 다시 전화를 걸었는데 선배가 웃으며 저런 이야기를 해주니 미안함이 한 꺼풀 정도 내려앉았다. 역시 전화를 하길 잘했다 생각했다.
과유불급(過猶不及) :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
어쩌면 나의 감사 전화는 누군가에게는 과유불급이라는 평을 들었을지도 모른다. 손글씨 메모를 담은 청첩장에, 결혼식장에서의 감사 인사에, 굳이 보태어 예식 후 전화까지 참 유난도 보통 유난이 아니구나 하며 웃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난 감사의 인사에서만큼은 과유불급이란 없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그것이 간단한 전화 한 통이라면 그쯤의 수고야 좀 더 보태져도 나쁘지 않을까 믿었다. 물론 당시에는 전화받는 사람의 수고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 전화의 소득을 꼽자면 '당신은 내게 특별한 사람입니다'를 전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전화를 받은 지인들은 하나같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 뭘 나한테까지 이렇게 전화를 걸어주냐고. 웃으며 다른 농담을 이어갔지만 실은 나는 이렇게 대답해주고 싶었다. 아니요, 당신은 나의 특별한 단 한 사람이니깐요.
그렇다고 이 글을 읽은 당신이 갑자기 예식 후에 꼭 전화를 해야 하는가에 대해 쓸모없는 논쟁을 벌일 필요는 없다. 누구나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방법은 다르니 말이다. 단 한 번의 인사로 모든 마음을 다 전할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최고의 감사 인사 아닐까. 혹여 서운하거나 부족하진 않았을까 걱정을 덜고자 감사 인사까지 겹겹이 쌓아놓아야 안심할 수 있는 나란 사람은 단지 좀 걱정이 많은 사람이었다는 걸 이해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