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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서 Mar 19. 2021

증명사진 찍는 날

조현서 초단편소설 프로젝트 #8

다솔은 군산 라마다 호텔에서 두 번째로 높은 방의 청소를 끝내고, 몰래 챙겨 온 책을 꺼내서 읽기 시작했다. 호텔에서 청소를 끝내고 남은 시간에 책을 소리 내서 읽는 것은 다솔의 비밀스러운 취미였다. 책을 크게 소리 내서 읽으면 다솔은 답답한 가슴이 조금은 풀어지는 듯했다. 호텔이라 방음도 문제없는 데다가 일머리가 좋은 다솔은 다른 직원에 비해서 할당된 객실 청소를 항상 일찍 끝내는 직원이었다.


“어느 것도 거기에 어두운 그림자를 떨구는 일이 없기를….”


하루키를 좋아하는 다솔은 자신이 50번도 넘게 읽은 <버스데이 걸>을 단숨에 소리 내서 읽고, 멍하니 천장을 응시했다.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다가도, 자신에게도 <버스데이 걸>의 주인공처럼 소원을 들어주는 누군가를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 찰나, 청소 도구를 들고 객실을 나왔다.


다솔은 군산에서 오전에는 호텔에서 객실을 청소하고, 오후에는 맥도날드 배달 라이더를 하면서 돈을 벌었다. 군산에서 벗어나서 서울로 가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무엇을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있지는 않았다. 그저 벗어나고 싶었다. 군산의 모든 것이 다 너무 느리고 답답했다. 서울 사람들이 찾아와서 즐기는 목가적인 시골의 분위기가 너무 하나하나 혐오스러웠다. 버스가 60분에 한 대 올까 말까 한 것도 싫었고, 밤에 사람들이 한 명도 없이 텅 비어있는 거리도 싫었다. 특히 한눈에 봐도 서울에서 내려와서 ‘여기 분위기 좋다’라고 말하면서 거리에서 사진을 찍는 커플을 볼 때마다 부러움과 혐오감으로 불쾌했다. 어떻게든 돈을 벌어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다솔의 부모는 다솔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서울을 ‘개미굴’이라고 부르는 다솔의 부모는 다솔의 서울을 향한 열망을 그저 잠시 타오르는 불꽃 정도로 간주했다. 바꿔 말하면, 자식의 마음속 근원에 같이 삽을 들고 파는 사려 깊은 부모는 아니었다. 그저 자신들의 삶의 방식에 만족하고 자식도 당연히 자신의 삶을 따를 것이라는 게으른 생각의 소유자였다. 다솔은 부모가 답답할 때마다 배달을 마치고 맥도날드로 돌아오면서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고, 호텔 객실에서 책을 읽었다. 오토바이를 밟으면서 소리를 지르거나 책을 있는 힘껏 읽다 보면 그래도 답답한 마음이 조금은 나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호텔에서 약 한 시간 가량 정전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일은 빠르게 수습되었지만, 다솔과 같은 스태프들의 인적 서류가 소실되었고, 증명사진과 신분증 사본을 제출하라는 공지가 나왔다. 비용 청구하면 다음 달 월급일에 지급된다는 말에 다솔은 퇴근하면서 귀찮음을 뒤로한 채 사진관으로 향했다. 마침 맥도널드 라이더도 쉬는 날이었다. 다솔은 사진관을 향하면서, 사진을 찍은 적이 언제인지 떠올렸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운전면허증을 만들기 위한 반명함판 증명사진을 찍은 적 이후로 한 번도 없었다. 오랜만에 찍는 사진이라고 생각하니, 다솔은 마음이 두근거렸다.


다솔은 골목 깊숙한 곳에 있는 사진관에 들어가면서, 이곳에 사진관이 있었는지 생각해봤지만,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주 작은 입간판을 보지 못했다면 다솔은 지나칠 뻔했다. 지하로 가는 아주 좁고 높은 계단을 내려가면서 다솔은 한순간 불안감에 휩싸였지만, 별일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지하로 내려갔다. 라이더와 청소 아르바이트를 통해 더없이 많은 사람을 경험한 다솔에게는 그 나이의 소녀가 가지지 못한 담력과 생활력이 있었다. 미로같이 높고 꼬불꼬불한 계단을 내려가니 아주 작은 문이 보였다. 다솔은 개의치 않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외진 골목과 꼬불꼬불하고 높은 계단과 달리 사진관 안은 굉장히 넓고 평범했다. 따로 방이 구별되어있지는 않았지만, 삼각대 위에 살포시 앉아 있는 DSLR 카메라, 그리고 촬영용 조명 두 개, 의자가 있는 촬영 장소를 제외하고 소파와 스타일링 공간, 촬영 시 사용할 수 있는 소품, 앉아서 쉴 수 있는 소파도 보였다. 지하라서 그런지 겉에서 볼 때보다 비현실적으로 넓었다. 카운터에는 장발의 남자가 무표정하게 앉아 있었다. 가장 큰 특징은 그의 눈빛이었다. 그의 눈빛은 텅 비어있었다. 마치 다솔이 들어오는 것을 전혀 보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몸을 제외한 모든 것이 다른 세계에 존재하듯이, 그의 눈은 다솔을 향해 있었지만, 전혀 다솔을 보고 있지 않았다. 다솔이 카운터에 다가가서 크게 부르자, 그제야 그의 눈에 생명력이 돌아왔다.


“이곳으로”


아무런 질문도 없이 장발의 남자는 다솔을 카메라 앞 의자로 이끌었다. 어떤 용도로, 왜 사진을 찍는지는 전혀 궁금하지 않은 듯 보였다.


“이력서 용 반명….”

“쉿.”


장발의 남자는 자연스럽게 다솔의 말을 막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다솔에게 어떤 요구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진을 찍을 때 장발의 남자는 다시 텅 빈 눈빛으로 변했다. 생명의 꿈틀거림을 전혀 느낄 수 없는 눈으로 그는 계속해서 셔터를 눌렀다. 다솔은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계속해서 셔터 소리가 이어졌다.


“저기….”

“쉿.”


다솔이 말을 할 때 순간적으로 그의 눈에 다시금 생기가 돌았지만, 너무 짧은 순간이라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렇게 사진을 찍는 30분 동안, 장발의 이상한 사진사는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았다. 그저 셔터를 누를 뿐이었다. 30분간 당황스러움, 짜증, 무서움, 흥미로움의 감정이 오롯이 사진 안에 담기는 것을 다솔은 눈치채지 못했다. 사진사는 한 시간 가까운 시간이 지나서야 셔터를 누르는 것을 멈추고 카운터로 돌아가서 앉았다. 앉아서 그는 몸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죽은 듯이. 다솔이 재차 큰 소리로 사진사에게 소리쳤지만, 답은 없었다. 다솔은 소파에 앉아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한 시간, 두 시간, 시간이 흘렀고, 다솔은 이판사판의 마음으로 계속 기다렸다. 세 시간 후, 드디어 사진사가 일어나서 다솔의 앞에 앉았다. 여전히 사람 같지 않은 모습은 그대로였다.


“사진 안 주세요?”

“어느 것도 거기에 어두운 그림자를 떨구는 일이 없기를….”


다솔은 온몸에 저릿한 소름이 돋았다. 자신이 좋아하고 원망하는 바로 그 책의 구절이었다.


“하지만 어두운 그림자는 빛의 시작이지”

“그 구절을 어떻게 알아요?”

“그리고 사진은 빛을 담지.”


사진사는 사진을 건넸다.


정말 다솔의 매력을 완벽하게 담아낸 반명함판 증명사진 5장이 작은 봉투에 담겨 다솔의 손에 놓였다. 다솔은 놀라움과 당황스러움에 한동안 움직이지도 못했다. 생선의 뼈를 바르듯이 자기 자신을 완전히 투사했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다솔의 밝은 에너지를 정확하게 포착한 완벽한 사진조차 무서웠다. 다솔은 그 사진을 모두 다 버리고 싶었다. 눈치 못 채도록 빨리 나가서 사진을 버리려는 찰나, 핸드폰 벨소리가 야단스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호텔 사장이었다.


“다솔 씨, 난데.”

“네.”

“사진 지금 보내줄 수 있어?”

“예?”

“아니, 내일 오전에 감사 나온다고 하네. 다솔 씨만 보내주면 지금 다 받았거든? 오늘 사진 찍었지? 바로 보내줘.”

“네? 저, 아직….”


통화 종료음이 이미 울리고 있었다. 다솔은 결국 이 사진을 써야만 했다. 찝찝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사진을 들고나가려는 찰나, 사진사가 다른 사진 한 장을 건넸다. 가로가 10cm 정도 되는, 흔히 DSLR 사진을 찍을 때 인화되는 크기였다. 밀봉되어있어 어떤 사진인지는 보이지 않았다. 다솔은 무서움에 사진을 사진사에게 다시 돌려주고 증명사진만 챙긴 채 재빨리 사진관을 빠져나왔다. 다솔은 살면서 가장 빠른 속도로 달려서 골목을 빠져나와 집으로 향했다.


다솔이 거절한 그 사진은 마치 자신이 더 빠르다는 듯이 집 앞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밀봉되지 않은 채로.


그 사진은 형체를 알 수 없는 시체에 둘러싸인 채 피를 뒤집어쓴 자신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었다. 그런데 다솔은 보자마자 시체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으스러져 있는 시체를 보자마자 다솔은 그 시체가 자신의 부모라는 걸 깨달았다. 마치 홈런타자가 실투를 자연스럽게 홈런으로 받아치듯이 자연스러운 사고였다. 그 으스러진 시체가 부모가 아닐 수가 없었다. 다솔은 묘한 흥분감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이내 감정을 누른 채, 집에 들어가서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했다. 부모는 평소처럼 무관심했다.


다음 날, 다솔은 언제나처럼 호텔의 마지막 객실에서 책을 폈지만, 책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책을 찢어 버리고 싶었다. 다솔은 <버스데이 걸>과 <렉싱턴의 유령>을 갈기갈기 찢어 자신이 끌고 다니는 청소 트레이 안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리고 자신이 해야 할 행동을 깨달았다. 다솔은 자신의 부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부모는 무신경하게 전화를 받았다.


“6시까지 들어와, 아빠.”

“6시까지 들어와, 엄마.”


다솔은 이 한마디를 끝으로 두 통의 전화를 끊었다. 다솔은 오늘 호텔 청소 일과 라이더 업무를 모두 그만두고, 집에 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식칼을 사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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