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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서 Mar 23. 2021

평양냉면을 처음 먹은 서현 씨

조현서 초단편소설 프로젝트 #9

직원이 5명이 채 안 되는 작은 중소기업에 다니는 서현은 아침 여섯 시에 집에서 나와 편의점 1+1 행사 고 카페인 음료로 시작했다. 잠과 졸음의 경계를 고무줄넘기처럼 오가는 아르바이트생에게 음료 한 개를 줄까 고민하지만, 아깝다는 생각에 그만뒀다. 서울역 환승센터에 가서 버스를 타야 하는 서현은 이른 새벽 서울역에 올 때마다 폐박스를 덮어쓰고 쪼그린 채 자는 사람들을 마주했다. 그럴 때마다 서현은 혐오감과 동정심이 뒤섞인 오묘한 감정이 들었고, 그 감정은 ‘절대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으로 귀결되었다.     


서현은 52시간 근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중소기업 사원이었다. 커피, 복사, 영수증 처리 같은 잡무부터 물류 및 주문관리까지 주 업무까지 전부 도맡아 해야 했다. 다른 세 명의 직원 중 부장과 과장이 사장의 아들과 딸이었기 때문이었다. 둘은 회사에 나오는 날 보다 나오지 않는 날이 배로 많았고, 자연스럽게 일은 서현과 서현의 1년 선임 대리가 전부 맡아서 해야 했다. 다행히도 서현의 선임은 강압적으로 명령하고 일을 비합리적으로 분배하지 않았지만, 일 자체가 둘이서 도무지 할 수 없는 날이라 야근이 일상이었다. 하지만 월급은 매년 동결이었고, 사장과 부장의 자가용만 바뀔 뿐이었다.     


사장에게 단 하나 다행인 점은 법인 카드로 먹는 밥에 대해서는 관대했다. 족발을 삼일에 두 번 시켜도 별말이 없었다. 새로 직원을 채용해야 하는 귀찮음과 월급을 올려주기 싫은 탐욕 사이 균형 잡기의 결과였다. 서현과 서현의 선임 대리의 유일한 쉴 틈은 나름 풍족한 식사 시간뿐이었다. 하지만, 회사 이윤이 1/3 정도 줄어드는 일이 발생했다. 거래처의 납품가 상승이 이유였다. 거래한 지 10년이 넘었고, 납품가를 동결한 지 8년이 지났으며, 주변 다른 회사의 제품과 비교해서 비싼 금액도 아니었기에 요청한 가격만큼은 아니어도 조금 올릴 수밖에 없었다. 사장은 보고서를 제대로 보지도 않은 채 알아서 하라고 말했지만, 이내 줄어든 이윤을 확인하니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자신이 내뱉은 말이 있었기에 화를 낼 수는 없었다.     


지코와 레드벨벳이 북한에서 공연하고 옥류관 평양냉면을 먹은 날, 서현과 대리는 점심으로 평양냉면과 만두를 먹었다. 가수들이 냉면을 먹는 모습을 보니 둘은 자연스럽게 냉면이 끌린 데다가 투자자와의 성공적인 미팅을 기념하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서현이 처음으로 먹는 평양냉면이었다.

      

“레드벨벳도 평양냉면 먹은 날인데.”

서현의 선임은 말을 마치고 냉면 면발을 후루룩 들이켰다. 하지만 서현에게 평양냉면 국물은 고기가 잠깐 빠졌다가 나온 것 같았다. TV와 유튜브에서 평양냉면에 대해서 유난을 떠는 연예인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서현은 그 순간 입맛이 뚝 떨어졌다. 자신과 너무 먼 세계의 음식이라는 생각이 든 서현은 식초와 겨자를 과하게 뿌리면서 느끼는 배덕감으로 한 끼를 마쳤다.


점심을 먹고 회사로 돌아오자마자 둘을 반기는 건 시원한 에어컨의 칭찬이 아니라 사장의 고함이었다. 이따위로 일을 하면서 평양냉면이 목구멍으로 들어가냐는 욕이 섞인 말이었다. 계약을 이렇게 불리하게 맺는 것이 말이 되냐는 어처구니없는 비난이었다. 하지만 서현과 선임 대리는 묵묵히 들을 수밖에 없었다. 사장은 점심은 5,000원 이내로 해결하라는 본심이 담긴 말을 끝으로 사장은 회사 문을 박차고 나갔다.      


도저히 술 없이 스트레스를 풀 수 없을 것 같아 서현이 퇴근길에 맥주를 사러 간 편의점에는 아침에 본 아르바이트생이 같은 자세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서현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흘러나왔다. 서현은 눈물을 숨기기 위해 하품하는 척하며 맥주 대신 참이슬 오리지널 한 병과 말보로 레드를 샀다. 그리고 야외 편의점 의자에 앉아서 단숨에 소주를 들이켰다. 그리고 말보로 레드를 피웠다. 그리고 마음껏 눈물을 흘렸다. 어떻게 하면 이 아르바이트생과 자신이 이 세상을 탈출할 수 있는지 생각했지만, 답이 없어 보였다. 서현은 소주 한 병과 담배 반 갑을 비우고, 한 병을 더 구매한 뒤 편의점을 떠났다. 편의점 옆에 폐박스를 덮은 채 술에 취해 잠든 노숙자를 바라보며, 서현은 자신과 노숙자와의 차이가 무엇인지 골똘히 고민했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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