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현서 Aug 28. 2021

A PD와 B 인턴 이야기

조현서 초단편소설 프로젝트 #20

A PD는 긴급회의를 마치고 심란한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강변북로는 뻥 뚫려있었지만, A PD의 마음은 꽉 막힌 것처럼 답답했다. 


    

긴급회의 일주일 전, 면접에 합격해서 8주간의 인턴 과정을 자신의 팀에 거칠 예정인 B 인턴은 A PD에게 합류한 순간부터 굉장한 눈엣가시였다. 인턴은 면접에 불이익이 갈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자신의 몸을 낮추는 경우가 많았고, 대부분의 PD 역시 이를 당연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B 인턴은 자신이 합격하든, 안 하든 크게 상관이 없는 듯이 행동했다. 상대방의 생각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A PD는 B인턴이 뭐든지 나서서 하려 하는 신입의 패기와 싹싹한 친화력이 없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편집 실력이나 업무를 보조하는 일머리는 나쁘지 않은 데다가 A PD가 적극적으로 조언을 하는 성격은 또 아닌지라, A PD는 B 인턴을 일단은 그냥 내버려 뒀다.      

사건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발생했다. 한 번은 총괄 CP가 촬영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았을 때 팀원들에게 언성을 높여 욕을 하는 날이 있었다. 막내 조연출은 눈물을 훔쳤다. 그 상황 속 B 인턴이 소리 높여 반항하지 않은 것을 A PD는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음 날, B인턴은 총괄 CP의 폭언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신고했다. 인권위로부터 전화가 온 순간, 그때의 얼음장 같은 분위기는 A PD는 운전하면서도 고개를 가로저을 정도로 살벌했다. 예상치 못한 인권위의 전화에 전 스태프는 당황했지만, CP가 당황하는 그런 드라마 같은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몇 명을 취조하며 B 인턴의 짓이라는 걸 파악하는 데는 2시간이면 충분했다. B 인턴의 신고에도 A PD의 팀을 향한 CP의 호통은 더 악랄하게 오히려 계속 이어졌다. 같잖은 신고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선언이었다. A PD를 포함해서 아무도 CP의 말에 토 달지 못했다. 인간의 가장 잔인한 점 중 하나는 이러한 상황에서 CP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기보다는, 사건을 더 크게 키웠다는 이유로 B 인턴을 탓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B 인턴과 친했던 선배 PD와 동기 인턴들은 점점 B 인턴을 멀리했다.    

  

B 인턴에 관한 이야기가 회사에 나돌기 시작했다. B 인턴이 일베 유저, 대학교 왕따, 성소수자라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소문이 우후죽순으로 피어났다. A PD는 곧 B 인턴이 인턴 업무를 그만둘 것이라는 생각에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B 인턴은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꿋꿋이 회사에 나와서 인턴 업무를 수행했다. 그러던 어느 날, B 인턴은 기안84 마감샤워 단합대회 기획 회의에서 완강한 반대 의사를 표현했다. 단합대회에 몰래카메라 형식으로 두 명의 게스트만 참여하는 것은 출연자를 기만하는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몰래카메라라는 남을 속이면서 웃기는 프로그램의 마지막에는 출연자가 행복해야 속이는 것으로 웃기는 시청자의 죄책감이 덜어지는데, 이 구성은 그럴 가능성이 너무 낮다면서 열변을 토했다. 하지만 B 인턴은 이미 없는 사람이었다. 다들 듣는 척만 하며 기획 회의는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기안84 에피소드가 촬영되기 1주 전, B 인턴은 마지막까지 그 에피소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B 인턴은 회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안산과 신유빈을 게스트로 초대하자고 제안하는 등 여성 출연진과 제작진의 처우에 목소리를 높였던 B 인턴이 왜 기안84의 에피소드에 그렇게나 신경 쓰는지, A PD는 의아했지만 이내 별생각 없이 촬영에 들어갔다. 


    

A PD는 기안84 에피소드에 대한 사과문을 준비해야 했다. B 인턴의 문제 제기를 시청자가 그대로 반복하고 있었다. 도저히 운전할 수가 없을 것 같아 택시를 탄 A PD의 머릿속에는 B 인턴으로 가득했다. 그녀의 주장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자신의 행동이 바로 진영 논리에 빠진 꼰대라는 걸 증명하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A PD는 텅 빈 강변북로를 쏜살같이 지나가는 택시 안에서, 여전히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말로 시작하는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