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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서 Aug 28. 2021

2Q21

조현서 초단편소설 프로젝트 #21

아마 가장 많은 사람이 실제로 깨어 있지 않은 시간, 새벽 세 시 오십 분에는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딱 삼 분간.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에서 주인공이 한 터널을 통과하자 보름달이 두 개가 뜨는 새로운 세상으로 도착했듯이. 그 순간에는 세상이 2021년에서 2Q21년으로 변한다. 그 둘의 차이는 아주 간단하다. 바로 그림자가 사라진다. 2Q21년에는 그림자가 없다.      

그림자가 없어진다는 걸 처음 알게 된 건 바로 야간 아르바이트 때였다. 24시간 카페베네 아르바이트를 했던 나는, 아주 우연히 새벽 세 시 사십 분에 담배를 피우러 나왔다. 다시 들어가려는 순간, 무언가 세상이 달라졌다는 게 느껴졌다. 온몸에 위화감이 덕지덕지 달라붙었다. 밤에 불어오는 바람도 뭔가 피부에 닿는 방식이 달랐다. 주변을 살피니 곧 분명한 변화를 알 수 있었다. 그림자였다. 그림자가 없었다.     

그림자의 부재가 삶에 끼치는 영향은 거의 없었다. 몸이 조금 가벼운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확실하지는 않았다. 그림자도 무게가 있는 걸까? 새벽 세 시 오십 분, 그림자가 없는 내 모습과 내 몸을 스치는 새로운 바람을 느끼며 피우는 담배를 나는 점점 기대하기 시작했다. 텅 빈 거리와 가끔 술에 취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드는 묘한 우월감은 마약처럼 내 머릿속을 잠식했다. “너희는 이거 모르지?”라는 원초적인 우월감은 별로 큰 비밀이 아니었음에도 내 부족한 자존감을 조금 채우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어느새 나는 매일 카페에 출근하고 싶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일주일 후, 여느 날처럼 가벼운 몸으로 묘한 우월감에 사로잡힌 채 담배를 피우러 나간 순간, 갑자기 누군가가 내 어깨를 탁 잡았다. 내가 여자라는 걸 전혀 상관하지 않은 듯이, 꽉 내 어깨를 눌렀다. 순간 나는 손을 뿌리치며 뒤를 돌아봤다. 뒤에는 양복을 입은 남자가 나를 무표정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남자는 카페로 다시 들어갔고, 나는 대체 지금 나한테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카페 내부의 물건이 전부 사라졌다. 의자 두 개만 남겨놓고,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어제 로스팅한 원두와 오늘 아침에 납품받은 우유부터 테이블, 커피머신, 테이블, 심지어 싱크대까지 전부 사라졌다. 담배 피우러 나오기 전에 있었던 10명이 넘는 손님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당황스러움에 한동안 멈춰 서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침묵을 깨트린 건 양복을 입은 남자였다.


     

“앉지.”     

나는 당황스러움에 망설였다. 갑작스러운 상황이 무서웠다.     

“앉아. 더는 몸에 손댈 일 없으니까.”     

나는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본론만 말할게. 2Q21년에 살 거면 내일, 새벽 세 시 오십 분에 카페에 나와.”     



나는 내일 비번이었다.     

“네? 무슨 말...”

“에이, 왜 모르는 척해. 다 알잖아.”

“...”

“바보로 알지 말고, 2Q21년으로 가고 싶으면, 내일 카페에 나오고, 아님 말고. 난 간다.”  


   

남자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진짜 새로운 세계가 존재하는 걸까? 나는 매일 5분간 나만 아는 유일무이한 세계에 간 게 아니라, 실제로 다른 사람들이 존재하는 새로운 세계로 간 걸까? 고민에 빠졌다. 모든 걸 포기하고 새로운 세계로 갈 수 있을까? 고민이 깊어졌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 눈을 감은 순간,     

잠에서 깼다.     

침대에서 일어났다. 이 일이 꿈이 아니라는 건 분명했다. 분명히 지난 일주일간 나는 색다른 바람과 그림자가 없는 세계를 경험했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세계에서 살아갈 기회를 얻었다. 콩닥콩닥 떨리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하면서 나는 그 남자가 입은 옷과 비슷한 양복을 입고, 카페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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