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현서 Nov 09. 2022

그녀의 후쿠오카 여행기

조현서 초단편소설 프로젝트 #22

한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모든 것에 열정적이었다. 회사 업무에도, 친구 관계, 연인 관계, 취미 활동까지 모든 것에 열정적이었다. 그녀의 열정은 ‘빈틈이 없는 계획으로 실현되었다. 그녀는 맡은 프로젝트를 위해서 그의 상사 혹은 책임자도 하지 않은 야근을 하기 일쑤였다. 11시에 겨우 야근을 끝내고도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댄스 수업을 들으러 갔다. 댄스 수업을 듣지 않는 날에는 24시간 헬스장을 들러 1시간 러닝을  마치고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친구들과 모임을 가질 때도 먼저 연락하고, 장소와 공간을 자신이 예약하는 편이었다. 연인 관계에도 열정적인 성격은 발휘되었는데, 어떤 데이트를 할지 항상 먼저 제안했고, 사랑도 먼저 열정적으로 고백했다. 고백을 받은 적은   번도 없었다.     


그녀에게는 부족한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매력이었다. 모든 것을 열심히 하고 모든 것에 적극적이었지만 역설적으로 그녀는 사람을 끌지 못했다. 연인 관계도 항상 6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가장 최근에 만난 남자친구도 100일이  되기도 전에 어느새 전화를 점점 피하더니, 잠수하기에 이르렀다. 그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은 “요즘 재미가 없다였다. 친구들도 그녀가 먼저 만나자고 말하기 전에는 먼저 만나자고 제안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돈을 빌려달라는 대학 동창의 연락 말고는  그대로   번도 없었고, 그마저도 5 전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느린 예약을 전혀 견디지 못했다. 회사 동료들의 평판도 ‘열정적인 사람에서 항상 멈췄다. ‘얘는 뭔가 있다라는 평가를 받는 것은  그보다 열정이 부족한 사람들이었다. 그녀는 항상  자기보다 적극적이지도 않고, 열정도 떨어지고, 능력도 떨어지는 사람들이 자기보다 앞서가는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진짜 문제는 애매한 회사 내 평판이 아니었다. 그녀가 맡은 프로젝트들이 어느 순간 제대로 진행되지 않기 시작했다. 한 프로젝트는 협력사의 도산, 다른 프로젝트는 해외 바이어의 갑작스러운 변심, 또 다른 프로젝트는 선임의 리베이트로 무산되었다. 그녀가 열정을 쏟으면 쏟을수록 더 많은 프로젝트가 무산되었다. 그녀 때문에 무산된 프로젝트는 단 하나도 없었다. 모두는 그녀에게 ‘운이 없다’라고 말하며 위로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위로하는 마음 한쪽에는 ‘진짜 문제는 그녀에 있지 않았을까.’ ‘나라도 그녀한테는 안 맡길 거 같아’라는 생각이 이미 오래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여러 프로젝트가 무산되는 과정에서 회사는 그녀의 책임을 물었다. 그녀의 책임은 단 하나도 없었지만, 그녀가 맡은 프로젝트가 전부 무산되었기에 그녀의 책임도 있다는 결과론적인 판단과 그에 완벽히 맞춰진 보고서는 어느새 실패한 모든 프로젝트를 그녀의 책임으로 돌렸다. 그녀는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노동법에 명시된 기준과 휴가를 요구했고, 회사는 자진퇴사를 원했다.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는 열정을 여기에도 마음껏 발휘했고, 그녀의 열정은 회사 전체의 시스템을 능가했다. 회사는 여러 방법으로 그녀를 괴롭혔지만 이내 포기하고 그녀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었다. 인사담당자의 씻을 수 없는 한 마디를 남긴 채.      


“당신, 참 별로네요”     




그녀는 해고 예고 일시 전에 그동안 모은 모든 휴가를 사용했고, 바로 후쿠오카로 떠났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항공권이 가장 쌌다. 그녀는 후쿠오카에 대한 모든 것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후쿠오카 여행에서 갈 수 있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엑셀로 정리했다. 날짜별로 장소와 시간을 행렬로 정리해서 그날에 갈 수 있는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조사해서 최적의 루트를 고안했다. 그녀는 다른 사람이 약 5일 정도 걸릴만한 일정을 3일 안에 구겨 넣었다. 그녀는 마치 화풀이하듯이 자신의 열정을 여행에 투입했다.     


그녀는 텐진-다이묘 거리를 배회하며 유명한 일본 전통 화과자 가게, 간장 가게부터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우가 많을 법한 힙한 카페와 바를 방문했다. 후쿠오카의 가장 큰 특색 중 하나인 빈티지숍(2nd street, 유니온3은 물론이고 지도에 없는 모든 빈티지숍까지)도 모두 방문했다. 텐진-다이묘 거리에서 그녀의 얼굴은 한 번이라도 못 본 사람은 없을 정도로 열심히 거리를 누볐다. 캐널시티 하카타에서 스투시, 슈프림, 베이프, 아디다스 등 힙하다는 평이 있는 브랜드의 매장을 모조리 방문했다.     


고독한 미식가와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에 나온 미야케 우동도 잊지 않은 그녀는 한 끼에 우동과 소바를 모두 해치웠다. 우동과 소바를 모두 시켜서 두 접시를 놓고 먹는 사람은 그녀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우동 가게 할아버지는 그녀가 신기하다는 듯 혹은 측은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다행히도 그녀는 먹음직스럽게 건새우 튀김이 올라간 우동과 큼지막한 둥근 어묵이 올라간 소바의 사진을 찍고 먹는 데 지나치게 열중한 나머지 할아버지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 다행히도 그녀의 열정이 할아버지의 표정을 분석하는 데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만약에 그랬다면 그녀는 끈질기게 그 할아버지에게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3일간에 짧은, 하지만 회사 업무보다도 타이트한 일정의 여행을 마친 그녀는 예기치 못한 소식을 듣게 되는데, 바로 항공기 결함으로 항공편이 취소되었다는 것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대체 항공편을 구하기도 어렵다는 대화를 나누는 승무원끼리의 대화를 그녀는 예기치 않게 엿들었다. 항공사는 공항에서 가까운 텐진 역 근방 비즈니스호텔을 제공했고, 그녀는 예기치 않게 하루를 더 보내게 되는 상황에 놓였다. 호텔로 돌아온 그녀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녀는 후쿠오카를 지난 3일로 끝을 내고자 열정적으로 도시를 탐닉했고, 그 결과 더는 할 것이 없다고 본인 스스로 만족스러운 결론을 내리고 판단을 끝낸 상태였다. 그녀의 몸 상태는 이미 열정을 발휘할 수 없을 정도로 지쳐있었지만, 그녀의 머리는 여전히 여행에서의 열정을 명령했다. 몸은 머리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었다.     


그녀는 숙소 근처의 바로 향했다. 당연히도 구글 지도에서 가장 별점이 높은 곳이었다. 그런데  바는 그녀의 예상하고는 달랐다. 예상보다 훨씬 시끌벅적하고 젊은 분위기였다. 30 중후반이 중후한 바텐더와 한마디 주고받으면서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는 곳보다는 혼자 오면 바텐더, 혹은 근처의 혼자  사람과 계속해서 스몰토크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곳이었다. 남자, 여자, 바텐더,  담당 직원 모두 젊고, 잘생기고 예뻤다. 중고등학교 학생이 가장 좋아할 만한, 조금만 운이 좋다면 연예기획사 실장에게 명함을 건네받아 아이돌로 데뷔할 법한 남녀 바텐더가 가득했다. 그녀는 당황했다. 하지만 이미 넉살 좋은 바텐더가 문까지 마중 나와서 그녀를 바텐더   1인석으로 안내했다. 그녀는 빨리 마시고 다른 곳으로  생각에 진토닉을 주문했다.      


그녀의 옆에는 한 젊은 남자가 앉아있었다. 젊은 남자는 요즘 유행하는 애즈펌 머리에 둥근 안경을 썼고, 검은색 재킷을 걸쳤다. 바지도 검은색으로 멋스러운 올블랙 패션이었다. 젊은 남자는 그를 응대하는 여자 바텐더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중간에 버벅거림이 있었지만, 꽤 유창한 일본어였다. 의사소통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바텐더와 젊은 남자는 서로 웃는 얼굴로 대화를 이어갔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남자는 매너 있어 보였고, 여자도 웃음으로 답했다. 다만 그녀가 보기에 그 여자의 웃음에는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었다. 그녀도 그 여자가 결여한 것이 무엇인지, 왜 결여되었는지 진토닉을 한 잔 마시며 고민했다. 하지만 답은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그녀가 진토닉을 마시면서 옆의 남녀를 흘끗흘끗 쳐다보자, 남자 바텐더가 다가와서 매너 있게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그녀는 웃으면서 구글 번역기를 켜서, ‘저는 일본어를 못해서 괜찮아요’의 문장을 일본어로 보여주었다. 남자는 가볍게 미소 지으면서, ‘아리가또’라는 말과 함께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무엇이 감사하다는 것인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순간 기분이 나빴지만, 다행히도 그녀에게는 부담스러운 시선을 견디면서 술을 마실 필요가 없어졌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옆에서 나누는 화기애애한 대화를 가끔 흘끗 보며 진토닉 한 잔을 다 비운 순간, 그녀는 옆의 남자와 여자가 다음 단계의 관계로 이어질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녀의 미소뿐만이 아니라 그 남자에게도 뭔가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에게는 분명하게도 아주 많은 것이 비어있었다. 혹은 아주 좋지 않은 것으로 채워져 있을지도 모른다. 분명한 건 두 경우 모두 긍정적인 성질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녀의 미소에 결여된 것이 그에게서 기인했다는 사실을 파악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녀는 그 남자가 자신은 그 사실을 알지에 대한 궁금함을 뒤로하고 진토닉 한 잔을 끝으로 바를 나섰다.      


숙소에 돌아온 그녀가 씻고 짐을 정리하던 도중, 갑자기 울음을 왈칵 쏟아냈다. 그녀는 서럽게 울었다. 세상이 떠나가도록, 방음이 잘 되는 비즈니스호텔임에도 옆 방, 옆옆 방에 모두 그녀의 울음소리가 들릴 정도로 엉엉 울었다. 마치 신의 장난처럼, 다른 사람이 울어야 하지만 그녀가 대신 우는 것 같았다. “야, 쟤 대신에 쟤가 울게 하자. 어차피 비슷하잖아?”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신의 모습이 그녀의 머릿속을 스쳤다. 그녀는 그 이미지가 머릿속에 스쳤음에도, 신의 모습이 어떤 의미를 내포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우리 모두 술집의 올블랙 남자가 흐느껴야 할 울음을 그녀가 대신한 것을 알지만, 아마 그녀는 이 사실을 알더라도 세상에서 가장 마지막에 깨닫는 사람일 것이다. 그녀는 폭포처럼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노트북을 켜서 내일도 연착될 시에 방문할 만한 카페와 음식점을 본격적으로 검색하기 시작했다. 하늘에 구름이 잔뜩 낀 채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2Q2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