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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지영작가 Feb 14. 2020

빨간 운동화에 담았던 나의 꿈 그리고 열정

항공사 승무원으로 10년을 열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 

 나는 아시아나 항공 승무원으로 10년을 근무했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뛴다. 살면서 가장 열정적이었던 순간은 언제였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입사준비를 하던 때라고 말할 수 있다. 입사 후 내 별명은 ‘빨간 운동화’였다. 왜냐면, 최종 면접 날 나는 검정 구두가 아닌 빨간 운동화를 신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시절 나의 꿈은 방송국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방송국에서 일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 ‘방송작가’를 꿈꾸었다. 어릴 때부터 드라마를 좋아했던 나는 그저 막연하게 방송국에서 글을 써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가 내 인생을 바꾸었다.


 어느 날, 보게 된 승무원 모집 공고에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지원서를 보냈다. 그날이 서류접수 마지막 날이었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서류전형에서 합격하고 1차 면접을 보고 또 합격을 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항공사 승무원’이라는 직업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때까지 아무런 준비가 없었던 나는 짧은 시간 동안 치열하게 준비하기 시작했다. 내 안에 있던 모든 열정과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영어가 약했던 나는 영어구술면접을 위해 예상 질문 100가지를 뽑아 영어사전을 끼고 앉아 영작을 해서 외우기도 했다.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또 준비하며 합격을 향해 달려갔던 나는 최종 임원 면접 전날 다리를 다쳤다. 어머니는 서울로 올라가는 것을 반대하셨다. 아픈 다리를 이끌고 간들 뽑아줄 리 없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이다. 전날 저녁에 다리를 다치고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다리가 퉁퉁 붓기 시작했다. 화장실에 걸어가기도 힘든 상태에 이르렀다. 다치자마자 병원으로 갔어야했는데 그러지 못해 상태가 심해졌던 것이다. 


 아침이 되어 병원이 아닌 서울로 향했다. 어머니의 반대에도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구두를 가방 속에 넣고 빨간 운동화를 신고 서울로 갔다. 면접 대기실에는 모두가 같은 옷차림으로 앉아있었다. 하얀 블라우스에 검정 스커트 그리고 검정 구두. 나만 빨간 운동화를 신고 있으니 모두가 날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주위의 시선은 아무렇지가 않았다. 구두에 발이 들어가지 않으니 어떻게 신발을 신고 들어갈 것인가 하는 생각만 내내 했던 것 같다.


 다음 순서를 기다리면서 나는 검정 구두만 바라보고 있었다. 내 이름이 불리자 아무렇지 않게 구두 속에 발을 집어넣어 면접장으로 들어갔다. 아픈 다리가 어떻게 구두 속에 들어갔는지 또 어떻게 나는 구두를 신고 안으로 들어갔는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분명한 건, 면접을 보는 내내 다리를 다쳤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의 신경은 오로지 면접에만 있었다. 퉁퉁 부은 다리로 앉아 미소를 짓고 있던 나의 열정을 높이 샀던 걸까. 나는 단 한 번의 시험으로 승무원이 되었다. 


 

 그때의 경험으로 얻은 한 가지가 있다면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깨달음이다.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을 때 ‘운’이라는 것도 내 것이 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깨달았다. 붕대를 감은 다리로 면접장에 앉아있으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만약 이런 나에게 기회를 준다면, 정말  최선을 다하는 멋진 승무원이 되겠다.’


  10년 동안 비행을 하면서 나는 그때의 첫 마음을 한 순간도 잊지 않았다. 아픈 다리로 면접을 보러 온 내게 기회를 준 것에 감사하며 철저한 자기관리로 그야말로 ‘항공사에 최적화된 승무원’으로 살았다. 


 열심히 살았던 20대의 기억으로 지금도 나는 다양한 도전을 하면서 살아간다.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이가 아닌 마음가짐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내 안에 있는 열정은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되살아난다는 것을, 나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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