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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urnuri Apr 22. 2016

영양 주실마을

한국은 국토면적이 그리 넓지 않아 어디고 서너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다. 더군다나 반쪽으로 갈라진 남녁땅은 더 좁아서 가로세로 약 500km를 넘지 않는데 영양은 참으로 오지 중에 오지이다. 지금도 이곳에 가려면 버스를 4시간이상 타야하고 오가는 길도 외통수여서 여간 교통이 불편한 곳이 아니다. 특히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안동이나 청송을 거쳐야하는 정말 깡촌 중에 깡촌 이다. 영양의 서석지를 구경하러 갔다가 영양 읍내가 궁금해서 들렀고 문 듯 근처의 영양 주실마을이 떠올라 비오느 날씨를 무릎 쓰고 택시를 잡아타고 도착하였다. 

이런 깡촌에 언제 다시 올수 있을까 꼭 보고 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향한 주실마을은 일월산을 등에 지고 길게 펼쳐져 있는 명당으로 나지막한 구릉에 기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전형적인 우리네 마을모습이다. 마을의 기원은 약 380년전 기묘사화가 일어 난 후 고향을 떠난 조전은이 서울을 떠나 1630년 경 부터 이곳에 터전을 잡고 정착하였다 한다. 그래서 지금은 한양 조씨의 집성촌이 되었고 오랜 시간이 지나 한국문학에 더 할 나위 없이 중요한 3명의 청록파 시인 중 한명인 조지훈이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지금은 주실마을 하면 조지훈 생가가 있는 마을이라 알려져 있으며 실제 그가 태어나고 자란 호은종택이 마을에 남아 있다. 17세기말에 세워진 호은종택은 경상북도 지역의 전형적인 양반가옥으로 6.25전란 중 소실되었다가 1963년 다시 지었다고 한다. 조지훈의 생가가 있는 영양 주실마을은 특별한 문화재 보다 더 의미 있는 곳이 되었다. 또한 주실마을은 안동문화권에 속해 있으면서도 당시의 성리학적 사상을 가장 먼저 변화시킨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 지역에서 교회가 가장먼저 들어선 곳도 주실마을 이고 1900년대 초 마을전체가 단발을 시행 했을 뿐 아니라 영흥학교라는 근대학교를 세워 신교육에 압장 서고 1911년 노비를 해방하는 등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급진적 변화를 주도적으로 받아 들인 곳이다. 설명을 듣고 나니 청록파시인 조지훈이 왜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랐는지 이해가 된다. 문학에 대해서는 잘 아는바가 없지만 비에 젖은 주실마을 뒤돌아 나오는데 저 멀리 보이는 조지훈 문학관이 더 멎 져 보였다.  

[주실마을 웹버전 사진더보기]


여행스케치 당간 systo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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