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어왓츄리드' 서점이 만들어지기까지.
All things must pass
All things must pass away
해는 아침 내내 떠오르지 않고,
소나기도 하루 종일 내리지 않을 거야.
노을도 저녁 내내 계속되지 않고,
저 구름들도 금방 다 지나갈 거야.
언제나 지금처럼 슬프지는 않을 거야.
나는 나의 길을 가며, 또 다른 날들을 마주할 거야.
모든 것은 지나기 마련이야.
모든 것은 지나가게 되어있어.
어느 날, 정말 우연히 해방촌을 거닐다가 'All things must pass away'라는 구절이 반복되는 음악이 흘러나오는 작은 LP가게에 들어가 그 음악의 앨범 자켓 사진을 찾아봤다.
긴 머리의 남자를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네 명의 난쟁이가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이 사진을 보고 나서야 이 음악과 가수를 이해할 수 있었다.
바로, 비틀즈의 멤버였던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 1943~2001)이 비틀즈가 해체되고, 처음으로 낸 앨범이었다.
나는 비틀즈 세대가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음악에 크게 공감하는 것은 아니지만 '비틀즈의 철학자'로 불렸던 그가 화려했던 비틀즈를 벗어나 '모든 것은 지나간다.'라는 앨범을 냈다는 것 자체에 왠지 모를 큰 울림이 있었다. 저 네 명 중 한 명도 과거의 자신을 상징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이 사진을 누가 찍었는지 찾아봤는데, 밥 딜런(Bob Dylan)의 공식 사진작가였던 '배리 파인스타인(Barry Feinstein, 1931~2011)'이었다.
그가 활동하던 당시 미국은 혼란의 시기였다. 달나라에 사람을 보냈고,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하고, 베트남 전쟁과 오일쇼크도 일어났다.
반전운동을 비롯해 여성과 인종차별에 관한 시위가 곳곳에서 일어났고, 반 기득권, 반 정부에 대한 저항정신은 음악을 비롯해 다양한 분야에서 표출됐다.
1960년대 중반, 수많은 젊은이들이 샌프란시스코의 헤이트 애쉬버리(Haight Ashbury) 지역에 모여들기 시작했고, 사진작가인 '배리 파인스타인'도 당시 이 지역 일대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아티스트들과 청년들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You are what you eat'이다.
새로운 변화를 원하는 그들이 만나는 사람, 그들이 듣는 음악과 읽는 시 등 당대의 문화에 관한 필모그래피였다.
You are what you read(유어왓츄리드) 서점의 모티브는 여기서 왔다.
2015년 초.
우리는 의식주(衣食住)를 중심으로 다양한 삶의 공간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는데, 험난한 세상 속에서 새로운 변화를 위해 어은동이란 지역에 모여든 친구들에게 '의(衣)'는 우리의 '몸'에 입는다기보다는, 우리의 '머리와 가슴'에 입히는 공간으로써 작은 '서점'을 만들기로 했다.
다행히 책이 좋아 서지학(책을 대상으로 그 형태와 재료, 용도, 내용 변천 등을 과학적이며 실증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으로 최근에는 문헌정보학이나 기록관리학으로 확장)을 전공하고, 문학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친구가 서점의 대표가 되었고, 나를 비롯해 일본 문학을 번역하는 친구와 지금은 그림을 그리는 사진작가 등 독특한 자신만의 취향을 가진 이들이 책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함께 시작할 수 있었다.
각자가 자신의 고유한 시선을 가지고 있는 아이텐디티를 고민하다가 생각해낸 것은 바로 '모노클'이었다.
보통 해외의 유명한 잡지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모노클(Monocle)의 원래 뜻은 '단안경'이다. 단안경은 테가 없이 알이 '하나'뿐인 안경이기 때문에 '1인칭 시점'을 더 극적으로 나타내는 것 같기도 했고, 한쪽 눈으로만 보기 때문에 오래 착용하고 무언가를 읽기는 어려운 불완전한 특성도 가지고 있다.
혼자만의 시선이란 그런 것이었다.
'모노클'은 개개인의 고유한 관점을 존중하지만, 혼자서는 불완전하기 때문에 서로가 함께하는 커뮤니티 북스토어를 지향하는 우리에게 어울릴만한 아이덴티티였다.
우리 공간의 반은 책을 파는 서점이었고, 반은 책을 서로 공유하는 공유도서관으로 만들었다. 공유도서관의 책장 한 칸을 사람들에게 분양하고 본인이 책을 가져다 놓은 만큼, 다른 사람의 책을 함께 볼 수 있었다. 이는 이전에 첫 창업을 했을 때, 책장을 사물함처럼 분양해서 사람들이 보다 이 공간에 자주 오도록 했던 것에서 착안한 것이었다.
생각보다 예산이 부족해서 최대한 효율적으로 디자인하는 게 중요했는데, 다른 요소들을 최대한 배제하고 서점이라는 아이덴티티에 맞게 '책장으로만 디자인한다.'가 이 공간의 컨셉이었다.
오래된 건물이어서 제대로 도면이 안 남아있었기 때문에, 스마트폰 증강현실 어플로 현장 도면을 스캔하고 크고 작은 13개의 책장을 오픈소스 툴로 디자인했다. 서점 공간의 책장은 책을 옆으로 꽂지 않고, 책의 전면이 보이도록 디자인했다.
아무래도 서점이다 보니 원목이 그대로 살아있는 좋은 나무로 하면 좋았겠지만, 예산 문제로 MDF로 전체 책장을 제작할 수밖에 없었고, MDF 특유의 느낌을 지우면서 책의 (하얀) 페이지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내부를 어두운 계열로 분체도장했다.
유동인구가 별로 없고, 차가 많이 다니는 큰 길가였기 때문에 파사드에 에너지를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차를 타고 빠르게 지나가는 와중에 시선을 끌어야 했기 때문에 건물 외벽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 나도록 미송으로 전체를 마감 처리하고, 클래식한 느낌이 나되 과하지 않은 몰딩으로 장식했다.
내부의 책장과 비슷한 어두운 톤으로 안과 밖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밤에 조명이 들어오면 안의 전체적인 공간과 함께 책이 먼저 눈에 띄도록 했다.
샌프란시스코의 헤이트 애쉬버리(Haight Ashbury)를 배경으로 한 '배리 파인스타인'의 다큐멘터리 'You are what you eat'의 한 장면에 나올 것 같은 느낌을 살려보려고 노력했다. 파사드의 간판 글씨는 거울처럼 반사하는 소재를 사용해서 밤에 차가 지나갈 때, 차의 라이트를 따라 글씨에 빛이 반사되도록 했다.
생각보다 책이 많이 필요해서 집에 있는 대부분의 책을 가져다 놨고...
아끼는 LP도 가져다 놓았다.
우리에겐 Daft Funk나 The XX 가 비틀즈나 밥 딜런 같은 느낌이지 않을까.
가구도 설치하고,
특히, 책 패키징에 공을 많이 들였다.
'You are what you read'라는 이름에 걸맞는 책을 골라 선물하는 사람들을 위해, 정성스럽게 포장하고 실링 왁스를 녹여 인장을 붙였다. 매번 포장하는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그만큼 시간과 정성을 들였다.
아래는 서점 주인장이 책 하나를 포장하는 과정을 타임랩스로 촬영한 장면.
물론, 만드는 것과 운영하는 것은 별개이다.
그래도 유어왓츄리드(You are what you read)의 대표는 본인의 스타일대로 느리지만 잔잔하게 서점을 운영해 나갔다.
그중에서도 특히 '커뮤니티 북스토어'답게 다양한 커뮤니티를 만들어 나갔는데,
한 달에 한 번씩 자기가 읽은 책들은 다른 사람과 함께 공유하는 '책정산'
같이 모이되, 함께 묵묵히 각자의 책을 읽는 '묵독모임'
책을 직접 스스로 만들어보는 '북바인딩 클래스' 등 매니아틱한 만남들이 일어났다.
여기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서점 이름과 동일한 독립출판 매거진을 제작하기도 하고,
때로는, 서점 대표의 안목으로 큐레이션한 다양한 분야의 작가와 출판 관계자를 섭외해서 작지만 밀도 있는 이벤트를 열기도 했다.
최근에는 우리 서점에 대한 고민을 나누다가,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예지와 함께 셋이서 여성 작가들의 책을 소개하는 북서브스크립션을 함께 기획하기도 했다.
우리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엽서를 만들기도 하고,
'유어왓츄리드'의 캐치프레이즈인 괴테의 문장이 담긴, 에코백과 유리잔을 만들기도 했다.
1894년, 알베르 로비다가 『책의 종말』을 통해 책이 없어질 것이라 이야기한 지 100년이 훌쩍 넘었다.
라디오가 나오고 텔레비전이 나오고 아이패드가 나올 때마다 세상은 종이가 없어질 것이라 이야기했지만,
요즘의 출판시장과 갑자기 많아지는 작은 서점들을 보면 오히려 요즘이 더 종이와 책을 접할 기회가 많아진 것 같기도 하다. 나 또한 예전보다 요즘 더 책에게서 강한 애착감을 느끼고 있기도 하다.
이 흐름 속에서 '유어왓츄리드'는 조용히 고유한 색깔을 가지며 운영해왔다.
이런 와중에 어떤 것을 읽을 것인가가 늘 숙제다.
당신이 읽는 것이 곧 당신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