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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영환 Aug 14. 2018

① 첫 창업

이름 없는 공간, 노네임 카페

올해로 처음 창업한 지 10년이 되었습니다.

소소한 삶이지만, 저를 돌아보고... 

저와 비슷한 실험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조그만 단서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몇 가지 이야기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2008년, 스물셋의 만추.


군대를 전역하고 복학을 해보니, 소위 ‘스펙(spec)‘이라고 불리는 사회적 강박증이 대학을 뒤덮기 시작했다. 1학년 때만 하더라도 얼굴도 모르는 선배가 찾아와 취업했다고 술을 한잔 사줬던 기억이 있었는데, 군대에 다녀온 이후로는 단 한 번도 그럴 일이 없었다. 


선배들의 근황을 점점 알 수 없게 되면서 취업문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체감하던 찰나였고, 신입생들은 대학 입학식이 끝나자마자 토익학원에 등록하러 갔다. 모두가 힘들어지기 시작하는 헬조선의 초입에서 대학생들 사이에서 안부를 묻지 않는 것이 예의가 되던 시기에 나는 눈치 없이 친구들에게 ‘너는 꿈이 뭐야?‘ , ‘너는 어떤 일이 하고 싶어?‘라는 시대착오적이고, 가장 지루한 질문을 하고 다녔다. 


그 와중에 이 질문에 답하는 건, 오랜 우정을 공유한 친구뿐이었고, 이 친구도 변화하는 대학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방황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제 갓 군대를 전역한 꿈 많은 친구들이었지만, 꿈보단 스펙이 자리 잡은 환경에서 그저 이방인일 뿐이었다.


도서관에서 ‘모두가 하기 때문에 하고 있었던’ 의미 없는 공부를 하다가 지친 우리는 자판기 앞에서 결국 이 모든 걸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아무도 몰랐고, 주변 친구들은 대부분 자소서를 30개 이상씩 기계적으로 쓰고 있었기에 우리의 고민은 탁상공론인 것 같아 날마다 불안감에 휩싸여야만 했다.

방황이 계속되던 와중에,  수십 개의 회사에 지원을 함에도 불구하고 모두 다 떨어지는 친구들이 허다했고, 그 정도면 누구나 우울증을 겪을만했다.


부모님, 선생님 말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면 뭐라도 될 줄 알았는데,
우리가 맞닥드린 현실에서는 모두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다.
사회에 나가고자 수십 번 넘게 문을 두드려봤지만,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는 경험을 반복하면서
우리가 가지고 있던 에고(ego)는 과잉이었다는 것을 서로가 인지하기 시작했고,
모두의 자존감이 상실되어 가고 있었다.


꿈을 찾아 나서는 친구들은 불안해했고, 사회에 나가고자 하는 친구들은 우울해했다.

우리의 불안함과 그들의 우울함이 섞여 대학이라는 공간은 좀비들이 사는 세상 같았다.

어디로 가야 할지는 모르지만, 다들 탈출하고 싶어 했다.

결국, 우리는 환경을 바꾸는 게 답이라고 생각했다.

분명 우리와 같은 고민을 하는 친구들이 있을 것이고, 이 친구들을 ‘다른 공간‘에 모아보자. 자기 고민을 하는 청춘들을 위한 ‘집단지성의 공간’을 창업하기로 의기투합했다.
하지만 역시 아무것도 몰랐다.
교수님들을 찾아가 자문을 구했지만, 아무런 공감도 받지 못했다. 청년창업이라는 단어가 생소한 시기였다.


결국, 우리를 인도해준 것은 유튜브였다.
공간을 임대하는 방법부터 사업자등록, 디자인과 시공 및 허가 등의 모든 것을 유튜브로 통해 배웠다. 유튜브에는 벽돌 쌓는 법, 페인트칠 하는 법, 조명 연결하는 방법 등 없는 것이 없었다. 전 세계의 능력자들을 보며 용기를 얻으면서, 겁도 없이 수천만 원의 빚까지 졌다.
그래도 자금이 모자라 다른 곳에서 알바를 하며 돈을 벌었고, 밤에는 신문배달까지 해야 했다.
우리의 무모한 용기와 그런 우리를 측은하게 생각하는 주변의 도움으로 우여곡절 끝에 40평 남짓한 공간을 완성했다.

사업자등록을 신청하기로 한 마지막 날까지 우리는 결국 이름을 짓지 못했다.
밤새 토론을 거듭하다가 그냥 ‘이름 없이 가자!’라고 결론을 내리고 다음날 세무서로 찾아갔고, 담당자의 “사업장 이름이 머에요?”라는 질문에 “이름 없는 공간이요.”라는 말장난 같은 대화로 사업자 신청을 했다.  
우리는 새로운 복합문화공간을 표방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카페라고 부르면서 ‘이름 없는 카페’가 되었고, 나중에는 ‘노네임 카페‘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초창기, 공간 컨셉


몇일전, 정말 오랜만에 만난 후배가 이걸 꺼내 보여줬다. 노네임 카페의 메뉴판인데 본인이 몰래 소장해두었다는 것이다.
당시, 내가 사진을 뽑아오면 이렇게 하나하나 친구들이 직접 글씨를 써서 만들었다.



펼쳐보면...



메뉴판인데 목차가 있다... 공간을 만든 배경은 위의 글로 대신하고, 아래부터가 '이 공간의 탄생 실화' 이다..
첫공사. 왜 철거까지 우리가 직접했을까...
실수로 전기까지 다 철거해서 몇일간 어둠속에서 일을 해야했다. 
나는 노동자'천'이라고 불렸다.
조적과 에폭시 시공방법을 모두 유튜브에서 배웠다.
왼쪽엔 우리가 신문배달 하던 오토바이, 오른쪽엔 커피볶는 강마담. 이 친구는 '노네임'을 만든 경험과 노하우로 현재 신세계에서 스타벅스를 담당하고 있다.
오른쪽 위는 처음 만든 가구. 그리고 아래 사진은 사실 취한거... 공사를 끝내고 밤마다 술을 마시며 미래를 고민했다.
부모님 몰래, 집을 빼고 보증금까지 다 투자했었다.
오른쪽에 책꽂이를 요즘의 공유서가 처럼 사람들에게 도서관 사물함 배정하듯이 하나하나 분양했었다. 
계단에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이름과 사진을 걸어놓았다. 오른쪽은 전역 기념으로 누나가 사준 나이키 포스인데 두달만에 저렇게 되어버림.


뒷면에는 넋두리를 쓰도록 해서 나중에 독립출판을 하려고 했는데... 
그정도의 퀄리티가 안나와 책으로 만들진 못했다. 그래도 몇가지를 보면...


다들 꿈도 많고, 고민도 많을 시기였나 보다...
역시 ,사랑고민들이 제일 많다... 왼쪽 대댓글이 압권....




우리 공간의 쿠폰. 올때마다 나뭇잎을 찍어주면...


나무 완성



스물셋의 나. 커피를 내릴 때, 앞에 앉아 있던 친구가 영화 'Once' 의 OST를 연주해줬던 걸로 기억한다.



이름없는 공간, 노네임 카페.







[벌써 10년] ⑤ 셋이서 만든 '락 페스티벌'

[벌써 10년] ④ 방황할 시간과 실험할 무대

[벌써 10년] ③ Think Globally, Act Locally

[벌써 10년] ② 이름없는 공간에 모인 사람들

[벌써 10년] ① 첫 창업, 이름 없는 공간. 노네임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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