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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영환 Aug 19. 2018

③ Think Globally, Act Locally

TEDx를 함께 하게 된 간단한 소회

모든 걸 파괴하는 꼬마에서, 모두를 모으는 청년으로.

어릴 때의 나는 파괴꾼이었다.
부모님께서 장난감을 사주면 매번 그 장난감을 하루가 채 되지 않아 부셔버리곤 했다. 

그 내부구조와 작동원리가 궁금하다는 이유였다. 

(좌) 저 아저씨의 비싼 헤드폰도 결국 내가 부숴 버렸고, (우) 어린시절 사진이 별로 없는 것도 내가 다 카메라를 부숴 먹어서라고..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부모님께서는 완제품 장난감이 아닌, 레고(LEGO) 같은 조립식 장난감을 주로 사주셨고 이 덕분에 9살 때부터 7년 동안 청소년 기계과학창작 경진대회에 출전했다. 중학교에 입학하고서는 대륙붕 탐사 시추로봇을 만들어 과학기술부 장관의 표창을 받기도 했다. 


게다가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인터넷을 시작했다. 

당시에는 전화선을 연결하는 모뎀을 통해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었는데, 한 번은 친구와 함께 해킹 프로그램을 돌리다 처벌받을 뻔도 했고, 당시 돈으로 전화요금이 98만 원이나 나와서 엄마한테 엄청나게 혼났던 기억이 아주 강렬하게 남아있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내가 디지털 네이티브의 첫 세대에 속한다는 것이다. 

나는 늘 새로운 기술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고, 그 기술을 사용함에 있어서도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고, 새로운 것들이 나와도 크게 대수롭지도 않았다.

  
그런 나에게 새로운 맥락으로 다가온 것이 바로, 트위터였다. 
이전까지는 내가 주로 기술자체에 집중했더라면, 처음으로 기술이 이어주는 '관계'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트위터를 통해서 우리 공간에 다양한 사람들이 많아지기도 했지만, 정말 나를 두근거리게 했던 것은 세계 어디에 있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디에 가는지를 160 자라는 세상에서 알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제는 SNS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트위터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고, 그리고 그것을 당시 운영하던 오프라인 비즈니스와 연결시켜 활용하는 사람도 드물었기 때문에 나는 스물다섯 살의 나이에 ‘SNS 마케팅’이라는 주제로 처음으로 대학으로 강의를 다닐 기회도 갖게 되었고, 몇몇 매거진이나 기사에 등장하기도 했다. 마치, 요즘 인스타그램의 인플루언서와 비슷한 느낌일 것이다.


내가 처음으로 팔로우한 사람은 ‘빌 게이츠’였다.
심지어 종종 빌 게이츠에게 메세지를 보내곤 했는데, 물론 답장은 없었다.
(그러나 몇 년 뒤 실제로 빌&메린다 게이츠 재단의 지원으로 TED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러던 어느 날 빌 게이츠가 TED에서 발표를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TED가 뭐지?’ 

그때 처음으로 TED를 알게 되었고, 당시 미국에서 TED 컨텐츠를 한국어로 번역하던 형과 트위터로 연락하면서 TED에서 TEDx라이센스를 통해 전 세계에서 TED와 같은 지식공유 이벤트가 열릴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라는 정보를 알게 되었다. 

그 뒤, 한국에서도 TEDxSeoul 이벤트가 성공적으로 개최되었고, 오거나이저 중에서 매번 대전에서부터 올라가 헌신하던 미국인 친구(심지어 나중에  내 친구와 결혼함)를 소개받게 되었다. 그 친구와 함께 우리 지역에도 전 세계에 퍼뜨릴 만한 가치 있는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이 많을 테니 함께 대전에서도 TEDx를 개최하기로 의기투합했다. 


다음날,  우리는 ‘노네임’에서 만났다. 

내가 그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고 하자, 그 친구는 엄청 놀라고 또 기뻐하며 이곳을 우리의 헤드쿼터로 만들자고 했다. 나는 흔쾌히 동의했다. 그렇게 노네임은 낮에는 카페였고, 밤에는 우리들의 코워킹 스페이스가 되었다. 


TED에 라이센스 신청하던 순간과 첫 TEDx를 함께 준비하는 친구들  

우리는 각자 본업이 있었고, 라이센스 및 가이드라인이 완벽하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에 있는 사람들과 소통을 해야 했기 때문에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첫 번째로 TEDxDaejeon의 라이센스를 받았고, 그 뒤로 TEDxKAIST와  TEDxDaedeokValley의 라이센스를 받았다. 

TED의 지원으로 Basecamp(일종의 Slack 비슷한 같은 툴)라는 서비스를 통해 온라인으로 협업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나갔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친구들과 함께 일하는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TED 이벤트를 개최하기 위해서는 웹사이트를 만드는 프로그래밍,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하는 기술, 마케팅, 통역, 회계 등 다양한 능력이 필요했다. 우리는 팀을 모으기 시작했다. 지난 화에서 소개한 '객식구'들 덕분에 훌륭하고 재미있는 친구들을 아주 쉽게 만날 수 있었다. 트위터를 통해서도 정말 보석 같은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었다. 

TED가 추구하는 가치인 ‘퍼뜨릴 가치가 있는 아이디어(Ideas worth spreading)’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집단지성을 모아 하나하나 준비해 나갔다. 


왜 TEDx를 하는가


우리는 5년 동안 41번의 크고 작은 TEDx이벤트를 개최했고 약 3,000여 명의 사람들을 만났다. 

오거나이저뿐만 아니라 수많은 자원봉사자들과 지역사회의 도움으로 TEDx 커뮤니티는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 나갔다. 가까이 있지만 알지 못했던 우리나라의 전설 같은 과학자 분들은 물론, 대전시장님에서부터 성심당 빵집 대표님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한 분들이 연사로 기꺼이 참여해주셨고 우리 지역을 다시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TEDx Daejeon, KAIST, DaedeokValley 오거나이저들
무엇보다도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의미 있는 일을 만들어나가는
그 순간순간들이 나에겐 정말 행복한 경험이었다.
함께 일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배웠고,
돈보다 중요한 게 무엇인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TEDx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TED.com 에 소개된 TEDx Daejeon 팀

몇 년 뒤, 정말 운 좋게 TED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위해 노력하는 전 세계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을 만나서 느낀 것은 결국,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지금 내가 발 딛고 있는 이 자리에서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지역적인 것의 합이 글로벌한 것이다. 전세계인들이 모여 함께 나눈 것도 결국은 모두가 속해있는 각자의 지역에 관한 이야기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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