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취업준비'를 한다는 말이 쑥쓰럽고 어색한가
월요일 아침. 평일에는 알람을 6:15분에 맞춰놓고 일어난다. 물론 그렇다고 막 일찍 일어나서 막 명상을 하고 운동을 가고 하는 그런 건 아니고^^ 적당히 밍기적대다가 일어나서 씻고 이불을 정리하고 옷장 앞에 서서 시리에게 오늘 날씨가 어떤지 물어보고, 그리고 뉴스를 짧게 듣고 버스시간을 확인하고 나오면~ 음~ 7시 반 정도 되는 것 같다. 버스를 타이밍 좋게 잘 타고 지금 다니고 있는 공유오피스로 도착하면 8시 정도.
오전 8시 전과 후를 기점으로 길이 막히느냐 막히지 않느냐 / 버스가 복잡하냐 한산하냐가 갈린다. 그리고 공유 오피스는 핫데스크(지정석이 아님)라서 좋은 자리는 좀 부지런을 떨어야 잡을 수 있더라. 좋은 자리라 함은 모니터를 사용할 수 있는 좌석인데, 랩탑만 가지고 있는지라 모니터가 하나 붙어 있으면 디자인작업을 할 때에는 확실히 수월하다. (아 물론 다른 작업에도 많이 수월하겠..) 그리고 오전시간이 오후시간보다는 집중하기도 쉽고 작업에 효율도 잘 붙고, 여러모로 이것저것 알람도 잘 오지 않거나 적게 오는 시간대라 방해받지 않고 이렇게(...... 글 쓰기) 좋습니다 네...ㅋㅋㅋㅋㅋㅋ 마침 근처에 좋은 카페를 발견했는데 그 곳이 평일에는 8시에 문을 열어 주어서, 이렇게 일찍 나오면 커피를 사 마시는 것으로 보상을 해 주는 편이다. 오피스에 커피가 있지만 확실히 사마시는 커피만 못하다. 물론 사마시니만 못한 카페는 안간다(^^;)
요즘은 주7일 공유오피스에 나오고 있다. 이곳이 24/7 오픈해 줘서 그런것도 있지만 사실 그 외에 다른 걸 크게 할 게 없기도 해서다(...) 하루가 아주 깔끔하게 나뉜다. 일어나서, 오피스에 오고, 저녁시간에 나와서, 운동을 가고, 잔다(..) 아침에 8-9시에는 오피스에 내 몸이 있고, 5-6시 즈음에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7-8시에는 내 몸이 짐에 있고, 10-11시에는 누워 있다(네?) 아주 가끔씩 약속이 잡히기는 하지만 그것도 2주에 한번 정도. 더 잡고자 한다면 잡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아무튼 '그런' 시기는 아니라고 생각해서 더 연락을 하지 않고, 더 만날 사건(?)을 만들려고도 하지 않고 있다.
'취업준비' 중이기 때문이다.
살면서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물론 올해 초에 한국에 들어왔을 때만 하더라도 한국에서 이렇게 지낼 줄 생각도 하지 못했었고, 내가 친구들과 무언가를 해보겠다는 결심을 하리라는 생각도 못 했었고, 만나고 있던 사람과 헤어지리라는 생각도 못 했었다. 그리고 내가 지금 원하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이렇게 길게 가질 수 있을 줄도 몰랐다. 그 결과가 한국에서 취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질 줄도 몰랐다. 내 인생이야 늘 놀라움의 연속이었긴 하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통제가 가능한 선이었던 것 같은데 올해는 유달리 그 놀라움의 난이도가 높다. (^^;)
원래 도전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무섭거나 피하는 것들을 정면으로 돌파하면서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인생의 1/3 정도를 한국 밖에서 생활했고, 그 시간 동안 얻은 것은 나 스스로를 중심으로 단단하게 잡을 줄 아는 삶의 방식이었다. 그래서 내가 한국에서 일할 생각을 가졌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내가 피하는 것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행위(?)다. 고생길이 훤히 열렸다는 생각을 하지만, 오랜 시간 고민해서 나온 결론이기도 하다. 이 시기에 그런 고생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인생 전반에 쌓인 데이터를 가지고 분석해서 나온 결과가 이거라면, 내 인생이 나를 어디로 어떻게 이끌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건 분명히 좋은 방향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단지 지금의 내 status 가 어색하다. 차라리 좀 절실하기라도 했다면 이렇게 시간을 느긋하게 보내지 않고 빠르게 포폴을 쳐내서 무언가를 하고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작년에 열심히 일해놓은 게 있기도 하고, 또 돈을 굴리고 있는 게 마이너스는 아니어서(...). 감사하게도 부모님의 집에서 생활하고 있기도 하고 해서 크게 돈이 나갈 일도 없고. 플러스로 워낙에 알뜰살뜰 잘 챙겨 사는 사람이라. 정말 여러모로 여유를 부릴 이유가 있고, 그게 나를 '취업준비' 중인 상태를 지속시키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을 만나고자 할 때에도 말이 길어지는 게 싫고 둘러대는 게 싫다. 스스로가 잘나서 겸손해서 말이 길어지는 건 괜찮은데 뭔가 구구절절 이래서 제가 지금 (백수예요^^;) 이라고 말하는 것도 싫고, 내가 현재 상태를 상태 그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도 살짝 속상하고 그렇다(..) 당당하면 무엇을 해도 당당하다. 왜 나는 나에게 이런 위축되어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까.
혼자서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지니 스스로의 사고에 갇히고 또 빠진다. 포트폴리오를 만들면서도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이 포트폴리오는 얼마나 솔직하고, 얼마나 나의 실력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한다. 나는 지금 허풍을 떠는 것은 아닐까? 할 줄 아는 것 그 이상의 것들을 할 수 있다고 보여주고 있지는 않은지. 혹은 내가 나를 너무 낮추고자 하는 것은 아닌지. 난 내가 이정도가 된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건 내가 나를 과대/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지금 하는 말이 남을 설득시킬 수 있을 정도의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지.
내가 흥미를 가지고 있고 재미있어 보이는 회사들을 보면 내가 디자인을 더 곁눈질로 배울 수 있는 사람이 없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같은 직업군의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혹은 그렇기 때문에 내가 더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동시에 한다. 한국에서 일하는 방식은 잘 모르기도 하고, 여러 가지 질서나, 한국에서 당연히 아는 거 아니야? 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내가 모르고 또 모를 수 있기 때문에 그런걸 곁눈질로라도 배울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곳에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나를 믿어 의심치 않는 건 일을 잘 하고, 사람들을 보며 좋은 건 습득하고 좋지 않는 건 거울삼아 하지 않으려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라, 좋은 사람들이 있으면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 그리고 동시에 '한국에서 일하는 방식' 을 몰라도 괜찮은 곳에 가서 일을 하면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한다.
선뜻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서 내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아직 준비가 덜 되었는데 섣부르게 내미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다. (UI/UX) 디자인 분야는 코로나로 수혜를 받은 분야 중 하나이고, 영국에서도 락다운으로 각종 산업군의 마이너스와 도산행렬을 보면서도 나는 일하느라 1년 동안 휴가 딱 3일 썼다... 한국의 경우에도 취업난인가? 정말로?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사방팔방 상시 필요한 건 일을 잘 하는 디자이너고 모든 회사에서 늘 뽑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더 급한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이 상태를 빨리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인생에서 오랜만에 혹은 처음으로 길게 가져보는 여유를 즐기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 '여유'를 즐기는 방식이 주 7일 오피스-운동을 가는 생활의 반복이라면 음? 뭔가 내가 생각했던 그런 '여유'는 아닌 것 같은데 싶으면서도.
사람들을 만나고 또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면서도 스스로에 대해서 이야기가 길어지는 것이 싫어서 만나지 않고 있는 나를 보면서 묘한 마음이 든다. 하루는 참 빠르게 흘러간다.
내 인생에 이런 시기가 온 것에는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래서 그때 내가 그랬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거라 믿는다. 과거를 되돌아보았을 때 분명히 그랬고 나를 믿고 행동했을 때 남는 후회는 없었다. 당시에는 잘 모를 수 있지만 미래의 나는 결국 왜 그랬는지 알게 되더라. 과거에 그랬으니 분명히 미래에도 그럴 것이라 의심치 않는다. 단지 지금의 나는 좀 혼란스러운 시기에 있고, 그리고 언젠가는 이때를 되돌아보며 그때 그랬었지 라는 생각을 할 것 같아서 브런치라는 오픈된 공간에 글을 적어 놓고자 한다.
그래도 지금은 방향이라도 있다. 개인 블로그에는 적어놓았던 것 같지만 몇 개월 전만 하더라도 정말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서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그때는 정말 너무 막막했고 인생이 나에게 왜 이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은 안개가 걷힌 건 아니지만 그래도 따라갈 수 있는 도로를 발견한 기분이다. 앞이 보이는 건 아니어도 발 밑을 보고 길은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따라갈 정도의 수준이다. 이 정도면 괜찮다. 더 힘들었던 때가 있었고 그 시기는 지났다.
안개는 걷힐 일만 남았다 믿는다. 이번 한 주도 잘 걸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