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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신경쇠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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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미아 Jul 30. 2023

악귀가 나보고 숨 쉬지 말래요


나는 숨이 얕다.


요즘 김태리가 열연한 <악귀>를 재밌게 시청했는데 말이다.


내 안에도 악귀가 사는 것 같다.


지난 생에 과호흡으로 죽어,

원한이 사무치게 맺힌 녀석인 것 같다.

 



오늘 수업 니 기대보다 못 미쳤잖아. 그런데 감히 숨을 쉬어?


너 지금 현관에 분리수거 쌓여 있잖아. 그런데 니가 지금 감히 숨을 쉬어?


너네 집 식물들 시들시들하잖아. 물 줘야지, 어디서 숨을 쉬어?


전기비가 이번 달에 얼마가 나올 줄 알고 숨을 쉬어?

에어컨을 매일 9시간 돌리고, 에너지 효율 5등급 빨 건조기 네 시간씩 돌리고, 매일 밤 제습기, 선풍기 밤새 돌리고, 얼마 전엔 식기 세척기까지 사서 매일 돌리는데, 니가 뭘 믿고 숨을 쉬어?


너 지금 나가면 지각이야. 어디서 감히 숨을 쉬어?


지금 니가 끓이는 라면에 계란 껍데기 들어간 것 같아. 그러고도 숨을 쉬어?


저 리모컨 불량이잖아. 어디서 감히 숨을 쉬어?


그래, 숨 한 번 쉬어 봐, 어디.


환풍구에서 올라오는 아랫집 담배 냄새, 아직 버리지 않은 음식물 쓰레기 냄새, 화장실 냄새. 어때?


황사, 미세 먼지는 어때? 저 낯선 이들의 날숨은?


니가 정말 숨을 쉬겠다고? 괜찮겠어?



이 놈의 악귀에 사로잡혀 나는 명치끝도 도달하지 못할 짧은 숨을 빠르게 쉬며 살아 왔다.



악귀야. 악귀야.

내가 어떻게 너를 물리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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