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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go May 19. 2024

어쩌면 나는 최선을 다했던 것 같아

끝내 남겨둔 몇 권의 전공책

절반 정도 정리한 것 같다.

버리고 중고로 팔고 하다보니 두 책장을 가득 채우던 책들이 이제는 셀 수 있을 정도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오늘은 폐기 처분할 책들을 버리는 날.


가끔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양극성 장애 환자가 된 이후의 삶이 너무나 달라서,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면 시궁창 그 자체라서 찬란했던 과거는 어쩌면 환상에 불과하고 현재의 모습이 진짜라고.


그러다 어제 마침내 전공책을 정리할 때가 왔다.

심리학 개론, 이상심리학, 임상심리학... 

이름도 써놓은데다가 필기와 밑줄 그은 부분이 너무 많아서 중고로 내놓을 수 없기에 결국 폐기할 수밖에 없는 책들.

이름이 적힌 페이지를 찢으면서 무심코 펼쳐본 책에는 4년 동안 내가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빼곡히 적혀있었다.


어쩌면 나는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단순히 내 기억 속의 모습이 아니라 전공책이 증명해주고 있는 사실이 찬란했던 과거가 실제임을 말해주었다.

서글프면서도 안도감이 들었다.


원래는 다 버리려고 했지만 정리하면서 마음이 바뀌었다.

내 과거를 담은 전공책을 다 버리는 건 그 때의 '나'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으니까.

그래서 내가 제일 열심히 공부한 흔적이 남은 책들과 교수님이 주셨던 책은 남겨두었다.

현대이상심리학, 행동수정, 인간의 학습, 애착과 심리치료, 특수아 상담.

찬란했던 시간은 과거가 되었고 그때의 꿈은 한낱 먼지로 사라졌지만 내가 치열하게 살았던 시간은 남아있다.

뭐, 그렇다고 해서 과거에 그랬으니 앞으로도 잘 할 거다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아주 그냥 위안이랄까. 

괜히 뿌듯해지는 그런 거.

별 건 아닌데 별 거인 그런 게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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