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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범근 May 31. 2020

온라인 개학과 엄마의 IT 공부

지금까지 이런 개학은 없었다

'범근아, 이리 좀 와봐!' 요즘 퇴근하자마자 가장 먼저 듣는 말이다. 엄마가 컴퓨터 앞에서 부르시는 소리다.
'영상 내보내기 했는데 검은 화면만 나온다 얘 이거 왜 이러니' 'PPT 내가 만들었지만 너무 못생겼어 어떻게 해봐'
'화면 전환하는데 깨지네.. 난 이런거 안넣었는데...'
뭐 요런 대화다.

엄마는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시다. 요즘 머릿속엔 '온라인 강의 어떻게 잘 찍지'밖에 없다. 하루 종일 PPT 만들고, 녹음 대본 쓰고, 거의 유튜버다.

다 처음 써보는 프로그램이다. 워낙 막히는 게 많을 수밖에 없다. (영상 편집은 물론이고, 구글 드라이브도 한번도 안 써보셨다.)  

내가 전담 도우미 역할을 하고 있다. '학교에는 물어볼 사람 없어요?' 하고 물었다. '야 우리 정보부장님이 59세야. 나보다 잘하는 사람 아무도 없어. 아들이 IT기자인데 이럴 때 덕좀 보자' 라고 하셨다.

재밌는 건 2주간 고생하면서 엄마의 IT 활용, 영상제작 스킬이 눈부시게 늘고 있다는 점. 처음엔 '여러분~ 문학쌤 홍진숙입니다~ 하고 녹음하시고, 오그라든다며 괴로워하셨다. 근데 이제는 삼각대, 핀마이크 등 각종 장비까지 갖추고, 나름 능숙해졌다.

PPT도 처음엔 간신히 템플릿만 채우셨다. 이렇게 저렇게 해보라고 피드백을 드리자, 이젠 시원시원하게 이미지도 넣고, gif 이미지도 활용하신다. 브루로 자막 넣는 법, 인코딩하는 법을 차례차례 마스터하시더니, 어제는 PPT 단축키까지 배우셨다.

'엄마 피피티는 정렬만 잘해도 반은 먹고 들어가요' 하면서 Alt+H+G+A로 정렬하는 법을 알려드렸다.


'어머어머!! 너는 어떻게 이런 걸 아니? 신기하다 얘' 바로 카톡을 꺼내서 동료 선생님들한테 알려줘야겠다고 하신다.


음.. 내가 딱히 잘하는 것도 아닌데. 엄마나 다른 선생님에게는 이 정도도 충분히 큰 도전이겠구나 싶었다.

한편으론, 다른 선생님은 그냥 EBS 강의 가져다 쓰는데, 굳이굳이 더 잘 만들겠다고 밤잠을 설치고 계신 엄마를 보며, 욕심은 엄마한테 물려받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 온라인 개학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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