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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범근 Jan 24. 2021

두려움에 인생의 주도권을 뺏기지 않는 방법

멍석 깔아주고 이야기를 들어본다.

1. 어릴 때 저희 가족은 일요일 저녁 개그콘서트를 꼭 챙겨봤습니다. 웃으려고 보는 프로그램이지만, 전 항상 묘한 불안을 느꼈습니다.


이 프로그램이 끝나면, 월요일이 오니까요. 개그 프로그램을 보면서도 맘 놓고 웃기보단 '내일 월요일인데'하며 걱정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일요일 저녁인데, 문득 그런 두려움이 듭니다.


2. 글을 쓰려고 빈 화면을 앞에 둘 때. 수도 없이 반복한 일이지만 매번 두렵습니다. 한 문장 쓰기 시작하면 바로 이런 생각이 들죠.


너 지금 하고 싶은 말이 정리는 돼있어? 그거 쓰면 이렇게 반박할 수 있는데? 그런 후진 글을 어떻게 올려? 갑자기 글 쓸 마음이 싹 사라집니다. 분명히 그런 거 신경 쓰면 절대 못 쓴다는 걸 아는데도요.


3. 회사에서 누군가 툭 한 마디 던진 적이 있습니다. "마음이 편해서 참 좋으시겠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별 것도 아닌 말인데. 혼자 '저 사람 나 싫어하나?라고 한참을 걱정했습니다.


4. 또 퇴근하면서 저녁에 아무 약속이 없는 걸 알고는 '자유 시간이다!' 하고 즐거워하는 대신,  '뭐야, 나 아싸인가?' 하고 괜히 울적해지는 날도 있습니다.


그걸 걱정할 시간에 그냥 자유 시간을 재밌게 보내거나, 아니면 지금이라도 약속을 잡으면 되는데 말이죠.




사람 마음은 참 이상합니다. 누구나 그런 것 같습니다. 이상하고 유치한 두려움과 함께 살아갑니다.


근거도 없는 괜한 불안, 이미 일어난 일인데 되감기 해서 후회하기. 그럴 필요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남 생각 신경 쓰기,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허무하게 생각하기, 별로 중요하지 않은 디테일에 대한 완벽주의 등등...


조건과 상황이 아무리 좋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상황이 좋아지면 또 다른 문제를 찾아내고, 당장 문제가 없으면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상상합니다.


그런 일을 반복해서 겪다 보니 점점 깨닫게 됩니다. 바보 같지만, 이런 두려움은 지극히 정상이라는 걸요. 수렵 채집 시절에 진화한 뇌라 그렇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좀 다른 질문을 고민합니다.


두려움은 늘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두려움 때문에 새로운 일에 도전하지 못하거나, 눈앞에 있는 즐거움을 보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두려움에게 내 인생의 주도권을 뺏기지 않을까?


이 질문에 대해 제게 힌트를 준 3개의 글/영상을 소개합니다.




앨리자베스 길버트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를 쓴 베스트셀러 작가입니다. 솔직히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안 읽어봤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낸 <빅 매직(Big magic)>이라는 책은 읽어봤는데요. 거기에 인상 깊은 구절이 있었습니다.


길버트는 창조적인 인생을 살고 싶으면 '두려움을 위한 자리를 만들어주라'라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는 새로운 도전을 해서 두려움이 클 때마다, 편지를 쓴다고 해요. 책에는 이런 편지 내용이 나와있습니다.


친애하는 두려움에게,
창조성과 나는 여행을 떠나려 해. 아마 너도 따라오겠지. 넌 내 삶에서 네가 매우 중요한 일을 한다고 믿고 있단 걸 알아. 내가 뭔가 흥미로운 일을 하려고 하면, 그 일이 위험하다면서 말리는 게 네 임무인 것 같아. 계속하던 일 해. 네가 꼭 그래야 하겠다면 어쩔 수 없지.
하지만 나도 내 할 일을 할 거야. 열심히 일하고, 집중해야지. 창조성도 자기 일을 할 거야. 걘 나를 자극하고 도전하게 만드는 게 일이거든.
어쨌든 우리가 탈 차는 넓어. 너도 편안히 지내길 바라. 네 의견을 소외시키지는 않을게. 넌 우리의 일부니까.
하지만 이것만은 꼭 기억해. 어떤 길을 갈지는 나와 창조성이 결정해. 우리 지도를 만져서도 안 되고, 돌아가자고 주장할 수도 없고, 차내 온도를 조절할 수도 없어. 배경음악도 안 돼.
가장 중요한 것. 네가 핸들을 잡는 건 절대 금지야.
- 앨리자베스 길버트, <빅 매직>


두려움을 내 안에서 아예 없애버리려고 하면 통하지 않습니다. 길버트는 두려워하는 게 두려움이 하는 일임을 인정해줍니다. 너도 나름 필요한 존재야. 그렇게 말하고 자리를 마련해줍니다.


그렇지만 내가 중요한 일을 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는 절대 끼어들 수 없어. 라고 마음속으로 선을 긋습니다.




앤 라모트의 <쓰기의 감각(Bird by Bird)>은 미국에서 글 쓰는 사람들의 필독서입니다. 앤 라모트는 글을 쓸 때 가장 힘든 건 머릿속에 두려워하는 목소리와 싸우는 거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 목소리 때문에 글이 안 써질 때면 이렇게 해보라고 합니다.


눈을 감으세요. 조용히 기다립니다. 머릿속 목소리가 시작될 때까지요. 그런 다음 그 목소리 중 하나를 따로 떼어냅니다. 그리고 상상해봅니다. 그 목소리는 사람처럼 말하는 쥐에요.
그 쥐의 꼬리를 잡습니다. 유리 항아리에 떨어뜨립니다. 그렇게 내 머릿속에서 징징거리는 모든 목소리를 항아리에 넣어버립니다. 뚜껑을 닫아요. 이 모든 쥐 사람들이 유리를 긁으면서 신경질적인 소리를 내는 것을 바라봅니다.  
이제 이 병에 음량 조절 버튼이 있다고 상상해봅시다. 음량 조절 버튼을 최대로 올려봅니다. 병 속에서 나오는 성난, 죄책감에 찌든, 처절하게 무시당한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다시 음량을 줄여서, 그 쥐들이 저한테 덤벼들려고 하는 모습을 보세요.
이제 그러라고 내버려 둡니다. 그리고 당신의 거지 같은 초안으로 돌아오면 됩니다.


좀 웃기는 상상이지만 그게 포인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유리병 안에 든 쥐가 소리 지른다고 생각하면 왠지 우습잖아요. 두려움을 나와 분리된, 나를 전혀 해하지 못하는 어떤 존재로 의인화해보는 방법입니다.




캠벨 워커라는 아티스트이자 유튜버가 있습니다. 머릿속 부정적인 목소리를 잠재우는 방법이라는 영상에서 재밌는 걸 하는데요.


자기 머릿속에 있는 두려움, 불안을 캐릭터화해서 그림으로 그려보는 겁니다. '인사이드 아웃'이나 '유미의 세포들'과 비슷해요.


캠벨은 7가지 캐릭터로 그렸는데요. 제 머릿속에서도 한 번쯤 들어본 목소리들이라 재밌었습니다. 각 캐릭터의 대사와 비주얼이 매우 잘 어울립니다.


출처: struthless.com


허무주의자 닐리 (Nelly the Nihilist)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은 50억 년 뒤에 사라질 거야. 그럼 애초에 무슨 의미가 있지?"


두려움에 떠는 테리 (Terry the Terrified)

"이건 시간 낭비가 아닐까? 난 지금 이상한 걸 만들고 있어. 앞으로도 내가 잘할 수 없을까 봐 두려워"


애정결핍 니나 (Nina the Needy)

"아무한테도 미움받지 않고 무언가를 만들 순 없을까? 날 절대 싫어하지 말아 줘."


산만한 데이브 (Dave the Distractable)

"이메일을 확인하자! 유튜브를 확인하자! 인스타그램에 누가 라이크를 눌렀을지도 몰라!"


혐오주의자 휴고 (Hugo the Hater)

"예전에 이런 악플 달린 거 생각 안 나? 네가 만드는 건 쓰레기야"


출처: struthless.com


완벽주의자 퍼시 (Percy the Perfectionist)

"사람들은 100% 완벽한 걸 보고 싶어 해"


비교하는 코니 (Conie the Comparer)

"저 훌륭한 사람들이 해놓은 것에 비하면 이건 똥이야. 남들은 이 순간에도 더 잘 나가고 있어"


출처: struthless.com


핵심은 앤 라모트의 말과 같습니다. 자신의 두려움을 의인화해보라는 거죠. 재미있는 얼굴과 목소리를 줍니다.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고, 그리거나 적어봅니다. 구체적으로 표현해보면 그렇게 어둡고 부정적인 생각이, 친근하고 유치하게 느껴집니다.




이런 글과 영상을 보고 한참 후에, 저도 한번 이 방법을 써봤습니다.


얼마 전, 퇴근을 했는데요. 재택근무 중이었기에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시간을 보니 아직 6시 정도였고요. 그날은 바쁜 일이 별로 없어서 일찍 끝났습니다. 저녁에 딱히 약속도 없어서 이제 자유시간이었습니다. 기분이 분명 좋아야겠죠?


그런데 그날은 갑자기 불안해졌습니다. 왠지 모르게 '내가 이렇게 여유로워도 되나? 이렇게 시간이 남아도는 건 내가 게으르다는 증거야. 이래선 안 될 것 같아.'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러다 잠시 이성을 찾고 생각해봤습니다. 내가 왜 불안해하고 있는 걸까? 두렵다고 외치는 이유는 뭘까? 머릿속 목소리를 떼어내 글로 적어봤습니다. 실제로 제 메모장에 적었던 글입니다.


나는 왜 이렇게 여유롭지?
뭐지, 왜 시간이 남지? 이상한데?
다른 사람한테 뒤쳐지고 있는 건 아닐까?
누군가는 지금도 뭔가 열심히 하면서 자기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을 텐데??
내가 일을 너무 적게 해서  성과가 안 나면 어떻게 하지???
으아아고아ㅏ가악-


이 목소리에 저는 '앤드루 세포'라는 이름을 지어줬습니다.


이름은 영화 위플래시의 주인공 앤드루한테 따왔습니다. 앤드루는 소시민적인 사고, 현재에 안주하는 태도를 싫어하는 캐릭터입니다. 항상 탁월함을 추구하고 계속 자신을 밀어붙이죠.


얼굴은 앤드루에 몸통은 유미의 세포에 나오는 세포 캐릭터처럼 생겼다고 상상해봤어요.



그렇게 만들어놓고 얘가 하는 말을 들어보니까, 갑자기 되게 유치해 보였습니다.


아니, 지금 이렇게 걱정한다고 뭐가 되는 것도 아니고. 오늘 열심히 일했으니 쉬는 건 당연한 건데 말이야.

난 잘하고 있어. 일하고 쉴 때도 있어야지. 네가 그렇게 성취에만 집착하다가 영화 결말이 그렇게 된 거 아니야... 지금은 앤드루 세포, 네가 나설 때가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자동으로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직접 해보니 명상과 되게 비슷했습니다. 그 전엔 '내가 괴로운 상태'였다가, 의인화해서 생각해보니 갑자기 '괴로워하는 앤드루 세포'와 '그걸 지켜보는 나'로 바뀌더라고요. 두려움과 내가 분리된 느낌이었습니다.  


머릿속 목소리가 나와 분리되지 않았을 때는, 이상하게도 그 생각에 쉽게 휘둘립니다. 유치한 두려움이지만 그때는 풀 스테레오로 울려 퍼지면서 행동을 마비시키죠.


반대로 머릿속 두려워하는 목소리한테 자리를 줍니다. 캐릭터로 상상해봅니다.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그러면 훨씬 편해집니다. 인생의 주도권을 가져오는데 도움이 됩니다.




여러분의 두려움은 무엇인가요?


그 친구에게 얼굴과 목소리를 주고 말하라고 해보세요. 막상 멍석 깔아주면 잘 못하는 스타일이거든요. 다 들었으면 '응 그렇구나' 대답한 뒤, 다시 내 인생으로 돌아오면 됩니다.



Photo by Blake Cheek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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