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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연말 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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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혜민 Dec 30. 2023

2023년 결산

자아가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자아가 자라났다.

작년 회고를 쓸 때를 생각하면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적을 수 있는 말이 많지 않았던 거 같다. 밝힐 수 없다기보다는 가지런하지 않았다. 아마도 자아가 작아진 채로 조직의 전환기에 정확한 역할을 찾아서 해내는데 집중하고 적응하던 중이었기 때문이지 않았나 싶다.

뉴웨이즈를 시작하고 주변 친구들에게 자아가 없어진 거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싶은지, 무엇을 하고 싶고 어떻게 성장하고 싶은지 같은 질문이 생기지 않았다. 내가 어떤 고민을 하고 결정을 해야 하는지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했다. 불안하고 긴장되는 일은 많았지만 하면서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일들이라 마음은 더 편했다.

올해는 내가 하는 일에 더 적응했는지 하고 싶은 말이 생겼다. 자아가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자아가 자라났다.


일상

일을 많이 했다.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이 줄었다. 완전히 미루진 않았다. 속초와 인천을 오가며 가족, 동리씨와 시간을 보냈다. 가족, 소은이와 혜연이, 민해와 속초에 함께 갔다. 운동도 꾸준히 했고 잘 챙겨 먹고 잘 잤다. 내년에는 일은 적당히 하고 운동 횟수를 늘리고 운동의 재미를 느끼고 싶다.

처음으로 1인 가구가 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집을 정돈하려고 했고 식물들이 무럭무럭 자랐다. 내년에는 단골 가게도 만들고 식물들을 더 큰 토분으로 옮겨주고 텃밭 농사도 하고 싶다.

술을 줄이려고 무알콜 맥주를 마셨다. 술을 안 마신건 아니다. 영어 공부는 거의 하지 못하고 스픽에 기부했다. 내년에는 꾸준히 영어 공부 하고 싶다. 루틴 대체 어떻게 하는 걸까.

아이유 팬 콘서트를 갔고 행복해서 울었다. 소중한 친구들이 결혼했고 축하해서 울었다.

김밥천국의 전세금은 일 년째 돌려받지 못한 채 민사와 형사를 거쳤다. 사회시스템이 고장 나서 벌어진 일인데 임대인이 아닌 임차인이 붕괴를 막고 있다는 게 열받고 힘들다.


믿음

작년에 뉴웨이즈를 법인으로 전환하면서 뜻을 세우고 믿음을 쌓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 답은 우리 안에 있기도 했고 우리 밖에 있기도 했다. 경험을 복기하고 미래를 상상하며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호기심으로 시작한 해였는데 '그렇게 만들 수 있다'는 신뢰로 한 해를 마무리할 수 있게 되었다.

믿음은 담대한 선언이 아니라 성실한 수행이 필요한 거더라. 언어를 다듬고 실체를 만들고 충분히 감탄하고 부족함에 다시 결심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가끔은 담대함보다 성실함에 가까운 내 성정이 조직의 한계가 되는 거 같아 쪼그라들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이벤트가 아니라 시스템이라는데 용기를 얻었다. 민주화 이후에 계속 없던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면 성실함이 좋은 자산이 될 거라 믿는다. 내 한계가 다른 가능성을 열 수 있다면 기꺼이 감사한 마음으로 계속할 수 있다.


관점

리더가 되고 난 후 나라서 절대 안 할만한 결정이 뭔지 복기하는 습관이 생겼다. 최적화된 전략을 세우느라 더 용기 있고 대담한 결정을 하지 못한다는 아쉬움이나 부끄러움이 든다. 자꾸 결정을 틀어보게 되는 이유다.

계속 틀어보고 아쉬움이나 부끄러움은 느끼더라도 한계는 한계로 받아들인다. 한계 때문에 시작할 수 있는 게 있다는 걸 안다. 한계를 알아야 어떻게 실패할지 결정할 수 있다는 것도 배웠다. 한계를 인정하고 나니 더 멀리 보는 힘이 생겼다.

멀리 보다 보면 한없이 부족하게 느껴지는데 그럴 땐 지금까지 온 시간을 되돌아보며 자부심을 느꼈다. 전에 없던 일이라 어렵지만 명료하게 남겨지니 재밌다.

일의 기술이나 내용보다 목적과 책임에 집중하다 보니 ‘이 정도 했으면 다 해본 거 같다’는 감각이 사라졌다. 책임의 시효를 어디까지 둘 것인지를 골몰한다. 거기까지는 최선을 다하고 그 이후에는 시효가 끝난 책임에 미련을 갖지 않고 다른 책임을 지고 싶다.


태도

처음 시작할 때는 하는 일의 의미와 책임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 기꺼이 조언해 주고 격려해 주는 분들 덕분에 정치 안에서, 비영리 안에서, 또 더 넓게 시민으로서 의미와 책임을 버겁지 않게 받아들이게 되었고 우리의 역할이 무엇일지 더 적극적으로 고민하게 되었다.

올해는 우리가 어떤 태도로 일하는지 언어로 만들고 선언해보려고 했다. 다듬어지지 않으면 않은 채로 공유했다. 이 일을 하면서 사랑이 많아졌는데 이 사랑이야말로 최선의 전략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사랑을 태도로 분노를 기술로 다루고 싶다.

연결된 자원과 기회를 당연히 여기지 않고, 우리에게 거는 기대와 가능성의 무게를 가볍게 여기지 않고, 공동체가 지나온 과정과 자산을 단정 짓지 않고 배우면서 이어가고 싶다. 자주 과분해진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일할 수 있다니 행운이다.


책임

팀을 만들었다. 둘이서 하던 일이었는데 어느덧 멤버가 네 명이고 외부 파트너는 여덟 명이다. 의지가 되는 제품팀을 만들었고 든든한 마케팅, 콘텐츠 파트너가 있다. 작게는 두 배, 크게는 여섯 배로 팀이 커졌다. 빌더는 오백 명이 넘었고 우리 소식을 받아 보는 사람은 이만 명이 넘었다.

지향하는 가치와 세계관에 맞는 리더십을 고민했다. 세 달간 리더십 진단과 코칭을 받으면서 내가 가진 고유성을 이해하고 뉴웨이즈에 필요한 리더십이 무엇인지 정의했다. 덕분에 나를 크게 바꾸지 않고 역할을 갱신할 수 있었다.

몇 가지 시도도 해봤다. 우리가 하는 일 자체가 난이도가 높고 레퍼런스가 없다 보니 잘하고 있는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이러한 불안을 줄이기 위해 뉴웨이즈의 직무 전문성을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태도적 역량을 레벨링 했다. 조직 운영 진단과 개인 다면 평가를 하면서 조직과 개인의 내년 목표를 세웠다. 내년이 더 기대된다.


2023년

이런들 저런들 나를 미루지 않으려고 했다. 더 해야 할 거 같고 부족하다고 느끼는 마음이 들면 멈추려고 했다. 나를 어디로 데려 갈지는 내가 결정할 수 있다는 믿음은 지금껏 자유를 주었는데 이제는 책임도 준다. 올해도 내가 내 편이라 고마웠다. 올해도 나를 새로운 사람으로 키워준 뉴웨이즈에게 고마웠고 더 의지할 수 있었던 한 해였다.  


2024년

곧 뉴웨이즈가 3년이 된다. 지난 3년 동안은 새롭게 시작하는 에너지를 많이 썼다면 내년에는 공고하게 키우는 에너지를 쓰고 싶다.

이렇게도 되네, 더 좋네, 하고 계속하게 만드는 시스템을 만들어서 관성을 바꾸고 싶다. 할 일이 많다. 잘 쌓고 자부심을 느끼고 더 해보면서 다른 세계를 만들어 가고 싶다. 자랑스러운 과정 위에 이전으로는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결과를 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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