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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티 Apr 29. 2021

진짜 나를 찾아가는 시간

자발적 퇴사 후 한 달 기록

벌써 퇴사 후 백수의 삶을 보낸지 한 달이 지났다. 1주차는 하루가 너무 길고 시간이 안 가서 이렇게 어떻게 계속 놀지란 생각에 쉬는게 막막할 정도로 불안한 마음이 앞섰다. 이런 나를 보고 친한 언니들이 제주도를 데려갔다. 그렇게 급 다녀온 제주도 여행에서 언니들과 이런 저런 대화도 하고, 위로도 받고, 용기도 얻고 돌아왔고 이후 조금씩 쉼을 받아들이고 나를 회복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보니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한 달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 글을 쓰며 정리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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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함께 다녀온 언니들은 나와 직전 회사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다. 호흡도 잘 맞고, 성격도 비슷해 함께 즐겁게 일했다. 지금은 각자 다른 곳에서 일하고 있지만 지금도 가장 많이 연락하고, 나의 많은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 만큼 가까워진 사람들. 회사에서 얻은 것은 역시 사람 밖에 없다. 퇴사 후 어떻게 쉬어야 할지 몰라 막막해하던 나에게 언니들이 제주도 여행을 제안했고 나는 망설이다가 오빠에게 “나 언니들이랑 제주도 다녀올게!” 하고 휘리릭 떠났다.



대화. 대화. 대화. 언니들과의 대화는 늘 유쾌하고 유익하다. 나를 진심으로 생각해주는 언니들에게 늘 고맙다. 나보다 사회생활을 더 오래 해서인지 확실히 더 단단함이 느껴진다. 제주도를 갔던 이맘때는 번아웃으로 자존감이 바닥을 쳐서 우울이 기분으로 깔려있는 상태였는데, 나의 떨어진 자존감을 어루만져주고 끌어올려준 언니들. 다음 날엔 J 언니에게 강제로 이끌려 일출도 봤다. 새벽같이 일어나 눈비비며 다시 찾은 광치기 해변.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가고 이렇게 흘러가는 시간에 당분간은 몸을 맡겨보자 하고 생각했다. 너무 열심히 살지 말고, 너무 애쓰지 말고, 흘러가는 시간 위를 유영하듯 천천히, 편안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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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었던

것들을 했다


제주도를 다녀온 후 다시 혼자의 시간. 쉬는 동안 하고 싶었던 것들을 마음껏 해야 후회가 없을거라는 J 언니의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이것 저것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려고 했던 것 같다. 예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것들, 또는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한번쯤 도전해보고 싶었던 것들, 평일 낮에만 여유롭게 할 수 있는 것들 등등. 사실 퇴사 직후에는 고질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불안장애가 심해져서 무기력이 함께 동반되어 3일 내리 잔적도 있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게 있을까.. 하며 뭘 해야 할지 막막하기도 했는데, 그냥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순간 순간 떠오르는 것들을 하나씩 하다보니 하고 싶은 것들이 계속 생겨났다.



친한 친구가 운영하는 비건 베이커리 작업실에 다녀왔다. 자신의 꿈을 향해 천천히 걸어나가고 있는 내 친구. 얼마나 열심히 레시피를 개발하고, 베이커리를 운영하고 있는지 알기에 더욱 더 잘됐으면 하는 마음. 비건 베이커리 클래스 오픈을 준비 중이여서 일일 수강생이 되어보았다. 통밀 스콘이랑 블루베리 바나나 머핀 2가지 비건 빵을 만들어봤는데 나같은 똥손도 이렇게 빵을 만들 수 있다니 새삼 신기. 좋은 재료로 열심히 준비한 레시피여서 맛도 진짜 굿굿.



장 줄리앙 전시회도 다녀왔다. 작가의 가족, 친구, 여행 등.. 평범한 일상을 주제로 작업한 작품들이 처음 공개되는 전시였다. 평소 전시회를 많이 방문하는 편은 아니지만 장 줄리앙은 따뜻하고 평온한 그림으로 유명하기에 마음의 평온을 찾고 싶어서 다녀왔다. 평일이라 사람으로 붐비지 않고 여유로워서 천천히 보다 나온 것 같다. 위 사진은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 3가지. 나 역시 이렇게 내 일상을 관찰한 적이 있나. 여태 없었던 것 같다. 내 일상을 소중히 다루고 관찰하고 기억하는 것.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겠지.



쉬는 동안 발견한 나의 놀라운 재능은 바로 요리이다. 나는 진심 똥손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요리를 잘 한다는 것. 동생은 여전히 믿지 못한다... 사실 우리집 요리는 모두 오빠가 담당해서 나는 요리에 1도 손을 안 댔었다. 요리하는 걸 귀찮아하기도 하고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반대로 오빠가 요리하는 것을 워낙 좋아하다보니 자연스레 오빠가 도맡아 했었다. 그렇게 1년 반을 살다가 최근 쉬면서 너무 심심해서 퇴근하고 온 오빠한테 밥이나 차려줘야지 하는 마음에 요리를 시작했는데 웬걸? 은근히 맛있는 것이다. 무려 빨간오뎅을 처음 만들었는데 오빠가 놀랐을 정도. 이후 찌개도 하고, 덮밥도 하고, 콩불도 하고, 밀푀유 나베도 하고, 나름 다양한 요리를 하며 요린이 탈출을 위해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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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리추얼을

만들고 있다


<번아웃 극복, 자존감 회복, 나를 사랑하는 것>이 퇴사의 목표였기에 나를 지키기 위한 리추얼이 필요했다. 건강하고 단단한 마인드를 다져나가고자 노션으로 캘린더, 리추얼 관리, 기록을 시작했다. 한 달 동안 규칙적인 일상과 리추얼을 지켜나가고자 노력 중이고 아직까지는 레이지 모닝 외에는 나름대로 잘 수행하는 중.




독서 기록부터 일기 쓰기, 데일리 루틴 체크 등. 노션은 폰/패드 동기화가 빠르고 다루기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서 잘 활용하고 있다. 그리고 나의 모든 기록물이 한 곳에 아카이빙되니 기록하는 습관을 들이는데 정말정말 좋은 것 같다.


풍성한 4월을 만들어 준 밑미 온라인 리추얼. 나를 껴안는 글쓰기. 매일 나의 삶과 나의 생각을 돌아보고 기록하는 과정을 통해 나를 껴안아주는 방법을 배워나가고 있다. 글을 쓰고나면 마음이 정말 풍요로워지는 것을 느낀다. 매일 쓰기 때문에 그 풍요로움이 계속 누적된다. 오늘로 리추얼 마지막 날이었는데 한 달 동안 글을 쓰며 너무나 행복했다. 5월에도 두 가지 온라인 리추얼과 함께 할 예정. 나를 안아주는 방법을 알려준 밑미 리추얼, 너무 고맙고 감사해요.



매일 #셀프칭찬기록 도 하고 있다. 바닥친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은 역시 나를 사랑해주고 칭찬해주는 것 밖에 방법이 없기에. 매일 매일 나를 칭찬해주는 연습을 하고 있다. 인스타 계정에 하나씩 올리고 있는데 아무에게 말을 안해서 팔로워는 3명 뿐이지만 매일 쌓여나가는 칭찬 기록을 보며 나는 소중한 사람임을 깨닫고 있다. 나는 역시 내가 제일 많이 사랑해주어야해.





나의 삶의 질을 올려준 아주 감사한 서비스는 바로 밀리의 서재. 휴대폰으로 책을 읽는 것에 편견이 있었는데 정말 편하다. 너무 편하다. 책 읽는 것을 습관화 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 4월에 틈틈이 읽었는데 벌써 5권을 넘게 읽었다. 책 종류도 많고 신간도 자주 들어와서 좋다.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불안함도, 우울함도, 잡생각도 모두 사라진다. 그래서 기분이 다운될때는 밀리의 서재 앱을 켠다. 앞으로도 쭉 함께 해야지. 밀리의 서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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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의 시간을

자주 보냈다


사람들을 별로 만나지 않았다. 근황을 이야기하며 퇴사를 했다는 사실과 왜 퇴사를 했는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등등 나의 이야기를 굳이 남에게 하고 싶지 않았고 그냥 피로했다. 아무래도 전 회사에서 사람에게 지쳤다보니 인간관계 전체에 지친 것 같다. 가까운 사람들과만 연락하고 왠만하면 연락을 잘 안했다. 이 시간만큼은 나에게만 집중하고 싶었다.



평일에 오빠가 출근을 하면 온전히 혼자의 시간이 시작된다. 혼자 심심하기도 했지만 그냥 심심함을 즐기기로 했다. 혼자 카페 가서 책 읽고, 글 쓰고, 멍때리고... 그냥 혼자서 나에 대해 생각하고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곳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동네 카페. 아인슈페너로 유명해서 주말엔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비는데 평일에 가니 한적해서 좋았다. 이 카페에서 틀어놓는 bgm도 취저. 아주 멍때리기 딱 좋은 곳.



그리고 많이 걸었다. 걷기 좋은 날씨에 퇴사해서(?)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난 걸을 때 음악을 듣지 않는다. 이동할 때도 음악을 안 듣는다. 언젠가부터 이어폰을 끼는게 불편하고 방해된다 느끼기 시작했다. 그냥 음악으로 뇌를 채우는게 싫다고 해야하나...... 머리도 마음도 비운 채로 움직이고 싶어서 몇 년 전부터 만들어진 습관이다. 이 날도 거의 1시간 가까이 걸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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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직후와

지금 달라진 것


나의 번아웃은 비단 회사로 인해서만 온 것은 아니었다. 나를 괴롭히는 근본적인 문제인 ‘불안’은 나의 일상의 많은 부분을 망가뜨렸다. 회사에서는 낮은 자존감과 비교의식으로 작용했고, 일상에서는 건강염려증과 소중한 사람의 죽음에 대한 불안함, 갑자기 몰아치는 극심한 공포와 떨림, 새벽마다 반복되는 악몽 등으로 표출되었다. 불안은 나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상적인 삶을 지속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것이 쌓이고 쌓여 터진 것이다. 몇 년 동안 나를 괴롭히던 불안장애를 이제 제대로 마주하기 위해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상담 덕분인지, 약물 치료 덕분인지 불안은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 이제는 악몽도 꾸지 않고, 잠도 잘 자고, 걱정도 많이 줄어들었다. 이렇게 불안을 치료하기 시작하면서 동시에 나를 사랑하는 연습을 시작했다. 위에서 쓴 것처럼 매일 나를 칭찬해주고, 나를 껴안는 글을 쓰고, 해보지 못했던 것을 하나씩 해보면서 몰랐던 나의 재능을 발견하고 나의 가치와 소중함을 느끼고 있다. 여태껏 난 나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했던 존재였던 것 같다. 비로소 이제야 나를 온전히 인정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물론 아직도 불안함과 걱정은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하고 떨어진 자존감이 완전히 회복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예전에는 회복될 가능성조차 없다고 느꼈다면 이제는 조금씩 회복되어감을 느낀다. 앞으로 더나아질것 같고 달라진 내가 기대되기 시작했다. 조금씩 내 안의 에너지가 채워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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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에도

내 삶은 똑같겠지


5월에도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보낼 것이다. 2가지 밑미 리추얼에 참여할 것이고, 변함없이 글쓰기와 책읽기, 칭찬일기는 쭉 함께 할 예정이다. 4월에는 나를 사랑할 줄 아는 내가 되었다면, 5월에는 습득한 것을 내 삶에 적용해나가고 싶다. 그리고 4월보다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뭐 이래저래 정리가 되진 않지만 결론은 나에게 집중하며, 나를 사랑하고, 새로운 자극과 동기부여를 받는 것. 다시 달려나갈 에너지를 채우는 것. 그것이 나의 5월 계획.




우리의 삶은 남들만큼 비범하고
남들의 삶은 우리만큼 초라하다

- 허지웅 에세이 <살고 싶다는 농담> 中



정리해보면 퇴사 후 나는 타인을 동경하며 나를 초라하게 만들었던 지난 시간과 이별하는 중이다. 나를 온전히 인정하고 사랑하는 연습. 뛰어난 나, 멋지고 예쁜 나, 또는 초라하고 부족한 나, 이런 식의 나를 설명하는 수식어구를 전부 들어내고 오로지 그냥 '나' 만 남기는 연습을 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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