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e Jan 02. 2024

콘텐츠를 넘어서기 - 2023년 회고

2023년 회고 

배경: 콘텐츠를 넘어서기



위시켓 요즘IT에서의 내 여정은 콘텐츠를 넘어서기에 대한 열망에서 시작됐다. 나는 마음과 머리를 움직이는 좋은 글, 좋은 문장을 오래도록 사랑해온 사람이다. 직업도 그런 게 됐다. 그런데 계속 글로 된 콘텐츠라는 걸 만들어내다 보니, 몇 가지 다르게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1. 뭔가를 취재해 글을 쓰는 것은 내가 어떤 회사에 소속되어 있든 아니든 할 수 있는 일이며, 내가 명문을 쓰는 훌륭한 사람은 아니지만 목표하는 이야기를 독자에게 잘 전달해내기 위한 기본적인 스킬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판매할 수도 있는 글을 쓸 수 있고 내가 스스로 만족하지는 못하더라도 독자나 매체가 수용할 만한 글을 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글쓰기는 조직의 요구보다 나의 필요와 선호에 따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2. 수많은 텍스트 콘텐츠 매체가 등장했고 뉴미디어라는 이름을 얻었으나 정말로 웹, 모바일이라는 매체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한 매체는 국내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체나 포맷을 달리하거나 제목을 a/b테스트하거나 웹에서 결제할 수 있게 하는 것 이상의 다양한 시도가 있으면 했다. 콘텐츠라는 이름을 갖고 웹페이지 하나가 생성되면 그것은 웹 세계에서 어떻게 전파되고 유통되고 소비되는가. 무엇이 웹에서의 읽는 행동을 지배하나.  책이나 신문이라는, 콘텐츠가 아닌 매체가 웹에서 의미 있으려면 어떤 형식을, 어떤 비즈니스 모델을 가져야 하나? 답은 없겠지만 그런 것을 고민하고 설계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콘텐츠 기업에서는 그런 일을 하기 쉽지 않아보였다. 글을 길게 쓰거나 짧게 쓰거나, 불릿포인트를 쓰거나 요약을 주거나, 친절한 말투를 쓰거나, 영상에 혹은 sns의 어떤 채널에 진출해야 하는지 등이 콘텐츠 기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슈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관점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나고 싶었다. 근본적으로 일하는 방식, 콘텐츠를 대하는 관점 자체를 다르게 해보고 싶었다. 



이런 생각을 하던 중 위시켓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게 됐고 두 가지 모두를 다르게 해볼 수 있는 기회인 것 같아서 합류했다. 그 뒤 1년이 조금 넘게 지났다. 미디어 기업 한 군데와 위시켓이 운영하는 요즘IT 중에서 많이 고민했는데, 두 번째 이유 때문에 요즘IT를 택했다. 미디어 기업에서는 똑같은 방식으로 똑같은 관점에 휘말릴 것 같았다. 기본적으로 미디어 기업은 기존에 구축해놓은 비즈니스와 네트워크를 유지하기 위해서만도 상당히 업무량이 많다. 그걸 유지하면서 다른 판로를 찾자니 기존 조직도 힘들다. 그래서 정말 혁신을 원하는 리더가 의지를 갖고 실무 레벨에서까지 별도 조직을 두어 외부적 관점을 조직 내에 계속 수혈해야 하는데, 그렇게 한다 해도 쉬운 길은 아니어 보인다. 국내 큰 신문 기업 몇 군데도 벌써 이름값 있어 보이는 CTO를 선임했는데 1, 2년만에 그만뒀다. 단순히 테크만이 아니라 프로덕트 자체가 강화되어야 하는데 작년에 국내 언론 제품 기획 관련 조직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정확한 기사를 못찾음) 수동적으로 일한다는 반응이 다수였다. 여튼 그래서 아예 다른 관점이 우선인 곳에서 일하고 싶었다. 



[2023년의 일 회고]


- 개인적으로는 위 두 가지가 나름대로 충족이 되어 좋은 한 해였다. 



- 원하는 큰 방향은 있지만 답은 없는 상황에서 나름대로 공부를 하면서 어렴풋이 갖고 있던 생각을 조금 정리할 수 있었다. 


    - 미디어는 테크, 프로덕트보다 콘텐츠가 중요한 제품이기는 하다. 그래서 다른 것보다 콘텐츠를 고품질, 차별화하는 것에 관해 고심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읽는 경험 그 자체보다는 콘텐츠를 통해 미디어를 기억한다. 예를 들어 뉴욕타임스가 아무리 snowfall이나 최근 몇몇 기사들처럼 웹 멀티미디어가 접목된 멋진 기사를 내더라도 그것때문에 구독하지는 않을 것이다. 


    - 그런데 미디어의 핵심 자산은 콘텐츠가 아니라 네트워크다. 미디어가 커버하는 영역의 네트워크가 영향력을 만든다. 그 영향력에서 돈이 나오는데, 최근 영향력이 줄어들기 때문에 돈에 대한 고민이 생기는 것이다. 그럼에도 미디어가 가진 네트워크 자산은 강하다. 그 네트워크를 어떻게 지속적으로 엮어내고 수익화할 수 있는지가 문제다. 기존 미디어의 네트워크 중에서 가장 약한 연결고리는 독자 네트워크이고 독자가 거의 점처럼 존재한다.


    - 모두의 모두를 위한 미디어는 영향력이 줄어든다.



- 콘텐츠가 아닌 ‘정보재’에 관해 생각하게 됐다. 정보재로서 팔리는 정보재는 무엇이고, 그렇지 못한 정보재는 무엇인가? 혹은 그 정보재를 담는 그릇은 어떻게 효율과 수익을 추구할 수 있나. 이런 것들을 고민함. 정보재는 정보의 가치가 높거나, 정보를 가공/유통이 잘 되거나 해야 가치가 있음. 우리는 정보재를 다루는 영역에 있지만 전자보다는 후자에 가까움.



- 그러던 중 오가닉미디어랩을 알게 되고 네트워크에 대해 이전보다 더 이해하게 됨. 머릿속에서 무한규모 경제학 순환구조를 그려보게 됨. 아직 잘 모르겠는 부분이 있지만 판단에 좋은 구심점이 됨. 



- 웹 비즈니스에서 구글 정책의 중요성을 이해하게 됨. 또 웹의 연결, 개방성의 관점에서 콘텐츠의 유통 과정을 그려보게 됨. 예전에는 내가 속한 매체나 내가 만드는 글의 관점에서만 생각했지만, 2023년에는 무수히 생산되는 글 콘텐츠 속에서 어떻게 경쟁력을 갖고 살아남을 수 있는가?의 관점으로 확장. 콘텐츠에 관해 내가 갖고 있던 어떤 미신들을 쫓아내면서도, 어떤 것들은 일부 미신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됨. 예를 들어 오리지널 콘텐츠는 중요하다. 하지만 미친듯이 독창적이고 독보적일 필요는 없다. 즉 미친듯이 독창적이고 독보적이기 위해 돈과 시간을 갈아넣을 필요가 없다. 등. 



- 네 가지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집중했다.


    1. ‘어떤 글을 발행할 것인가’에서 ‘어떤 네트워크를 가져올 것인가’로. 


    2. 목소리 내기. 읽는 사람에게 말을 걸고, 읽는 사람이 말을 건넬 수 있도록 매체를 성격이 있는 인플루언서화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3. 팀원 코칭. 방향성을 기반으로 스스로 일의 의미를 찾고 관련해 꾸준히 작더라도 새로운 시도하기. 스스로 네트워크 확장하기. 


    4. 기술과 프로덕트, 내가 잘 모르고 잘 못하는 것에 열린 관점 갖기. 



- 성과 & 배운점


    1. 거의 모든 수치가 두 배, 혹은 그 이상 증가했으나 위에 내가 집중한 것만으로 낸 성과가 아니다. 


    2. 하지만 input을 평가해보자면, 집중한 부분에 대해 적절한 input이 있었다고 생각함. 


    3. 또 팀원들이나 다른 동료들에게 많이 배웠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을 때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관한 아이디어를 어떻게 내고 실행하는지, 어떻게 작게 실행하고 확장해나가는지 크게 배웠고 프로덕트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게 됨. 특히 요즘IT 콘텐츠를 학습하고 답변을 주는 gpt 기반의 ‘물어봐ai’, 독자 통계 등을 마련하고 오픈해 운영해가는 과정에서 배우는 점이 정말 많다. 


    4. 사람들이 웹에 있는 콘텐츠를 어떻게 이용하는지 이해가 좀 더 높아졌다. 특히 gpt기반의 물어봐ai를 통해 SEO를 어떻게 디자인하는지도 조금 이해하게 됐고 그게 결국 사람들에게 어떤 행동을 유도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알게 됐다. 웹에서의 영향력에 사용자의 참여는 정말 중요하다. 


- 개선점

    - 기술과 프로덕트에 더 깊이 있게 관심 갖고 적용을 생각하기. 




[2023년의 생활 회고]


- 세 식구의 생활에 익숙해지게 됨. 


- 아이가 너무너무 예쁘다. 


- 하반기에 둘째 갖고 입덧으로 개고생. 망각의 동물로써 대가를 혹독히 치렀다. 하지만 둘째는 사랑이라는 말의 진실을 깨닫게 됨: 


    - 첫째를 가졌을 때는 불안하고 두려운 점도 많았다. 임신 때부터 아기가 약 1년 정도 자라기까지 작은 반응에도 크게 고민했다. 또 첫째 임신 때는 내가 갑자기 임산부, 엄마라는 정체성을 갖게 되고 사회에서 격리되는 것 같은 두려움, 아기에게 나의 고유한 개성을 빼앗기게 될까봐 두려움이 컸음. 그래서 오히려 조금 거리를 두려고 했던 것도 있었다. 나는 원래 ‘모성애가 타고난다’는 말에 코웃음치던 사람이었으나 막상 아기에게 거리를 두려 하는 모습에서 나는 엄마가 안 맞는 게 아닐까 뭐 이런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내가 원래 알던대로, 그저 아기에게 익숙해지고 내가 엄마로서 아기에게 큰 사랑을 이해하고 품는 데 시간이 필요한 것뿐이었다. 1년쯤 지나 완전히 적응하고 익숙해지자 이런 게 다 어디에 있었는지 알 수 없을 만큼의 큰 사랑이 끌어올랐다. 삶이 기존과 다른 차원의 행복을 얻게 됐고 이제는 하루하루 너무 즐겁고 기쁘다. 예전엔 아이가 울면 당황했지만 이젠 아이가 울면 그것조차 너무 예쁘고 귀엽다. 아이의 모든 것을 눈으로 보고 기억해두고 싶어 하루하루가 아깝다. 눈을 깜빡일 때 속눈썹의 모양, 웃음소리, 발가락 모양, 나에게 하는 말, 먹을 때 볼록볼록해지는 볼, 울음소리도.


    - 이런 상태이다 보니 둘째는 처음부터 두려움, 불안감은 없고 사랑만 있는 채로 맞이하게 됐다. 이제 밥 먹이는 시간이 조금 달라져도 괜찮고 이유식을 이것저것 해먹이지 않아도 괜찮고 조금 울어도 괜찮다는 걸 안다. 준비된 사랑을 갖고 있으니 둘째는 뭘 해도 사랑스러울 것이다 라는 결론. 


- 불안과 두려움을 좀 더 잘 다스리게 됐다. 내가 하고 싶은 것, 해야 할 것 같은 일이 거대한 파도처럼 한꺼번에 밀려와 나를 압도하는 것 같을 때, 그때를 인지하고 제동을 거는 것. 손에 잡히지 않는 것보다 지금에 집중하기. 특히 너무 감사하게도 아이가 나를 미지의 불안함에서 오늘의 충만함으로 이끈다. 큰 방향을 갖고 오늘에 충실히 또 감사히 사는 것, 그것이 내가 계획하거나 원했던 것과 다른 결과를 내더라도 다시 일어나 또 큰 방향을 갖고 오늘에 충실히 또 감사히 사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