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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의 아이 둘 등원 시키기 아침 루틴에 관하여

혼란하다 혼란해

by hee

10월 2일부터 9일까지, 긴 연휴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온 첫 날인 10일 아침. 내가 연휴 동안 하지 않아서 좋았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아침에 단박에 깨달았다. 이 지독한 아침 루틴을 하지 않았던 것이고 그것이 정말 편했구나, 다른 무엇도 아닌 바로 그것이.


바로 아이들 둘을 등원시키는 미션을 완료한 뒤 출근길에 나서는 것. 이 미션에는 정말 많은 것이 함축되어 있다. 내 아침 미션을 “아이들 둘을 등원시키는 미션”이라는 말로만 함축하는 건 어딘지 조금 억울하다. 그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줌인을 해보자. 아… 다시 내 아침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지친다. 하지만 기록을 해둬야 한다.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는 나는 등원 담당, 유연 근무를 하는 남편은 하원 담당이다. 그래서 남편은 기상과 동시에 출근 준비를 하고, 준비한 지 30분도 채 안 되어 회사에 간다. 때문에 아침은 거의 화를 내지 않기 위한 나 자신과의 싸움에 가깝다. 나는 그 싸움에서 반은 패배한다.


아이들 둘 중 하나가 일어나는 것으로 아침이 시작된다. 보통은 오전 6시30분에서 7시 사이다. 일어난 뒤부터는 무조건 오전 8시 45분에는 밖으로 나서야 한다는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가야 한다. 큰 아이의 유치원 버스를 뛰지 않고도 타려면 그때가 딱 알맞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막판에 떼를 써서 나가는 게 늦어지더라도 2,3 분 정도는 마진이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아침에 막 일어난 아이들은 매우 귀엽다. 지난 날 아침이 죽도록 어려웠었다거나 어제 이 녀석이 사탕 먹겠다고 방을 울며불며 뒹굴었다는 사실 따위는 생각나지 않는다. 정말 까맣게 잊어버린다. 그냥 귀엽다. 아이구 내새끼.


하지만 아이들과 아침 인사를 하는 것도 그렇게 낭만적이고 순조롭게 진행되는 일만은 아니다. 전적으로 아이들의 컨디션과 요구에 달려 있다. 어떤 날은 엄마 집착에 빠진 둘째 아이가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손에서 끈끈이가 나오는 건지.. 어떤 날은 첫째 아이가 영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울고불고 난리를 친다.


나의 솔루션은. 침착하게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다. 비가 오든 바람이 불든 해가 뜨고 맑든 애들 아침은 먹여야 하니까. 식사 준비는 귀찮긴 하지만 오히려 아침 루틴 중 가장 쉬운 파트 중 하나다. 몇 가지 쉬운 메뉴를 돌려가며 만든다.


계란 간장밥, 참치 주먹밥, 바나나 오트밀, 누룽지, 빵, 미리 만들어둔 국과 반찬. 바로 뜯어 먹을 수 있는 김과 연두부는 반려 식품이다. 우리 엄마는 매번 바뀌는 국과 반찬을 어떻게 아침마다 차려줬을까 정말 미스테리한 부분이다. 나는 되도록 일품식단으로 끝.


내가 애들보다 먼저 일어나서 아침 식사 준비를 해보기도 했지만, 이제 아침 식사 준비에 익숙해지기도 했고 나도 1분 1초라도 더 누워 있고 싶어서 그만 뒀다.


밥을 차렸으면 애들을 밥상머리에 데려다 놔야 한다. 아직 둘째는 ‘맘마 먹자’ 하면 ‘맘마 맘마’하며 바로바로 달려와서 아기 의자에 앉혀달라고 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런 행동은 영원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첫째도 그맘쯤엔 바로바로 달려와 밥을 먹었다.


하지만 이젠 다섯 살 유치원생인 첫째 아이가 “밥 먹어라”하는 말에 바로바로 달려와 앉아서 먹는 날은 그냥 운수 좋은 날 중 하나다. 정확히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그런 날이 그렇게 많지도 않고, 밥을 순순히 먹었다고 해서 뒷일이 모두 잘 풀리는 것도 아니다. 그냥 그런 것이다.


바로 오지 않으면 뭔가 자기 세계에 빠져 놀이를 하고 있거나 잔뜩 심통이 난 상태다. 심통이 난 이유는 자기도 모르고 나도 모르고 며느리도 모른다. 아무도 모를 거야. 아마 피곤하거나 어딘가 불편할 텐데, 그걸 내가 해결해줄 수는 없다. 그걸 진짜 이유가 아닌 다른 이유를 들어 표출한다. 간식이 먹고 싶다거나, 오늘 유치원을 안 가는 날이면 좋겠다거나 유치원 숟가락을 자기가 가방에 넣어야 하는데 엄마가 쌌다거나 자기 일찍 일어나고 싶었는데 늦었다거나 뭐 그냥 갖가지 자기 중심적인 이유가 있어서 너무 열심히 들을 필요도 없다.


갖은 회유와 때로는 협박… 조금은 같잖은 협상.. 이런 과정을 거쳐 밥상머리에 데려다 놓는다. 밥 한 입을 먹기까지 또 여러 노력이 드는 날도 있다. 하.. 더이상은 생략한다. 하여튼 그렇게 밥을 먹인다.


밥상머리에 순순히 앉았던 둘째는 수월할까? 이 문장을 쓰고 벌써 큰 한숨을 내쉬었다. 후.. 주말인데, 굳이 그 전쟁같은 아침을 떠올리면서 다시 고통받아야 할까? 싶지만 포기하지 않고 일단 기록해본다.


아직 숟가락질이 서툰 이 아이가 먹고난 자리는… 물과 밥풀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거나 오트밀포리지를 머리에 발랐거나 물컵에 빵을 넣어보았거나, 아주 쑥대밭이다. 음식 마귀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라고 생각하자. 그래도 앉아서 먹이는 것보다 치우는 게 더 아침 시간을 단축할 수 있고 나의 멘탈에 이로우며, 아이의 그런 어지름에 대해 매우 관대해졌기 때문에 그냥 음식 마귀가 휩쓸고간 자리를 치우는 일을 택했다. 그래도 흘리는 양이 점점 줄어든다. 고오맙다.


밥 먹은 둘째는 역시나 음식 마귀가 휩쓸고간 옷을 벗겨놓고 손과 얼굴을 닦은 뒤 내버려둔다. 그러면 기저귀만 걸친 채로 혼자 여기저기 다니면서 논다. 뭘 맨날 본 장난감이 또 봐도 새롭고 재밌는지. 뭘 하는진 모르겠지만 여튼 뭔가 하고 놀러다닌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기저귀가 불룩해지고 냄새가 나는 상태가 된다. 응가를 한 것이다. 둘째가 응가를 하고 나야 내가 출근복을 산뜻하게 입을 수 있기 때문에 둘째의 응가는 중요한 루틴 중 하나다.


녀석이 얌전히 놀러다니지 않는 날도 분명 있다. 어떤 날은 준비가 좀 늦은 날이었는데, 문득 둘째를 찾아 보니, 찬장을 뒤져서 빨대 우유를 끄집어 내 빨대를 꽂고 있었다. 내가 녀석을 발견한 건 두 번째 우유에 빨대를 꽂을 때였다. 첫 번째 우유에서 흘러나온 우유가 찬장 앞에 사방팔방 뿌려져 있었고, 애 옷에도 머리에도 그랬다. 그날 나는 그냥 거기 주저 앉았고, 울면서 웃었고 그 어떤 마음의 강을 건넜다.


그 강을 아는가? 넘어서면 편안해지는 그런 강이 있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오, 내 마음을 저기 어디 동양화속 무릉도원에 보내버리는 그런 강이 있다. 거길 건너면 그냥 모든 것이 편안해진다. 응 나 오늘 그냥 시간 못 맞추겠구나 하하. 지각해도 큰일 나지 않아 하하. 나는 무위자연을 추구하는 인간이다 하하.


아 진짜 쓰면서 ptsd 오네.


밥 먹였다. 그래, 그렇게 해서 아침에 두 사람 밥 먹였다.


그다음은 씻고 옷 입기 전쟁이다.


기본적으로 아이들은 내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걸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시간을 지켜야 한다는 점은 물론이거니와, 시간을 지키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애한테 화가 난다면 혹시 이 애가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걸 모르는 게 아닌지.. 그런 메타 인지를 가져봐야 한다. 밥은 숟가락으로 떠먹는 것이다, 의자는 앉으라고 있는 것이다, 이런 거부터, 양말을 신는 행동, 숟가락으로 흘리지 않고 밥을 먹는 행동도 아이들에게는 훈련되어야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아침에 한정해 쉽게 말하면 “밥 먹어라” 한다고 밥 먹으러 오지 않듯이 “옷 입어라” “씻어라” 한다고 바로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한번에 해주면 그날은 역시 그저 운이 좋은 날이다. 다섯 번 넘게 말해도 듣지 않는다. 멀리 떨어져 있다면 눈앞에 가서 이야기하고 데려다가 시작을 시켜놔야 한다.


첫째는 기분 좋은 날엔 자기 혼자 양치도 하고 세수도 하고 옷도 입는다.


아, 예쁘게 옷 입히기 같은 건 이미 포기한 지 오래다. 이상한 색깔 조합은 흐린 눈으로 넘긴다. 그래 네가 예쁘면 예쁜 것이다. 추운 날 감기 걸릴 착장만 하지 말아라.


하지만 기분이 안 좋은 날에는 양치하기 싫다거나 유치원에 가기 싫다거나 하며 삼십분을 운 적도 있다.


징징거리고 울기 시작할 때 덩달아 화를 내거나 너무 많은 말을 해버리면 해결이 안 된다. 해야돼, 가야돼, 라는 말만 반복한 채로 버텨야 한다. 그래야 자극하지 않고 단축된다. 하지만 너무 시간이 없을 땐 어쩔 수가 없다. 고도의 설득의 기술을 발휘한다. 바로 협박이다. 너 놓고간다, 하고 문을 닫아버리기 직전까지 간다. 그럼 또 아니야 아니야 하면서 소리 지르고 난리를 치면서도 따라 나온다. 그 채로 그냥 버스까지 몰고 가야 한다. 소몰이도 아니고.


둘째는 일단 응가만 하면 대충 옷입히기까진 괜찮다. 요즘엔 가끔 양말을 고르고 싶어하지만 아직 첫째처럼 옷을 혼자 입으려 하거나 적극적으로 골라야 하지는 않는다. 물론 가끔 고른다. 내 참 어이가 없어서. 17개월밖에 안 된게… 코끼리 옷을 입어야 한다거나 포비 양말 말고 뽀로로 양말을 신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쩌겠는가?? 그래도 그정도는 단순한 요구니 빠르게 들어준다.


이 대 난리통 와중에 나는 애들 가방을 싸고,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하고 양치를하고, 아이들이 먹은 걸 치우고, 옷을 갈아입고, 집에 돌아왔을 때 너무 심란하지 않게 대충은 치우고, 운동 가는 날이면 가방을 싸고, 애들 준비물과 스케줄 확인을 하고 그런다. 내가 머리를 다시 잘라버린 이유다. 화장을 하지 않아서 그나마 시간이 단축되려나.


그 사이 아이들도 요구가 끊이지 않는다. 첫째 화장실 뒷처리, 양치나 세수, 옷갈아 입히기도 혼자 한다고 해도 도와줘야 할 부분이 있다. 양치하고 옷을 입겠다고 혼자 방에 들어가도 그걸 믿어서는 안 된다. 옷 입으러 들어가서 갑자기 장난감을 갖고 놀고 있을 수도 있다.


또 첫째가 장난감을 뺏어서 둘째가 운다거나, 엄마 집착증에 빠진 둘째가 갑자기 안겨서 안떨어지려 한다거나, 둘째를 고자질하는 병에 걸린 것 같은 첫째가 자꾸 와서 동생이 어쩌구저쩌고 한다거나, 다 싸놓은 가방을 애기 녀석이 다 풀어헤쳤거나. 별의 별 일이 항상 일어나는 게 나의 아침 루틴이다. 루틴은 사람의 하루를 정돈되게 한다는데 내 루틴은 나를 혼란의 구렁텅이에 빠뜨린다. 미션을 완료하고 출근하는 길 내내 나는 그 구렁텅이에서 기어나오며 회복해야 한다. 진짜 딱 오 분만 가만히 멍때리고 싶은데, 그 오분이 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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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얼마 전 유치원 상담을 다녀왔다. 하반기 정규 상담 일정이었다. 너무 잘 지낸다고 한다. 일곱살 반 가도 될 거 같대. 그렇게 사회에서 fm적으로 생활하는 애들이 집에서는 그 스트레스를 다 푸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 내가 다 품어주면 좋겠는데 나도 정해진 시간에 맞춰 쳇바퀴를 굴려야 하는 처지라. 여유가 없는 날엔 인내심이 바닥나고 포효하게 된다.


정말 화내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한다. 안 내는 날도 많다. 우리 아빠가 애한테 열 번이 화가 나면 열한 번을 참으라고 했다. 열한 번 참는다. 열 두 번째 화가 난다. 애들은 열 세번째도 열 네 번째도 화가 나게 한다. 나를 봐주는 법이 없다. 그래서 내가 내려놓고 내려놓고 무위자연을 떠올리며 무릉도원에 내 멘탈을 보내버리는 연습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애한테 화내서 얻는 게 거의 없으므로…


정해진 시간에 맞춰 산다는 건 안정감을 주기도 하고 삶을 건강하게 규율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워킹맘에게는 지옥같은 일이기도 하다. 귀여운 대형 모래주머니인 아이들은 시간 따위 알 바 없는 자유로운 영혼들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침마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려 하기 때문에 힘이 든 것이다. 그리고 그 대자연이 이제 두 개야.


이 아침 루틴을 연휴 동안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연휴 복귀 첫날 바로 깨달았다. 그것이 얼마나 천국같은 일이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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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둘째를 낳고 복직을 하면서 자의든 타의든 정말 많이 머릿속에 되뇌었던 것은 “오늘만 산다”는 것이었다. 오늘을 바라보고 오늘을 충실히 살아내면 내일은 내일의 내가 알아서 한다. 또 내일도 오늘처럼 똑같이 살아 있을 거란 생각도 틀린 가정일 수 있다. 그러니 오늘은 오늘의 내가 잘 살면 된다. 너무 멀리 보면 막막해지고 숨이 막혀서 자신이 없어진다. 그런데 연휴는 나를 오늘에서 떨어뜨려 미칠 것 같은 내 아침 루틴을 통시적으로 바라보게 해버렸던 것이다.


뭐 어쩌겠나. 나는 다시 오늘로 복귀해야 한다. 그리고 또 그것에 적응할 것이고 까먹을 것이다. 하지만 좀 고통스럽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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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인 오늘은 아침에 밥을 바로 차리기 보다 첫째 아이를 데리고 집 뒤에 있는 천변을 산책했다. 느긋하게. 아이는 이런 저런 모양의 나뭇잎을 줍고, 이런 저런 크기의 꽃도 구경했다. 엄마 이것좀봐, 엄마 저기좀 봐, 하면서 내내 조잘조잘댔고, 나도 느긋하게 아이의 흐름에 따라 같이 걸으며 구경했다. 너무 즐거웠다. 이런 날들 때문에 대체로 행복하게 살아간다. 방금 아침 루틴의 고통스러움에 대해 쓴 사람 치고는 너무 갑작스럽게 행복을 고백하는 것 같겠지만, 이게 사실이다.


인생이 참 그렇다. 나는 젊은 시절에 괜히 알베르 까뮈가 해석한 시지프스의 신화의 컨셉에 꽂혀서 와 실존주의 정확하네 인생 진짜 그냥 그렇게 사는 거네, 생각했던 때가 있는데. 그때 그 장면을 떠올리면 어이가 없어진다. 니가 인생을 아냐. 산 위로 돌을 굴리고 그게 떨어지면 다시 밀어올리는 형벌의 의미를 아냐. 이십대가 뭘 아냐. 라고 괜히 과거의 나에게 화를 내보기도 하고 그런다. 그래도 그때보다는 행복하다. 행복하고 행복하다. 최면 거는 건가? 아니 그렇지는 않다. 애들이랑 지내는 삶이 정말 좋다. 사회적 규칙이나 현실이 형벌같을 때가 있을 뿐.


오늘에 집중해서 살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매몰되지는 않아야 한다. 아이들은 자란다. 아침의 어려움은 언젠가 줄어들 것이다. 당장 둘째가 한 2년 뒤쯤이면 음식 마귀가 식사 자리를 쓸고가는 일은 거의 사라질 것이다. 기저귀를 뗄 테니 응가 전쟁도 살아질 것이다. 첫째는 몇 년 뒤 학교에 갈 테고, 또 다른 페이즈가 시작될 것이다. 그런 그림을 생각하면서 오늘을 버티기도 한다. 지금도 과거보더 편해진 것들이 있지 않은가. 또 정말로 내 손이 필요하지 않은 날이 오면 허전하고 아쉬울 것이다.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사라지고, 힘들게 얻은 것은 오래 남는다. 살아가는 걸음걸음이 쉽지가 않다. 하지만 그만큼 아이들과의 전쟁같은 시간이 나를 계속 더 성장하게 하고, 아이들은 이 시간의 힘으로 평생을 살아갈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 우리 부모님이 내게 해줬던 기억나지 않은 도움과 친절, 사랑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기억나는 일보다 기억나지 않는 일들. 그게 있었기 때문에 내가 잘 자랐을 거라고 아이들을 돌보면서 생각한다.


긴 연휴가 끝났다. 또 오늘을 살아보자. 그럼 내일은 내일의 내가 잘 살 것이다. 그냥 언제나처럼 끔찍해보이는 루틴 속으로 그냥 들어가자. 그러면 할만 해질 것이다. 큰 아이의 양치 투정을 보면 알듯이, 양치 하기 싫다고 떼쓴다고 양치를 해야 하는 현실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하기 싫다는 마음에 매달려 힘만 빠질 뿐. 하기 싫은 마음을 안고서라도 그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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