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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찬란히 빛날 복덩이 찬실의 삶에 무한 응원을!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리뷰

코로나 19 여파로 많은 기대작들이 줄줄이 개봉이 무기한 늦춰지는 상황에서 만난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높은 제작비와 홍보비가 들어가거나 혹은 스타급 유명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는 영화들이 지금까지도 개봉을 하지 못한 상황에서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개봉 한 달 만에 2만 관객을 거뜬히 돌파했고 지금도 극장에서 장기 흥행을 하며 많은 관객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중이다. 

얼핏 보면 기적같이 보이지만 96분 동안 영화 스크린에 꽉 채워진 복덩이 찬실의 삶을 만나고 나면,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흥행이 기적이 아닌 그저 당연한 결과일 수밖에 없다. (오히려 코로나 19만 아니었으면 더 많은 관객들이 볼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까지 든다. )




일복만큼은 타고났던 찬실은 갑자기 '일'을 잃는다


집도, 남편도 없지만 찬실이에게는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는 '영화'가 있었다. 남들이 보면 하찮게 보일 수 있지만 찬실(강말금 분)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영화를 만들며 살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생각했다. 

그리고 찬실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조금은 고되지만 영화로 인해 영화로운 자신의 일상이 계속될 것임을.


하지만, 어느 날 찬실은 '변수'를 만난다. 갑작스럽게 맞닥뜨린 그 변수는 마음의 준비를 할 새도 없이 찬실이의 삶에 제동을 건다. 오랜 시간 찬실과 마음을 맞추며 영화를 함께 만들었던 감독님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면서 이번에는 정말 잘될 거라 믿었던 영화 제작이 전면 중단된 것이다. 영화 제작 현장에서 필요한 크고 작은 모든 일을 꼼꼼하게 챙겼던 프로듀서 찬실의 역할은 어느 순간 찬실이 아닌 누구나가 할 수 있는 그저 그런 일로 전락한다. 그 말은 영화판에서 더 이상 찬실이 설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일복만큼은 타고났던 찬실에게 일복의 성립요건인 '일'이 신기루처럼 사라진 지금. 

찬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찬실이 천직이라 생각했던 '영화'를 갑작스레 빼앗는다. 인생 대부분을 영화 만들기에 할애하며 어느 순간 마흔이라는 나이까지 먹어버린 찬실에게 영화를 빼앗는 일은 참 잔인한 일이다. 특히 남들에게 피해 안 끼치며 자신만의 방법대로 자신의 삶을 단단하게 채워온 찬실의 삶을 생각하면 정말 억울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찬실은 갑작스럽게 맞닥뜨린 불행에 허우적거리거나 약 올라하지 않는다. (사실 허우적거릴 상황 역시 아니다.)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그렇게 영화에만 미쳐 살았을까라는 자책감이 들기도 하지만 찬실은 이참에 자신의 전부나 다름없었던 '영화'와 거리두기를 시작한다. 형편에 맞게 달동네에 위치한 단칸방으로 이사를 하고 평소 친자매처럼 지내던 배우 소피(윤승아 분)의 가정부 일도 시작한다. 별일 아닌 게 아니지만 별일 아닌 듯 툭툭 털어내고 바로 태세 전환함으로써 터벅터벅 나아가는 찬실이.


불쑥불쑥 찬실 앞에 나타나는 장국영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인생의 전부라 여겼던 일 영화와 거리를 두고 나니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인다. 

동생 소피는 찬실의 불행에 마음 아파하며 변함없이 찬실의 곁에 있으며 무심한 듯 보였던 새로운 집주인 할머니(윤여정 분) 역시 찬실이 마주한 강제적 휴식이 조금 더 풍요로워지도록 울타리가 되어준다. 

일에 치여 사랑을 느껴볼 여유가 없었지만 결국 자신 역시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싶은 사람이라는 것도, 매력적인 이성에게 설렘을 느끼는 보통의 사람이라는 것을 찬실이는 새삼 알게 된다. 

심지어 새로 이사한 집에서 우연히 만난 장국영(김영민 분)이라는 인물(장국영은 찬실에게 본인이 진짜 배우 장국영이라 이야기한다)은 엄동설한에도 메리야스와 사각팬티를 입고 불쑥불쑥 나타나 찬실을 기함하게 하지만 결국 장국영역 시 찬실이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와준다. 

일복 넘치던 찬실이의 삶에 영화라는 '일'이 갑자기 사라졌지만 여전히 그의 삶에는 복이 넘치는 것이다. 



살다 보면 한 발짝도 내딛게 어려울 정도로 어두컴컴한 길 한가운데에 서있는 느낌을 받는다. 

앞으로 갈 수는 없는데 그렇다고 뒤로도 갈 용기는 더 없는. 하지만 멈춰있기에는 자존심도 상하고 억울한 느낌까지 물씬 드는. (도대체 어쩌란 말이냐) 그럴 때에 과연 우리는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할까?  


정답은 복덩이 찬실이처럼 그냥 마음 가는 대로 가는 것.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우리가 옳다고 생각한 방향이 때로는 길이 아닐 수 있음을. 

오히려 우리가 최악이라 생각하거나 전혀 생각지도 못할 길이 오히려 지름길이고 정답에 더 가까울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 그렇기에 내 삶을 먼저 속단하지 말고 누구보다 소중한 나 자신에게 가급적 많은 선택지를 부여하고 다양한 가능성을 상상할 기회를 부여하는 것. 인생의 전부였던 영화와 강제 이별하는 게 찬실에게는 심장이 떨어져 나가는 큰 아픔이었겠으나 어찌 되었든 그는 다시 한번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 볼 수 있었고 결국 '복덩이'가 되지 않았던가.


결국 찬실이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우리가 상상한 것보다 더 근사한 삶을 마주할 복덩이의 운명이기에 찬란히 빛날 우리의 삶에 무한한 응원만을 보내면 된다. 


배우 강말금 님의 무심한 듯 하지만 거짓이 1도 안 느껴지는 사투리 연기는 관객의 마음에 맑은 기운을 불어넣는다


찬실이 그 자체였던 배우 강말금 님. 편견 없이 누구나에게 곁을 내주지만 그렇다고 줏대 없이 모든 이에게 yes! 를 외치는 것이 아닌 자신만의 생각과 감정을 진솔하게 밝히는. 아무리 이번 생은 망했다는 말을 외칠 수밖에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찬실이라 하더라도 누가 감히 그를 함부로 대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조금 낯설었지만 어느 순간 모든 관객이 복덩이 찬실이와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강말금 배우의 담백한 연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무심한 듯 툭툭 하지만 거짓이 1도 안 느껴지는 그의 사투리 연기는 (처음 듣는 억양의 사투리지만) 배우의 이름 그대로 맑은 분위기를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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