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발을 받는다. 내게로 온 꽃향기. 언제였지? 학창 시절이었겠지. 졸업식을 몇 번 했으니 그때 받기는 했을 것 같다.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니.
김남복선생님은 한 달에 두어 번 일요일 저녁 무렵 들리신다. 주문한 책을 내게 선물로 주셔서 놀라게 하시더니 올 때마다 무언가를 주시는데 이번에는 꽃다발이다. 선생님 마당에 핀 꽃들을 나를 위해 묶어오셨다고.
이름 모를 꽃들과 코끝을 맴돌아 가슴으로 스미는 향기로 웃는다. 혼자 사는 나를 위해 가져다주시는 채소들로 장을 보러 가는 일도 드물어졌다. 상추로 해 먹을 수 있는 레시피는 정말로 다양하다.
선생님은 건강한 삶을 살고 있다. 마당에 큰 화분에서 얻는 채소와 지역에서 내는 과일로 온갖 먹을거리를 만드신다. 내게 건강한 생활을 위한 좋은 이야기를 해주며 음식이 우리 몸과 마음을 기쁘게 하는 선물이라고.
내가 지역으로 와 가장 큰 만족감 중 하나가 요리재료의 신선함이다. 바닷가 마을이기도 해서 새벽에 항구로 나가면 싱싱한 해산물이 넘친다며 같이 가기로 약속을 한다. 바다는 바로 눈앞에 펼쳐져야 느껴지는 내게 이곳이 바닷가라는 사실을 쉽게 잊어버린다.
선생님 말씀은 나를 각성하게 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내가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고 확인받는 기분이다. 선희가 가끔씩 투정하며 던지는 죽을 맛이라는 회사 이야기 등 괜한 생각들로 위축되려나 싶으면 어김없이 나타나 다독여 주는 분이다.
나는 어디 가면 재인 씨 자랑 많이 해요.
저를요? 자랑할 게 없는데.
쉽지 않거든요. 도시에서 나고 자란 청년이 이렇게 살아가는 일도, 무료책방을 열어 나누려는 마음도.
그런가요. 저는 태어나서 이렇게 살아가는 지금이 가장 좋은 걸요.
그러니까 타고 난 거예요. 요즈음 마을학교는 어때요?
아이들로 정신줄 놓지만 재미있고 즐거워요.
그러면 된 거야. 기특하다니까 재인 씨는.
일요일이면 기대하는 마음이 있다. 그 실체가 선생님이다. 매주 오시는 것은 아닌데도 일요일이면 해바라기처럼 목을 늘어뜨리며 문 밖을 응시한다. 우리 엄마가 아닌 다른 어른에게서 삶 이야기와 꿈꾸는 미래 가능성을 만난다. 활기와 여유로움, 넉넉한 마음. 내가 배워나갈 태도다. 오늘도 선생님이 있어서 안심하는 내가 웃고 있다.
재인 씨 시간 내서 나와 공부 같이 하려나요?
선생님이 알려준 공부는 '슬로시티 지도자' 양성을 위한 과정이다. 이 지역 한 마을이 슬로시티로 지정되었는데 다른 마을도 지향하는 것을 위한 안내자 역할이다. 이거야말로 내게 딱 맞는 공부다. 내가 추구하는 삶을 지역민들과 같이 나눌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게 가능해진다니.
곧 개강하면 같이 하기로 하면서 선생님과 나는 작은 돌봄 공동체 마을 이야기로 수다쟁이가 되어 버렸다. 어떤 의미에서 내가 이곳으로 오게 된 것은 필연이었는지도 모른다. 책 한 권이 내 세상을 구해주었다.
재현에게서 받은 그림엽서가 한 장 더 늘었다. 그가 내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소식을 보내는 사람은 그것으로 끝나겠지만 나로서는 슬그머니 갑갑해지기 시작한다. 그림엽서가 선물이라 여기면서도 나도 모를 감정들이 뒤섞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