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로 존재하는 인간의 조건
시간을 거슬러 03
지금 정부에게는 명예도 희망도 없다. 세월호 참사, 12일째 일요일 짙푸른 새벽에는 하늘도 운다. 이제 사고 첫날부터 떠나지 않는 의문점들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인터넷 방송을 의지해서 정보를 얻고 그에 따른 정보 수집을 나름대로 하며 내 머리로 판단한다.
쓰레기가 되어 버린 주류 언론의 한심함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지경이기에 시민들은 대안 방송에 귀 기울이고 눈을 맞춘다. 그렇다. 여기, 이 나라 관료들이 보여주는 현실은 정부의 존재를 의심케 하고 덩그마니 혼자 있다는 사실에 눈뜨게 한다.
'87 체제'와 '제6공화국'은 아래로부터 시민혁명에 의해 이루어진 정치체제라고들 한다. 참여 민주주의적 정치 패러다임으로 전환되었다고도. 정치적으로 수동적이며 무력했던 시민사회가 급격히 새로운 정치 공간으로 바뀌었다고도 한다.
그 후 참으로 많은 사건이 국가를 휘청거리게 했고, 그때마다 국민은 정부의 책임을 함께 나누어 짊어져 왔다. 정부에게 '국민(the people)'은 그저 추상적이며 익명화된 존재로 있다. 5천만 국민 중 그들 머릿속에 기억되고 눈에 들어오는 이들만이 존재한다.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너무 빈번하게 일어나는 나라다. 행정부 수반부터 공동체주의라는 도덕률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오히려 정부 권력의 횡포는 사적인 영역까지 침범하여 개인이라는 존재 의미까지 위험하게 만들어 간다.
국가의 엄청난 재난 앞에서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하는 스스로를 부끄럽게 만든다. 일상을 무기력하게 만들며, 심장으로 역류하는 격렬한 기운들로 숨죽이게 만든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정부는 개인을 유의미한 존재가 될 수 있는, 무엇보다 인간이 공적인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기회마저 배제시킨다.
대통령은 국민이 마련해 준 청와대에서 사는 존재다. 정부 관료는 국민에게서 마련된 세금으로 생활하는 이들이다. 공적인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공직자 역할을 위한 대가다. 그들은 대의제이기에 정치 집단에게 일임한 국가 행정을 책임진다.
국민들은 이 나라에 재난이 일어날 때면 '국민 성금'으로 개인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자기 위안을 해왔다. 그것으로 어려운 이들과 나누는 마음으로 위안을 삼아 견뎌내는 것도 이제는 습관처럼 되었다. 정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 무능해도 국민은 기꺼이 공동체 아픔을 함께 지켜내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매번 참담한 재난이 닥칠 때면 정부에 안일한 태도와 국가라는 이름으로 저지르는 일들에 신뢰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국가 경제력이 세계 상위에 있어도 여전히 현실에서는 개인이 생존을 위한 투쟁을 부르짖어야 한다는 것에 분노가 끓어오른다.
생명의 가치가 무참하게 외면당한다는 이 느낌은 개인이 누려야 할 삶을 황폐하게 한다. 무엇보다 먼저 살아 나온 어른으로서 아이들에게 건넬 소중한 가치를, 공동체와 함께하는 이유를 전할 수가 없다.
사실을 감추기에 급급한 정부는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 국민 다수를 위한 정책을 세우고 책임질 인물들이 있기는 한 것일까 싶다. 하지만 국민을 억압하며 착취해 온 권력의 부역자들이 정부를 이끌게 되었어도 시민의 저항은 멈추지 않는다.
국민의 안전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정부, 공공 영역을 깔아뭉개는 현실에 회의적이었다.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일들을 위해 힘을 쏟는 것이 참으로 무모해 보였다. 그래도 국민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내 나라에 나와 같은 사람의 고통이기에 그렇다. 그 움직임에는 그 어떤 개인적 이해관계가 없다. 그저 사람으로서 느끼는 아픔과 상실의 공감이다.
정부는 주목해야 한다. 조용한 혁명은 계속 진행되어 왔고, 한 개인으로부터 지속되어 확대되어 가고 있음을 간과하지 않기를 바란다. 더욱이 국가 시스템이 위에서부터 아래로까지 국민이라는 전체주의적인 발상으로 접근하고 있는 현 정부는 시민이라는 개별자로서 정치적으로 권능화 되고 있음을, 시민의 이름으로 결코 지나치지 않을 것임을 알아야 한다.
시민은 스스로 내면에 의식화를 하고 있다. 온전하게 살고 싶은 개인이 가진 사회적 욕구 충족을 위한 정치 행위를 통해 국격을 찾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먼저인 나라가 될 수 없는 대한민국은 자기답게 사는 일이 꿈이 되어버린 나라다.
4월 16일 일어난 세월호 참사로 처박혀 지내온 나날에서 많은 것들이 떠 올랐다. 마치 내 나라가 무정부 상태인 것만 같고, 인터넷 방송에 의지하며 그들 죽음에, 이 무능한 정부에, 공감력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권력에 부역하는 정치인들에 질리고 또 질린다.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나는 진실들, 총체적인 부패의 고리들을 생각한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인간은 하나의 생명으로 살아있어야 하고, 자연의 필연성으로부터 벗어난 영속적인 자기 세계가 있어야 하며, 말과 행위를 통해 이 세계를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사고 발생부터 지금까지 대한민국 모습이 총체적으로 드러난 채 깊은 바닷속에 사람들이 있다. 이제 무언가를 해야겠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자꾸만 묻기만 하는 내가 있다. 지금 이곳은 바람 한 점 없이 새소리와 만발한 봄꽃들로 펼쳐져 있다.
2014. 4.28.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