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오바마의 1박 2일 방한은 북핵공조 등 한미동맹 재확인이라 알려지고 있다. 오바마의 방한 목적은 오로지 자국의 국익에 있지만, 그것 또한 미국 정부가 미 국민을 기만해 온 사실들로 드러나 있음도 기억해야 한다. 미국의 정책들, 그 이면을 속속 들춰낸 앤드루 바세비치의 <워싱턴 룰>은 우방국을 대하는 우리 태도를 성찰할 수 있게 해 준다.
이 책에서 저자는 미국이 '세계적 리더십'이라는 긍정적인 말로 미국 안보정책을 수립해 왔지만, 실제로는 권력과 결탁된 소수를 위한 것이라는 근거를 말한다. 미국에서 현재까지 작동되는 '워싱턴 룰'은 내재된 약점이 명명백백 드러났음에도 관행 유지를 바라며 큰 이득을 본 사람들에게 마치 전통처럼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워싱턴에는 이득이 될지 모르지만, 미국 국민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바세비치는 밝힌다.
우리는 국가 정책이 국민을 배제하면서 누구를 위한 정책으로 실행되는 지를 주시해야 한다. 지난 박정희시대 경제 성장에 모든 역사에 진실들이 미화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 국정원도 국내 정치 개입부터 간첩조작 사건들까지 청와대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지 않던가. 국가 정책 형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물들이 서로 이해관계를 앞세워 긴밀히 연결된, 일련의 조직들에 의해 강력하게 작동되는 현실은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우리에게도 '청와대 룰'이 오랜 시간 작동되어 왔으며, 그들은 분단국가로 남아 있는 현실에서 여전히 분단을 고착화시키고자 국가안보를 선거 때면 어김없이 북풍 작전으로 써먹는 무리다. 국가안보를 최우선인양 내세워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국가의 기만적 행동들은 국민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권력횡포다. 또한 우리가 미국을 향해 가진 민주주의에 막연한 환상들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
십 대부터 한 손에는 스마트 폰을 들고 있는 나라, 정보화 사회 환경임에도 내 나라 뉴스를 인터넷과 외국 언론을 통해 들어야 하는 나라가 되었다. 경제 성장만을 표방하며 추구하는 국가 가치는 다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공동선을 짓밟는 일이라는 것을 개인들이 자각할 수 없다면 시민은 그저 정체성을 강조하는 개념어에 불과하다. 이런 현실은 더 오랜 시간 민주주의라는 형식만으로 표류하다 끝내 이정표를 찾지 못한 채 좌초될지 모른다는 암울함 마저 생각하게 한다.
민주주의 가치를 실현하려는 우리에 긴 투쟁은 대상이 불투명하다는 게 특징이라면 그렇다. 국방 한계선을 그어 놓고 마주하는 적은 과연 우리 적일까. 아니면 그 상황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국방 강화와 안보를 강조하며 영원한 분단을 바라는 이들일까. 아니면 내 안에서 주입되어 굳건히 자리 잡은 사회학습 결과물인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가 마주한 분단 환경은 과연 누구에게 이득을 가져다주는 것일까.
전작권 환수가 정부 요청으로 다시 연기될 전망이다. 우리 역사가 엉뚱한 방향의 길로 진입하는데 미군정 영향은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다. 미국이 원하는 바를 위해 우린 또 무엇인가를 해야만 한다. 바세비치는 다른 누군가를 정복하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극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신념'을 강조한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분명한, 한 가지를 발견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것은 대한민국에 작동되고 있는 '청와대 룰'이며, 그것은 잃을 것이 너무 많은 이들이 자발적으로 폐기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한 개인이 무엇을 하더라도 살아서는 아무것도 달라질 것이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은 사회에 무관심과 냉소로 이어진다. 그러나 자발적인 의지로 행위와 책임을 저버린다면 시민은 더 이상 자유인일 수 없다. 자본주의 체제 노예로 전락이다. 나는 자유롭기 위해서 칼보다는 펜의 힘을, 무지보다는 앎을, 지금은 아니더라도 더 나은 세상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했다. 오늘에 나를 뛰어넘어야만 하겠기에 다양한 형태로 개인주의가 내뿜는 힘이 공동체를 향해 발휘될 것을 희망한다.
2014. 4. 29. 앤드루 바세비치『워싱턴 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