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이었다. 태안에서 일어난 해병대 캠프 참사로 한동안 그 무거운 기운들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그 해 여름은 그렇게 내 안에서 세상과의 푸닥거리로 진을 뺐다. 사고를 당한 고등학교 2학년과 같은 열여덟 아들이 물었다.
"내가 그렇게 되었다면 엄만 어떻게 했을 거 같아?"
태안참사 얘기를 나누다가‥ 그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그렁그렁 울먹울먹. 아이 앞에서 감추기가 힘들었다. 난 상상력이 넘치는 인간이라 생각했는데‥ 이건 아무리 해도 떠오를 것이 없었다. 그저 까맸다. 엄만 기절해 버렸을 거라고‥하며 웃는 아이가 순간 날아가 버릴까 봐 고개를 돌렸다. 고작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상황을 비껴가고 싶은 선택인 이불 빨래였다. 그리곤 아들이 먹고 싶다는 김밥을 싸기 위해 급하게 슈퍼를 다녀왔다. 김밥을 싸며 지금 내 가까이 있어서 다행이다. 방 안에 아들 얼굴만 가득했다.
그래, 그런 거다. 모든 부모는 그런 거다. 어느 곳, 어느 아이. 할 것 없이 자살이라는 금지된 죽음이든 참사로 맞이한 예기치 않은 죽음이든 같은 마음이다. 내 아이 네 아이 문제가 아니다. 모든 사람은 그렇다. 난 이 기운에서 빠져나오려고 무진 애를 써 보지만 잘 안되었고 사고가 난 학교에 아이를 데려다주고 망연한 마음으로 거리에 멈추어 있어야 했다.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가는 엄마로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아이밖에는 없다. 그저 내 아이가 눈에 밟혀 전전긍긍하고, 이런 참사에 통곡을 할 수밖에 없다. 어떤 위로가 가당하겠나.
그러나 정부는 이 나라 5천만 국민을 대상으로 살림을 책임지고 있다. 국가 시스템 작동을 보면 그 나라 삶이 보인다. 어떻게 보일까에 초점을 맞추는 정부가 나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는 것인지, 늘 고민되어 온 삶이었나 보다. 그래, 다음엔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들로 시간을 채우고 그 시간들은 또 그렇게 잊혀 간다. 가치전도가 된 세상, 나는 아이들에게 국가를 말하기가 힘들다. 박노자의 <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를 읽으며 개인적으로 스스로에게 동기 부여를 했다. 현재는 없지만 미래에는 가능한 것이니까.
그때, 그렇게 했더라면.. 하는 말들을 평생 읊조리며 살아가는 삶이다. 참사는 때를 가리지 않는다. 재난 사고가 생길 때마다 시끌벅적하던 문제점들은 지금까지 어떻게 보완되어 안전사고에 대비해 왔는지 모른다. 대형참사가 터지면 그때에야 급하고 분주하다. 시스템 관리가 제대로 작동되는 곳은 집단 이기주의로 공공에 적으로 있다. ‘사고 징후는 미리 찾아온다’는 하인리히 법칙이 인터넷을 도배했던 시기, 그리고 다시 수년이 지났는데 또다시 반복되고 있다. 5년짜리 정부가 국민들 삶을 얼마나 무책임하게 대하는가.
이 고질적인 문제, 시스템 오류를 개선하지 않는 것이 관료들 게으름 때문이라고 하면 차라리 낫지 싶다. 게으름 문제가 아니라 의지 문제이니까. ‘나를 위한 국가는 없다’는 사실을 살아가며 현실에서 확인한다는 것, 참으로 허탈해지는 거다. 국민에게 어떻게 보여야 하는 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정치인들 행보에서 개인들은 스스로 자립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믿음이 없는 정부를 기억해야 한다.
재난보도준칙이 없어서 재난이 막아지지 않는 것은 아니잖은가. 안전불감증이 팽배해서 안전사고가 일어나는 것만도 아니었다. 재난에 대비하거나 사고 발생 후에 진행되는 과정들을 보면 생명 존엄에 가치가 돈으로 환산된다는 자본주의 체제의 어두움을 직시하게 된다. 우리들의 대한민국에서 선한 삶의 가치는 책임을 묻지 않는 사회지도층 모습들로 선한 개인들을 스스로 자책하게 만들어 간다. 왜, 나만 정의로워야 하고, 이런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들에서 숨죽이며 고통스러워해야 하는 거지?
부디, 실종자들 무사 귀환만을 간절하게 바라는 마음으로 이 주말을 무겁게 짓누르는 시간들을 보낸다. 멀리 떨어져 있는 세 아이들에게 건강하게 있어주어 고맙다고, 뜬금없이 안 하던 안부 문자도 보내본다. 그런 거지, 모든 부모는 그런 거잖아. 남 일이 아니잖아, 내가 이렇게 온통 휘청거리고 있는데 그곳 그들에 마음일랑 감도 못 잡겠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을 만난다. 그러나 살아가야 할 대한민국을 위해 잠시 가질 분노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저항으로 멈추지 않을 행진이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2014. 4. 23. 박노자 『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