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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우 Oct 23. 2023

처음 그 마음 (12)

치유는 가능할까

 밖은 분주하게 지나는 계절이다. 내가 경험하는 시간은 느리지만 다소 어수선하다. 안을 들여다보며 잠시 몸을 움직여 주변 정리를 한다. 아침에 번지는 기온 탓이려나 싶다가 한 해가 별로 남아있지 않음을 알아차린다. 시월이 지나면서 돌아보는 계절이 이제야 마음에 담긴다.


 꽤나 바쁘게 지나오면서도 제법 독서 시간을 채워온 내가 대견하다. 칭찬보다는 나를 지켜내는 일에 몰두할 순간이 그래도 많았다는 안도감이다. 안과 밖에서 휘청거리다 균형을 찾고 울렁증으로 힘든 마음은 가라앉히면서 하루를 건너갈 때면 곁을 내어준 사람들 얼굴이 가득하다.    


 대체로 올해는 고마운 마음을 자주 느끼면서 안과 밖에서 활동하고 내 좋은 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그저 지켜봐 주며 건강만을 염려하는 가족이 보인다. 내미는 손을 다잡아 주며 응원을 보내는 사람들 웃는 얼굴이 가득하다. 몸은 멀리 있어도 곁에 있다는 착각마저 건네는 동료까지.



 같이 글쓰기를 하면서 지나온 가을날 이유를 알 수 없는 가슴앓이에 근원을 둘러본다. 이제 가을은 가슴앓이를 벗어나 몸앓이로 옮긴 것인가 싶기도 하다. 외부에서 들이닥치는 요인들에 몸부터 반응하는 것을 보면 늘어나는 숫자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동안 무관심이나 외면하기만으로도 가능했던 일들이 글로 쓰이기 시작하면서 꿈틀거린다. 그 시절 나는 보호막을 만드는데 온 마음을 다 바치면서 살아낸 것을 인정받고 싶은 욕구로 허세를 부렸다고. 누구도 묻지 않던 말을 이제라도 듣고 싶은데 그 사람이 없다.


 그때 정말 괜찮았니?


 괜찮을 수 없었던 내가 여우골 숲길을 걸으며 외등이 유일한 빛으로 열리던 그 골목길을 같이 걷던 사람과 만난다. 아름다운 이별이라는 미화된 감정으로 섣부르게 사랑을 포장하던 그럴싸한 형식이 그동안 통했다. 이것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일이었는지도 알게 되고 받아들이고 있다.


 글쓰기는 내 안에 아직도 나오지 않으려고 하는 상처받은 나를 불러내는 일이 되기도 한다. 굳이 다르게 알아왔던 사실을 바로 잡는 일이 필요할까. 나를 둘러싼 방어막이 있어서 현실에 발 딛고 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문제는 그 방어막이 힘을 다했을 때 너머에서 생겨나는 소음들이다.   


 흐릿한 기억을 재생하는 일은 엄청난 힘을 소모하게 한다. 두어 시간 글을 끼적이다 창으로 밀려오는 숲바람에 몸을 움츠린다. 어느새 가을 한가운데서 나무들은 제 빛을 버리기 시작한다. 정원 가득하던 화사한 꽃들은 떠나가버렸다. 낙엽으로 몸을 드러내는 나무들이 나를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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