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순간
일주일 중 하루가 온전하게 평화로운 날이다. 어슬렁거리며 삐이익 무겁게 옆으로 밀어 문을 열어 놓는 날이기도 하다. 뜻하지 않게 눈이 맞아버린 지영 씨가 오기로 한 날이기도 하다.
그. 런. 데...
지난여름부터 책방 앞 길에서 영화촬영을 하다 끝났다. 그동안 벽으로 처리되어 사라진 공간이기도 했는데 하필이면 오늘이 추가 촬영이라고 벽으로 처리되고 말았다.
그.래.서...
시간이 멈춘 마을에 표지판을 따라 걸어가기로 한다. 멈춤에서 흐름으로 이어지는 전시회가 진행되고 있다. 나만큼이나 세월의 흐름에 엉성해져 버린 이 공간에 빛이 담아진다. 잊힌 기억은 현존하는 공간의 존재로 소환되기도 한다.
극장 안으로 들어가자 내 주위로 차갑지만 부드럽게 번지는 빛에서 기억을 본다. 잃어버린 시간에 머물러 있던 감각이 깨어난다. 전시회를 좋아하는 이유를 굳이 내 중심으로 생각하면 공간의 엉성함에 있다. 치밀하고 섬세하게 기획했을 그들을 배반하는 표현이 될 수도 있지만, 내게는 더없이 큰 만족감이다.
벽을 치워주겠다는 연락을 받고 돌아 나온다.
엉성하게 서있는 나를 표현하면 이렇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