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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짓기

아는 사람만 아는 일에 대하여

by 이창우

이틀째 마을축제로 시간이 멈춘 마을에서 책방은 십 대들의 분주하고 경쾌한 발걸음에 너덜너덜해진다. 엉성한 벽을 타고 트로트와 사물놀이 장단은 다른 소리를 집어삼킨다.


책방 앞에서 부스 운영과 고무신 던지기 놀이에 신난 사람들이 과녁판에 고무신이 닿기를 들뜬 마음으로 던진다. 마이쭈와 막대사탕을 받아 쥔 그들의 얼굴이 활짝 펼쳐진다.


축 늘어진 몸으로 은빛 머리의 그는 숨터로 들어와 앉아 마을축제에서 얻은 팝콘을 한 알 오그작 먹으며 연잎차로 목을 축인다. 눈 맞추며 우리가 오늘 해낸 일은 이름 짓기이다.


지난 새벽 어떻게 지냈는지를 말하면서 우리는 킬킬거린다. 계절이 바뀌면 우리가 도모할 아주 은밀한 일에 대하여 손에 쥔 색 사인펜으로 책갈피를 만드는 그를 지긋이 내려다보는 내가 살며시 웃고 있다.


우리는 작당모의를 하면서 떠올린 '작당'에 이 마을을 부르던 옛 이름 '너더리'를 붙이니 그럴싸하게 우리 입맛에 딱이다. 소리 내어 보며 눈이 마주치면서 이거다. 이번에는 낄낄대면서 크게 웃는다.


마을축제에 우리가 건진 것은 시간이다. 다른 장소에서 각자 분주했던 계절에 마을축제가 오히려 우리가 만날 시간을 벌어 주었다. 그 사실을 인정하자마자 누군가의 호출로 그는 또 은빛 머리 휘날리며 책방을 나선다.


남아있는 책갈피에 매듭실을 묶으며 웃는다. 예전처럼 파란 비닐 한 자루에 빈 술병을 넘치도록 담을 수는 없어도 노래 한 자락 불러 젖힐 수는 있지 않을까. 세월이 남긴 디지털 흔적이 아카이브가 되어 꺼내볼 수 있으니 역시나 디지털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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