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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활여행자 Feb 01. 2016

르네상스의 도시, 피렌체

두오모와 브루넬레스키를 만나는 여행

기차의 이름이 브루넬레스키(Brunelleschi)이다. 유럽의 도시들을 연결하는 유로 시티 기차들은 종종 도시가 배출한 자랑스러운 인물의 이름으로 명명한다. 피렌체 두오모 돔을 건축한 위대한 마에스트로의 이름을 딴 기차를 타고 있으니 그를 향한 피렌체인들의 감상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



천재의 열정과 장인 정신으로 태어난 두오모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에 내려서 오래된 돌길을 걷다 보면 어느덧 길 저편으로 커다란 붉은 돔이 그 위용을 드러낸다. 골목 사이사이로 보이는 두오모의 붉은 돔은 내가 피렌체에 와 있음을 상기시켜준다. 두오모의 정식 명칭은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Santa Maria del Fiore)로 ‘꽃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을 뜻한다. 분홍, 초록, 하얀색의 대리석으로 아름답게 치장된 피렌체의 상징인 이 교회는 다른 큰 교회들처럼 완성되기까지 수세기가 걸렸다.



르네상스 시대. 도시 국가였던 이탈리아의 새로운 실세로 떠오르던 피렌체 공화국은 국력을 과시하기 위해 1296년부터 산타마리아 대성당을 짓기 시작하였으나 흑사병, 전쟁, 자금난이 겹치면서 공사가 자꾸만 지연되었다. 무엇보다 대성당의 완공을 지연시킨 결정적인 이유는 직경 42m, 무게는 3만 7천 톤이나 되는 거대한 돔을 석재로 만드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고, 그것을 지상 100m 이상의 높이에 올리는 것이 당시 기술로는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다. 
난관에 부닥친 교회 건축 사업단은 돔 설계안을 공모한다. 쟁쟁한 건축가들과 기술자들의 응모작을 물리치고 당선된 사람은 무명의 금세공사 필리포 브루넬레스키였다. 그는 팔각형의 외벽 안에 내벽이 있는 이중 구조의 돔을 설계하고, 석공과 목공들이 돔 공사 작업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직접 기중기와 권양기를 발명하기도 하였다. 

그의 건축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고대인들은 감히 그렇게 높이 건물을 쌓아 올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늘에 대한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브루넬레스키의 천재성은 너무도 탁월했다. 그는 이 땅의 건축술 부흥을 위해 하늘에서 보낸 사람임에 틀림없다.     


르네상스 시대의 유명한 전기 작가인 조르지오 바사리 (Giorgio Vasari, 1511.7.3~1574.6.27)는 그의 저서 <예술가의 삶>에서 브루넬레스키의 능력을 절찬하였다. 출중한 능력을 가진 브루넬레스키는 아쉽게도 성격은 괴팍하고 고집스러운데다 남을 잘 믿지 못해 동료들과 갈등이 있었다. 특히 공사의 공동 책임자로 임명되었던 로렌쪼 기베르티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기베르티는 사교적인 성격으로 세력을 만들어 브루넬레스키를 괴롭혔다. 

공사가 복잡해지기 시작할 무렵, 브루넬레스키는 꾀병을 핑계로 집에서 나오지 않았다. 혼자서 공사 책임자가 되어버린 기베르티는 전혀 공사를 진척시키지 못했다. 이에 인부들이 불평을 늘어놓자 돔 공사 감독위원회 위원들이 브루넬레스키의 집에 찾아갔다. 

브루넬레스키는 "기베르티를 돔 공사에서 손을 떼게 하지 않으면, 내 병이 낫지 않을 것 같은데......"라고 말하며 그동안 기베르티에게 쌓였던 앙금을 되갚았다. 이후 기베르티는 돔 공사에서 손을 떼고 미켈란젤로가 ‘천국의 문’이라 부른 산 조반니 세례당의 문 조각 작업에 열중하였고, 브루넬레스키는 공사의 전권을 가지고 계획대로 공사를 진행시켰다.



어마어마한 규모와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설계안을 보며 당시 피렌체인들은 브루넬레스키의 도전이 무모하다며 외면했지만, 그는 모든 걱정과 우려를 무릅쓰고 지금까지도 가장 큰 석조 돔으로 남아 있는 그 건축물을 정탑 부분만 남기고 1436년에 완성했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며 일에 매달렸던 그가 1446년 4월 15일 세상을 떠났을 때, 피렌체의 모든 시민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고, 그의 비문에는 라틴어로 이렇게 새겨져 있다.

Corpus Magni Ingenii Viri Philippi Brunelleschi Fiorentini. 
피렌체의 위대한 천재 필리포 브루넬레스키 여기 잠들다.


브루넬레스키 동상


바사리가 ‘키 160센티미터에 움푹 들어간 턱. 그리고 매부리코의 볼품없는 외모’라 평했던 브루넬레스키. 두오모 앞 광장에는 그의 동상이 있다. 볼품없는 외모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마에 잔뜩 패인 주름과 심각한 표정이 고집스러웠다는 그의 성격을 짐작케 한다. 그러나 한 손에 컴퍼스를 든 채 두오모 돔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불가능을 가능케했던 그의 집념과 장인정신이 존경스럽고 경외심마저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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