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지만 따뜻한 모로코 이야기
수년전 겨울, 스페인 말라가에서 모로코행 여객선을 탔다. 사람들과 크고 작은 짐들이 뒤엉켜 좌석과 짐칸은 물론 통로까지 늘어선 만원 여객선은 약 12시간 후 자정이 다 되어서야 모로코 나도르에 도착했다. 유통기한이 지난 오징어처럼 버스 정류장 대기실 의자에 축 늘어져 페즈로 가는 야간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친근한 미소를 머금은 매점 아저씨가 기다리는 동안 마시라며 진한 민트 티를 주신다. 민트 잎과 설탕을 가득 넣은 달콤 쌉싸름한 차 한 잔이 낯선 곳에서의 긴장과 장시간 이동의 피로를 스르르 녹여준다.
버스는 아낙들이 머리에 짐을 이고 가듯 버스 지붕 위에 짐들을 산더미처럼 얹고선 출발했다. 덜덜덜. 제 나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요란한 소리를 내는 버스는 난방 시설을 갖추지 않아 입김이 나올 만큼 추웠다. 잔뜩 웅크리고서 잠을 청하려는데 누군가 내게 보송보송한 털 이불을 건넨다. 넉넉한 품을 지닌 그녀는 수줍은 미소를 띠며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그들의 언어로 말을 건넨다. 이상하다. 나는 분명 그들의 언어를 모르는데 알아들었다. 그리고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지며 몸에도 온기가 돈다.
마라케시의 메디나와 수크
호텔에 가려고 택시를 잡을 때마다 길이 너무 좁아서 갈 수 없다며 걸어서 가라고 한다. 택시 몇 대를 같은 이유로 보냈지만 택시조차 갈 수 없는 좁은 길에 위치한 호텔이라니 상상이 가지 않는다. 목적지에 도착해서야 이유를 알게 되었다. 호텔은 메디나 내에 위치한 것이다. 메디나(구시가지)는 골목이 좁다. 어떤 길은 양팔을 벌리면 벽에 양손이 닿을 정도이다. 게다가 여러 갈래로 나 있어서 꼭 미로 같다. 방향 감각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은 길을 잃기 십상이다. 예측할 수 없는 길을 걷다 보면 이전에는 만나보지 못 했던 이들을 만나게 된다. 검은색 차도르로 온 몸을 다 가린 채 눈만 빼꼼히 내놓고 둥글 납작한 빵을 파는 여인들. 외국인인 나를 보고 ‘헬로’ 하며 수줍게 말을 거는 아이들. 거친 손을 내미는 눈먼 걸인들. 가이드를 자청하며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이들.
많은 이들이 내게 말을 건네는 이 곳. 모두들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바쁘게 걸음을 내딛는 내가 온 곳과는 너무나 다른 이 곳은 나를 의미 있는 존재로 만들어 준다.
메디나를 나와서 자마엘프나 광장에 접한 수크(시장)에 가본다. 갖가지 향내가 그득하고 서늘한 수크에는 없는 게 없다. 선명한 색과 강한 향을 발산하는 향신료 가게. 달콤한 냄새가 나는 곳으로 발길을 옮겨보면 설탕 시럽을 잔뜩 묻혀 반지르르하고 달콤한 과자를 파는 가게가 있다. 가죽 가방을 사려고 보면 가죽 가방과 신발들이 진한 가죽 냄새를 풍기며 나를 이끈다. 조명을 파는 가게는 널찍한 공간을 갖가지 조명들로 가득 불을 밝혀 놓았는데 그 색이 화려하고 아름다워서 마치 아라비안 나이트 속의 한 장면 같다.
이렇게 각양각색의 가게들이 길 양쪽으로 꽉 들어차 있다. 한번 들어와 보라고 외치는 소리들. 그 사이를 스쳐 지나가는 행인들과 물건들 사이를 갈라놓는 문이나 유리창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건들을 놓고 그 한가운데에 앉은 상인들은 가격표를 내걸지 않아 값이 얼마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수크에서 상인이 처음 부르는 가격은 난해한 수수께끼 같다. 어떤 가격이 불릴지 알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상황이나 구매자에 따라 혹은 낱개로 사느냐 두 개나 그 이상을 사느냐에 에 따라 그 가격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흥정을 할 때면 늘 팽팽히 긴장을 하게 된다. 가지런한 숫자가 새겨진 가격표가 정해준대로 값을 치르는 것에 익숙한 나는 구매에 앞서서 매번 치러야 하는 의식처럼 행해지는 이 흥정에서 이기는 것이 어렵고, 불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 사는 맛이 느껴지는 이 의식이 좋다.
매일 축제가 열리는 곳, 자마엘프나 광장
낮의 자마엘프나 광장은 텅 비어있다. 그러나 선선한 바람이 어깨를 스치는 저녁이 되면 광장은 사람들로 가득 차고 축제가 시작된다. 춤을 추는 이들은 춤사위를 시작하고, 공연을 하는 이들은 노래를 부르며 악기를 연주한다. 이야기꾼들은 뜻은 알 수 없지만 한껏 뜨겁게 달구어진 말들을 쏟아낸다. 심지어 동화 속에서만 보던 피리 부는 사나이와 춤을 추는 뱀도 볼 수 있다. 물론 실제의 뱀은 가상 세계에서 보았던 것처럼 유연하게 춤을 추지는 못 한다. 그들 주위로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로 만들어진 커다란 원이 광장 이 곳 저 곳에 생긴다. 동양인들이 많지 않은 이 곳에서 나는 어딜 가도 주목을 받는데 축제에서는 구경하는 이들과 동화되어 그들의 공연을 보며 즐길 수 있다.
축제에는 먹거리도 빠질 수 없다. 광장 한쪽에는 수십 개의 간이식당이 줄 서 있다. 전통음식인 쿠스쿠스나 케밥 등을 파는데 그 맛도 일품이다. 경쟁 상대가 많다 보니 지나가는 행인들을 붙잡으려는 그들의 노력도 대단하다.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가 나를 일본인으로 오인하고 일어로 말을 건네기에 나는 한국 사람이라고 했더니 그럼 한국말을 가르쳐 달라며 끈질기게 말을 건넨다. 마지막으로 자기가 일하는 식당의 자랑도 잊지 않는다. 결국 그 집요함에 승복하여 들어가서 자리를 잡았다.
내 옆 자리에는 단정한 차림의 얼굴 선이 고운 모로코 아가씨가 앉았다. 영어를 할 줄 아느냐고 말을 건네니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그렇다고 한다. 영어를 하는 이가 드물어 물어보지 못했던 궁금했던 것들을 풀어내었다.
Q 파티마, 당신은 머리에 차도르를 쓰지 않았는데 부모님께서 종교적인 이유로 강요하시지는 않나요?
> 우리 부모님이요? 절대 강요하시지 않아요. 차도르를 착용하는 것은 문화적인 관습 때문이지 의무는 아니에요.
Q 그럼 차도르를 쓴 여성들은 의무가 아니라 개인적인 선택에 의해 착용한 것인가요?
> 그럼요. 누구도 차도르를 착용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어요. 그건 개인의 자유인걸요.
Q 라마단 기간 (이슬람교도는 이 기간 일출에서 일몰까지 의무적으로 금식한다. 하지만 여행자, 병자, 임신부 등은 의무가 면제되고, 후에 별도로 수일간 금식해야 한다) 에는 이슬람 규율대로 따르시나요?
> 네. 오랜 관습인걸요. 그 기간에는 식당들도 문을 닫기 때문에 밖에선 먹고 싶어도 먹을 수가 없어요.
Q 영어를 잘 하시는데 학교에서 배웠나요?
> 네, 학교에서 베르베르어와 아랍어를 사용하고, 프랑스어와 영어를 함께 배워요.
파티마와의 대화가 한창인데 뒤에서 누가 내 어깨를 톡톡 친다. 뒤를 돌아보니 커다란 눈망울이 예쁜 여자 아이가 고사리 같은 손을 내게 내민다. 아이가 원하는 것을 주려고 지갑을 꺼내는 사이에 내게 친절했던 점원이 어디선가 나타나 메뉴를 든 손으로 아이를 거칠게 내쫓는다. 동전을 받지도 못 하고 내쫓긴 아이가 맘에 걸려 파티마에게 아직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선 계산을 치르고 나왔다.
모로코 여성들에 대한 오해들
이슬람교의 맹점이라고 생각하는 일부다처제나 여성 인권의 문제는 어렴풋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점들도 많다. 이슬람교의 경전인 코란에는 남성과 여성이 모든 기본적 권리와 의무에서 동등하며 자신들이 행한 행동에 대한 보상과 처벌에서도 동등하다고 언급되어 있다
남자이든 여자이든 너희가 행한 선행은 결코 헛되지 아니할 것이다 (코란 3: 195)
실로 무슬림 남녀에게 믿음이 있는 남녀에게 순종하는 남녀에게 진실한 남녀와 인내하는 남녀에게 두려워하는 남녀와 자선을 베푸는 남녀에게 단식을 행하는 남녀와 정조를 지키는 남녀에게 하나님을 염원하는 남녀에게 하나님은 관용과 크나큰 보상을 준비하셨느니라 (코란 33: 35)
코란에서 제시하고 있는 여성관은 유대교나 고대 로마법, 그리스 법이 보장하지 못한 개혁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으나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의미가 변질되어 무슬림 여성들의 자유를 억압하고, 종교적으로 속박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와 파티마와의 대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모로코는 지금 변화의 물결이 거세다.
1999년 선왕인 핫산 2세의 타계로 국왕에 즉위한 모하메드 6세는 2002년 3월 결혼한 부인 셀마 베나니에게 모로코 역사상 최초로 ‘Royal Highness’라는 칭호를 부여하고, 국가원수의 부인 역할을 맡기면서 여성 전반의 지위를 격상시킬 것임을 시사했다. 또한 2003년 10월에는 여성을 남성의 권위 아래 두는 옛 가족법의 개정을 촉구하고 새 법의 내용이 이슬람 정신에 충실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모로코 의회는 2004년 1월 아내의 지위를 남편과 거의 동등한 수준으로 올려놓은 새 가족법 법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하였다. 모하메드 6 세 국왕의 강력한 권고에 따라 마련된 이 법안은 여성의 결혼 연령 하한선을 15세에서 18세로 올리고 남편에게도 가사와 관련해 아내와 공동책임을 부과하고 있다. 일부다처제는 매우 엄격한 조건 아래서만 실시될 수 있으며 남성 위주로 행해져 오던 이혼도 훨씬 어려워졌다.
그동안 모로코 여성들은 전통적인 관습과 종교 내에서 즐거움을 찾았다. 의의를 제기하는 것조차 어려웠던 공동사회의 규율은 개인들의 개성을 죽이고, 집단을 유지시키는 도구로서 특히 여성의 사적인 생활은 인정하지 않거나 제약이 심했다. 그러나 21세기 초, 모로코에서는 전통이라 부르던 악습의 많은 부분이 쇠하였다. 이제 그녀들은 자유롭게 비상할 준비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