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은 왜 책쓰기에 전념했을까?
책을 쓰는데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과 경험이다. 시간과 경험이 없다면 책을 쓸 수 없다. 18세기 조선 실학자 다산 정약용(1762~1836)은 무엇 때문에 책쓰기에 전념했을까? 그는 열정적 지적 의욕에 불타 모든 정보를 정리하고 편집했다. 그런 편집 능력이 18년간의 강진 유배생활 동안 500여 권의 저술을 남겼다. 500권은 한 사람이 베껴쓰기만 해도 10년 이상이 걸리는 일이다. 정약용은 인생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 30대 후반에서 50대 중반까지 18년이라는 긴 세월을 유배지에서 보냈다. 그는 척박한 작업환경에서 어떻게 그 작업을 해냈을까? 사람들은 500권에 저술을 남겼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어떤 방법으로 책을 써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자신의 뜻을 세상에 알리고 싶은 자기 발현의 수단으로 책쓰기를 한다. 저자는 자신만이 아닌 사회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목적으로 글을 쓰고 그것을 책으로 쓴다.
다산 정약용 극한까지 몰아붙이는 힘이 바로 글이 된다
다산은 어떻게 한결같이 자신을 인간의 극한까지 몰아붙이는 힘이 어디서 나왔을까? 그 힘이 책을 읽는 독자를 압도하는 것이다. 책을 쓰고자 하는 결단과 의지가 있다면 그 사람의 형편은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당시 유배지에서 처참한 상황 속에서 보여준 다산의 놀라운 태도가 있다. 그것이 바로 다산이 위대한 이유다. 그는 중국이나 일본보다 조선의 입장에서 지금 자신의 처지에서 가치를 두고 최선을 선택한다. 다산 정약용은 20대에 ‘이 세상의 모든 지식을 체계화하겠다’라는 야망을 품었다. 그런데 현실 정치에 부딪쳐서 이루지 못했다. 유배지에 내려갔을 때 ‘이렇게 하늘이 나에게 기회를 주는데, 어찌 공부를 안 할 수 있겠냐’며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다산의 책쓰기는 한 권의 작은 책자에서 시작됐다. 유배 길에 오를 때 다산은 짐 속에 성호 이익(1681 ~ 1764)이 모아놓은 속담집과 몇 권의 책을 가져왔다. 먼저 그는 성호의 책 속에 들어 있는 속담을 정리하고 보충하며 책 한 권을 만들기로 작정했다. 어느 정보 하나 소홀히 하지 않고 생각이 떠오르면 수시로 메모했다. 문득 속담이 생각나면 속담집에 첨가했다. 이렇게 해서 유배지에서 보낸 첫 해인 1801년에만 ‘속담집’과 ‘소학보전’ ‘이아술’ ‘기해방례변’ 등 무려 6권의 책을 펴낼 수 있었다. 책 저술하는 사업 속으로 푹 빠져 들어가자, 금방 날이 저물고 밤이 짧았고 배고픔과 추위도 잊을 수 있었다. 다산은 이렇게 시작해 18년 유배기간 동안 경학과 예학, 역사와 교육, 정치와 행정, 과학과 의학, 건축과 토목, 문학과 지리 등에 걸쳐 500여 권의 책을 저술했다. 500여 권 책을 내니 지식인으로 인정받기 시작한다. 유가 경전의 뜻을 낱낱이 파헤친 걸출한 경학자, 복잡한 예론을 촌촌이 분석해낸 꼼꼼한 예학자, 지나간 역사를 꿰고 있었던 해박한 사학자, 목민관의 행동지침을 정리해낸 탁월한 행정가, 아동교육에 큰 관심을 가져 실천적 대안을 제시한 교육학자, 화성 축성을 설계하고 거중기와 배다리를 제작해낸 토목공학자, 기계공학자, 의서를 펴낸 의학자, 등 한마디로 통합적 지식인이었다. 어떻게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분야에서 동시에 그것도 아주 탁월한 성취를 이룩할 수 있었을까?
다산 정약용 친필 다산은 어떻게 500권의 책쓰기를 할 수 있었을까?
최적화된 다산의 책쓰기 방법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지금 우리가 노트북을 작업하는 책쓰기를 다산은 당대 조선시대에 해낸 사람이다. 서양에서 맥킨지 컨설턴트 바바라 민토(Barbara Minto)의 '피라미드의 원리(Pramid Principle)'를 100년 전에 구현한 사람이 바로 다산이다. 다산은 무엇보다 뛰어난 정테일(정약용+디테일)이였다. 특히 정약용은 사실만을 기록하고 실용을 추구하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메모광이었다. 다산은 항상 책을 읽을 때에는 필요한 부분을 발췌해 적어 두었다. 위대한 업적을 이룬 이들의 공통점이 바로 책을 읽으면서 메모하는 습관이다. 메모한 것을 내용별로 분류해 엮으면 한 권의 책이 되는 것이다. 읽은 것을 초록하여 가늠하고 따져 보는 '초서법'이 결국 최적화된 작업 방식을 만들었다. 다양한 세계의 정보를 필요에 따라 요구에 맞게 정리해 낼 줄 알았던 전방위적인 지식노동자였다.
다산의 책쓰기는 세 가지 질문이 있다.
1. 왜 쓰는가?
2. 목차를 어떻게 잡을 것인가?
3. 문장을 어떻게 쓸 것인가?
1. 왜 쓰는가?
의미가 없으면 쓰지 말아야 한다. 나무가 단단하게 되려면 뿌리(root)가 깊게 박혀 있어야 한다. 이 사람 저 사람의 말에 흔들리지 마라. 어떤 일을 하든 기초(basis)가 중요하다. 쓰는 사람이 기본기가 있는 쪽으로 써야 좋은 성과가 나온다. 책쓰기를 할 때 문제를 회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돌파하라. 모르면 전문가에게 물어서 쓰면 되고, 글쓰기 실력이 부족하면 배우면 그만이다. 끊임없는 의문을 가지고 탐구해 들어가는 절박함이 있느냐는 중요하다. 처음에 우열을 분간할 수 없던 정보들은 의문을 품는 순간 점차 분명한 모습을 드러낸다. 어떤 글을 쓰든 질문의 실마리를 잡아서 얽힌 실타래를 풀듯이 접근한다. 실마리를 잘 잡으면 술술 풀리게 마련이다. 범람하는 가짜 정보와 쓸모 있는 진짜 정보를 어떻게 판단하여 지식을 편집하는 다산의 책쓰기 방식은 오늘날 기업과 경영자들에게도 통찰력을 제공한다.
2. 목차를 어떻게 잡을 것인가?
다산은 책의 목차를 항상 중요시했다. 목록(index)을 잘 만들어야 목차(table of contents)가 잘 나온다. 다산은 먼저 목차를 정하고, 관련 자료를 섭렵하여 카드 작업을 통해 분류한 뒤 각 목차에 해당하는 곳에 재배열해서 살을 붙이는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다산은 책쓰기 전에 반드시 목차를 세우고 쓰길 당부했다. 목차는 책의 뼈대이다. 책을 읽는 것도 결국 목차를 따라가는 것이다. 정보를 단순히 모으지 않고 처음부터 분류하여 모았다. 그것은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산의 책쓰기 방법을 적용하면 7~8가지 책을 동시에 집필할 수 있다. 먼저 목차를 구성하고 자료를 가려 뽑아 목차에 나누어 배치하여 책을 완성했다. 18년 유배생활 중 500권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저서를 완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최적화(最適化)에 있다. 아무리 좋은 머리라고 하더라도 물리적으로 시간과 에너지를 확보하지 않으면 좋은 성과를 낼 수 없다. 다산은 의도적으로 핵심을 장악하고, 생각을 단련시켜서 효율성을 강화시킨 것이다. 그의 탁월한 생각과 논리적 전개는 바로 지식의 기초를 닦고 정보를 조직해왔던 것이다.
3. 문장을 어떻게 쓸 것인가?
문장의 흐름을 어떻게 매끄럽게 할 것인가? 책쓰기의 마지막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다듬고 다듬는 것이다. 퇴고이다. 글을 다시 살피며 미흡한 곳은 보완하고, 거친 곳은 부드럽게 다듬고, 어색한 곳은 자연스럽게 만들었다. 문장을 다듬는 작업은 원석을 보석으로 만드는 세공 과정과도 같다. 다산은 글을 쓸 때 형용사, 부사를 과도하게 쓰지 않는다. 글쓰기의 미덕은 절제에 있다. 작가는 작품과의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베스트셀러 저자 중에서 어려움 없이 책이 잘 된 경우가 없다. 멀리 해리포터 저자 조앤 롤링에서 한국의 이기주 작가까지 어려움을 이겨낸 인간 승리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책을 쓰는 데는 그다지 큰돈이 들지 않은 이유도 있다.
"네가 양계를 한다고 들었다. 닭을 치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하지만 닭을 기르는 데도 우아한 것과 속된 것, 맑은 것과 탁한 것의 차이가 있다. 진실로 노서를 숙독해서, 좋은 방법을 골라 시험해보렴. 빛깔에 따라 구분해보기도 하고, 횟대를 달리 해보기도 해서 닭이 살지고 번드르르하며 다른 집보다 번식도 더 낫게 해야지. 또 간혹 시를 지어 닭의 정경을 묘사해보도록 해라. 사물로 사물을 얹는 것, 이것은 글 읽는 사람의 양계니라. 만약 이익만 따지고 의리는 거들떠보지 않는다거나, 기를 줄만 알고 운치는 몰라, 부지런히 애써 이웃 채마밭의 늙은이와 더불어 밤 낮 다투는 자는 바로 셋집 사는 마을의 못난 사내의 양계인 게다. 너는 어떤 식으로 하려는지 모르겠구나. 기왕 닭을 기른다면 모름지기 백가의 책 속에서 닭에 관한 글들을 베껴 모아 차례를 매겨 <계경(鷄經)>을 만들어보는 것도 좋겠구나. 육우의 <다경>이나 유득공의 <연경>처럼 말이다. 속된 일을 하더라도 맑은 운치를 얻는 것은 모름지기 언제나 이것을 예로 삼도록 해라."
아들 학유에게 계경을 써보라고 권유하는 다산은 그만큼 책쓰기를 통해서 공부가 됨을 알려주고 있다.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책쓰기에 몰두했다. 그 이유는 노비제도 폐지, 지방행정 쇄신, 토지제도 정비 등 갖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고 현실에 맞는 개선방안을 주장하기 위해서였다. 결국 이런 실용성은 주자학에 연연하지 않고 실제 삶에 도움이 되는 것을 찾는 실사구시였다. 다산은 유배가 된 뒤에는 쓰러진 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를 희망했다.
책쓰기는 자신의 상황을 바꾸는 최고의 도구다!
글쓰기는 단거리라면 책쓰기는 장거리다. 장거리를 뛰어야 자신을 변화시키는 힘이 생긴다. 500권의 저술로 인생을 바꾼 다산. 250년이 지난 지금까지 다산의 인생이 위대한 인생으로 기억될 수 있었던 것은 다산이 남긴 500여 권의 저서에 있다. 다산이 글쓰기를 통해 위대한 인생이 된 것은 그의 책쓰기가 다른 사람을 돕고 시대를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유배지에서 자신을 살리기 위한 책쓰기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바꾸고, 시대를 바꾸는 도화선이 되었다. 다산은 유배라는 인생의 벼랑 끝에 내몰렸지만 책쓰기로 삶의 의지를 다잡았고 결국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었다. 책쓰기에는 어려운 자신의 상황을 바꾸는 힘이 깃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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