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경험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
퇴근한 남편이 내일 집에 사과 한 박스가 올 거라고 했다. (아버님이 산 사과를) 어머님이 보내셨다고 연락이 왔단다. 사실 난 사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나랑 맞지 않는 과일인지 꼭 먹고 나면 탈이 나곤 했다. 아침에 먹는 사과는 황금사과라는데, 그 말은 나에게는 예외였다. 사과를 빈속에라도 먹는 날이면 하루 종일 속이 좋지 않았다. 맛이라도 있으면 그런 것들을 감수하고서라도 먹으려고 노력했겠지만, 이 세상에 어디 과일이 사과뿐인가. 맛도 없고, 배만 아프게 하는 사과를 굳이 좋아할 이유는 없지!
그런데 이런 나를 제외하고 남편이고 아이들이고 사과를 좋아하다 보니, 양가 부모님들께서 사과를 종종 보내주셨다. 그날 밤도 그랬다. 사돈이랑 같이 나눠먹으라고 좋은 사과를 보내셨다더라는 남편의 말에 큰 감흥이 없었다. 그리고 어제 오후에 그 사과가 왔다. 혹시 오면서 깨지지는 않았는지 박스를 열어 살펴보았다. 바로 전화를 드리려다가 맛은 어땠냐고 물어보실까 싶어 하나 먹어보기로 했다. 평소에 보던 것들과는 달리 알이 꽤 굵은 사과였다. 예의상 한 조각만 먹어보고 전화드려야겠다 싶었는데, 앉은 자리에서 한 조각만 남겨두고 다 먹어버렸다. 이런 맛있는 사과도 있었나...? 좋은 사과라더니 정말 맛있는 사과였다.
너무 많이 먹었는지 속이 더부룩하긴 했지만, 오늘 아침에 나는 또 사과를 한 조각 베어 물었다. 그리곤 의아하게 쳐다보는 남편에게 말했다. "내가 사과를 싫어한 게 아니라, 맛있는 사과를 못 먹어본 거네"
정말 그렇다. 우리의 경험은 늘 제한적이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말이 있다. 앞이 안 보이는 사람들에게 코끼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물었더니 저마다 다른 부분을 만지고서 그것이 진짜 코끼리라고 우겼다는 것이다. 나한테 사과가 그랬다. 사과는 맛없는 것. 어제 그 사과를 맛보지 않았다면 평생 나에게 사과는 맛없는 과일이었을 것이다.
살면서 깊게 경험해 보지 않고 살짝 발만 담갔다가 쉽게 판단해버리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누군가에게는 독서도 그렇다. 책 읽는 것은 어려워. 책은 재미없어. 책 읽을 시간이 없어. 조심스레 묻고 싶다. 책을 읽기 위해 얼마나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 보았느냐고.
나도 2020년까지만 해도 한 달에 책 한 권 읽으면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책과 동떨어진 사람이었다. 그리고 올해 초에 '1년에 50권 읽기'라는 목표를 세우면서 정말 가능할까 되묻던 사람이었다. 1년에 50권이면 적어도 일주일에 한 권은 읽어야 된다는 소리다. 정말 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이 방법, 저 방법 시도해 보다 보니 읽은 책이 쌓여갔다.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독서의 방법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최근에는 '10쪽 독서'를 실천하고 있다. 평생 있는지도 몰랐던 독서법이다. 한 권을 하루에 10쪽씩 읽는 것. 그런데 한 권만 읽는 것은 아니고 여러 권을 읽는다. 다시 말하면, 여러 권을 동시에 읽는데 한 권 당 10쪽씩 읽는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하루에 22권씩 읽고 있다. 이 독서법의 효과를 본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다. 이 방법으로 책을 읽다 보니 매일이 설렌다는 사람, 이상하게 책장에 고이 모셔뒀던 책이 읽어진다는 사람, 책을 부담 없이 읽게 되었다는 사람들이 하나둘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말하고 싶다. 책이 재미없고 어렵기만 했다면, 아직 책의 세계를 다 경험해 보지 않은 것이라고. 아직 진짜 사과를, 아니 진짜 책을 만나지 못한 것이라고. 이 책이 아니라면 저 책을, 이 방법이 아니라면 다른 방법을 시도해 보라고.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맛있는 책을 발견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독서의 진짜 맛을 경험했으면 좋겠다.